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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못소 Dec 03. 2019

왜 내 소설은 고구마 전개처럼 답답할까?

고구마 전개가 너무 심하네요. 하차합니다.



이런 댓글을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독자는 속도감 있고, 적당한 긴장감이 유지되는 소설을 읽고 싶어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읽을수록 답답한 고구마 전개인 소설은 빠르게 손절합니다.


냉정하게 떠난 독자의 말을 되새기면, 소설을 다시 읽어봅니다. 


다시 읽은 소설은 분명 사건이 빠르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빠르다는 느낌은 안 들지만, 분명 빠르게 사건을 진행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과정이 길어지지 않도록 불필요한 상황을 많이 뺐습니다. (그래도 느린 것 같지만... 정말 많이 줄인 겁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고구마 전개처럼 보입니다.




왜 내 소설은 고구마 전개처럼 답답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건 전개가 빨라도 '고구마 전개'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인기 있는 소설을 읽어보면, 사건 전개가 빠르진 않습니다. 전개가 느려도 '고구마 전개'처럼 느껴지지 않을 뿐입니다.



왜 사건 전개가 빨라도 '고구마 전개'처럼 느껴질까?


독자는 '고구마 전개' 여부를 사건 나열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사건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따라 '고구마 전개' 여부를 판단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고구마 전개'를 피하기 위해, 짧은 호흡으로 사건만 나열하기 급급합니다. 그럼 독자는 '고구마 전개'를 느끼고 떠납니다.




사건만 나열된 소설



보통 사건만 나열된 소설을 읽으면, 사건이 종료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느낌이 듭니다. 분명 사건은 빠르게 전개되고 있는데, "이거 언제 끝나지?"가 계속 머리에 맴돕니다.


독자가 '사건이 종료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받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실제로 소설 속 사건이 끝나지 않아서입니다.


사건을 빨리 전개하려면 주인공은 계속 어떤 일을 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만나거나, 사건을 해결하거나, 무언가를 알아내는 등. 쉬지 않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합니다.


계속 움직이는 주인공은 이런 친구처럼 보입니다.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고, 

바로 학원 하고,

또 집에 와서 공부하고,

주말에는 카페 가서 공부하고.

365일 쉬지 않고 공부만 하는 친구.


이런 친구를 매일 24시간 쫓아다니면서 지켜봐야 한다면?

지켜보고 싶을까요?


흔쾌히 "지켜볼 수 있다"라고 답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작가는 이런 친구를 강제로 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친구처럼 쉼 없이 움직이고 있고, 독자는 강제로 그런 주인공을 지켜봐야 합니다.




'고구마 전개'처럼 느껴지지 않으려면



먼저 사건을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의 사건이 10만 자 vs 10개 사건이 10만 자


둘 중에 어떤 소설이 더 속도감이 느껴질까요? 독자는 후자가 더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두 소설 모두 주요 사건 전개 속도는 비슷한데 말이죠. (혹은  전자가 주요 사건이 더 빨리 진행되었을 수 있습니다)


같은 속도로 주요 사건을 전개했어도, 독자가 체감하는 속도감은 전혀 다릅니다. 독자가 책 읽는 것을 아파트 오르는 거라고 했을 때, (아파트 꼭대기가 완결입니다)


'하나의 사건이 10만 자'는 층 구분이 없는 30층 높이인 아파트를 올라가는 것입니다.

30층 높이인 계단은 층 구분 없이 쭉 이어져 있을 겁니다


아무리 열심히 올라가도 여전히 1층인 거죠. 

까마득한 위를 볼 때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위를 향해 올라가는 것보다 빨리 하차하고 싶지 낫지 않을까 고민할 겁니다.


반면 '10개 사건이 10만 자'는 층 구분이 있는 30층 아파트입니다. 독자는 조금 올라갔는데, "이제 3층이네", "벌써 10층이네. 좀 쉬었다 갈까", "오 25층! 꼭대기까지 얼마 안 남았어."와 같은 말을 하며, 계속 지루하지 않게 꼭대기까지 걸어갈 겁니다.


이처럼 독자에겐 "당신은 지금 10층까지 왔어요"라는 걸 알려주려면, 사건을 나누어야 합니다. 계속 이어지는 사건이 아닌, 시작과 끝이 있는 사건. 즉 보조 사건을 많이 넣어야 합니다.


작가 입장에서 보조 사건은 매우 사소하고, 불필요하고, 고구마 전개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조 사건이 끝날 때마다 어떤 변화가 있다면, 이는 꼭 필요한 사건으로 바뀝니다.






독자에게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계단보다, 끝이 보이는 계단을 그려주세요. 독자는 빠르게 올라가기가 아닌, 어디쯤 올라왔는지를 궁금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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