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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운 May 07. 2019

윤이형의 <대니>를 읽고

69살의 주인공은 출산 후 회사에 복직한 딸을 대신해 손자를 돌본다. 손자를 양육하며 힘에 부치는 생활을 하던 그녀는 어느 날 놀이터에서 인간의 모습을 하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베이비시터 로봇 대니를 만난다. 주인공은 자신을 처음 본 대니의 “아름다워”라는 말에 당황하지만, 육아를 매개로 그와 친해진다. 외로운 삶을 살던 그녀에게 대니는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대니와 가까워질수록 점점 그에게 의지하고, 또 그로 인해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주인공은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러 온 대니에게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는 말을 한다.


주인공이 대니를 만나 겪게 되는 감정의 변화는 아마 사랑이 맞을 거다. 소설에서는 양육자와 피 양육자의 관계를 보여주며, 피 양육자는 자신을 돌보는 양육자의 불안을 예민하게 감지한다고 말한다. 양육자를 사랑을 주는 사람, 피 양육자를 받는 사람으로 바꿔도 말이 된다. 대니는 주인공의 마음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이해해주지만, 주인공은 그런 대니와 함께하는 불안이 없는 시간이 달콤하면서도 두렵다. 사랑에서 불안이라는 요소를 떼어 놓으면 완벽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불안이 없는 사랑이란 성립할 수 없는 정의이다. 사랑의 속성 중에는 불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당연하듯이 사랑에 불안해하고, 불안한 사랑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로봇인 대니는 인간이 살아가며 겪는 불안인 죽음, 노화, 배신 같은 것에서 자유롭다. 나이 든 주인공은 지금까지의 삶에서 여러 가지 상처를 얻었지만, 대니는 어떤 상처나 흉도 없다. 상처는 그 당시에는 아프지만, 아물고 나서는 기억이 되고 때로는 추억이 되기도 한다. 대니는 주인공에게 기쁨과 안정을 제공한다. 그것으로 그녀의 슬픔을 없애고 불안을 떨쳐낼 수는 있어도, 대니와 주인공은 서로의 삶과 사랑 속에서 생겨나는 슬픔과 불안을 껴안으며 함께 견뎌낼 수는 없다. 커지기만 할 뿐 단단해지는 못해서 언제 터져버릴지 몰라 또 불안해지는 풍선처럼 말이다.


결국 대니는 주인공과 함께하는 시간속에서 그녀에게 후회와 부끄러움, 또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그는 주인공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모르는 이들에게 집을 마련하기 위한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것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베이비시터 로봇의 존재가치에 위배되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폐기되었다. 사랑이란 자신을 부정하고 파괴하면서도 쉽게 놓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한편으로는 늙어가는 것만이 삶의 목표인 양 살아가던 주인공이 어느 날 문득 찾아온 대니라는 로봇과 덤덤하게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이 묘하게 절절하다. 이 소설은 관계와 사랑, 그 안의 불안에 관한 이야기면서도, 내게는 꼭 슬픈 로맨스처럼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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