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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화영 Feb 12. 2021

왜 S 반도체 직원들은 화가 났을까?

신뢰의 조건, 일관성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는 후배가 발달심리학을 수강신청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도 몇 년 전에 수업을 들으면서 힘들었지만 재미있게 들었던 기억이 났다. 워낙 과제가 많아서 수업을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았는데 그 당시 7살이었던 딸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아빠로서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돼서 좋았다. 발달심리학은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어떻게 변화하고 발달해 가는지, 그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본인뿐만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부모 역할을 하는데도 필요한 공부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딸을 키우는 과정에서 혼란스러웠던 점들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고,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이 발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하트만(Hartmann)이나 베네덱(Benedek)과 같은 발달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양육자가 일관성 있게 아이에게 사랑을 쏟아주면 아이는 양육자를 신뢰하게 되고, 그것이 건강한 애착관계를 형성하게 한다는 것이다. 아이의 타고난 기질보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의 반응성이 중요하고, 이때 양육자의 일관된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관된 행동이라는 것은 같은 상황에서 같은 반응을 해주는 것이다. 아이가 몸에 안 좋은 불량식품을 먹으려고 할 때 부모가 어느 때는 못 먹게 하다가 부모의 기분이 좋았을 때는 먹게 한다면 일관성 없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빠와 엄마의 반응에서도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아빠는 탄산음료를 먹어도 된다고 하는데 엄마는 못 먹게 막는다면 아이는 혼란스럽게 된다. 부모가 일관성 있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부모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아이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양육의 기준을 두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을 말한다. 이 같은 일관성이 중요한 이유는 부모의 일관된 행동이 아이에게 '신뢰감'을 형성해 주기 때문이다.


최근 성과가 좋았던 S 반도체 회사는 성과급 문제로 구성원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회사의 구성원들은 회사가 경쟁사보다 좋은 성과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회사보다 낮은 성과급을 받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성과급이 어떻게 책정되었는지 그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는 점을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 요즘 시대의 구성원들은 분배와 절차에서 그 공정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구성원들은 회사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면 실망하고 더 나아가 분노하게 된다. 이 같은 이슈가 같은 그룹의 계열 회사로도 확대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갈등의 원인은 공정성에만 있을까?

말과 행동의 부조화는 일종의 정신적 분열을 야기한다.

이번에 이슈가 되고 있는 반도체 회사의 그룹사는 1년 전 행복경영을 선포했다. 이 그룹의 회장은 기업을 운영하는 목적을 이윤극대화가 아니라 구성원의 행복추구라고 선언했다. 지금까지 회사가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로 평가를 받았다면 앞으로는 구성원의 행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받겠다는 것이다. 행복경영을 선언함으로써 말 그대로 구성원의 행복을 강조한 것이다. 구성원의 입장에서는 이번 성과급 지급 문제가 행복경영과 거리가 있다가 느껴졌을 것이다. 오히려 구성원의 행복을 희생해서 회사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처럼 비쳐줬을지 모르겠다. 1년 전에 회장이 강조했던 말과 실제 행동이 다르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처럼 회사의 말과 행동의 부조화는 구성원의 신뢰를 떨어트리고 구성원의 실망과 분노를 야기하게 된다.

이런 사례는 기업 경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구성원들에게 신뢰기반 인사제도를 얘기하면서 업무시간 관리 시스템을 더욱 강화하는 것, 협업을 강조하면서 개인과 조직 간 비교를 통해 경쟁을 부추기는 것, 혁신을 해야 한다면서 실패한 사람을 낙인 하는 문화, 고객중심을 강조하면서 의사결정 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에는 경영진을 두는 것. 이 같은 회사의 일관성 없는 행동들은 결과적으로 구성원의 신뢰를 떨어트릴 수밖에 없다.

작은 것을 얻기 위해서 큰 것을 놓치는 것

아프리카에서 원숭이를 잡는 방법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 원숭이 손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항아리를 움직일 수 없게 고정하고 그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둔다는 것이다. 원숭이가 다가와서 손을 넣어 그 음식을 꺼내려고 하면 입구가 작아서 빠지지 않는다. 손을 빼려면 음식을 놔야 하는데 그 음식을 놓치지 싫어서 계속 잡고 있다가 사람들에게 잡힌다는 이야기다.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하나의 방향을 선택하고 일관되게 실행하다는 것은 결국 다른 방향에 있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회사 제도를 이용해서 본인의 이익만을 챙기는 '체리피커'나 주변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생각되는 '썩은사과'를 제거하기 위해 만드는 제도와 시스템들이 우리의 일관성을 무너트린다.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포기할 것은 선택하고 과감하게 실행해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나 기업을 경영하는 일에서 신뢰를 형성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신뢰가 아이에게는 안정적인 애착을, 기업의 구성원에게는 심리적인 안정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리더의 일관된 행동이 필요하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명예교수이자 '문화가 성과다'의 저자 제임스 헤스켓은 조직문화의 위해요소로 7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중 첫 번째가 '일관성 없는 리더십 행동'이다. 구성원의 실망과 분노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시적인 방편이 아니라 일관된 리더의 행동에 대해서 구체적인 고민과 실질적인 노력이 있어야 하겠다. 구성원의 에너지 방향이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있는 고객에게 향하려면 조직과 리더는 그렇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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