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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화영 Mar 24. 2023

건강검진을 한다고 몸이 건강해지지 않는다.

조직진단에 대한 생각

우리가 어딘가로 가고자 할 때 알아야 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내가 도달하고 싶은 곳은 어디인지, 그리고 내가 현재 있는 곳이 어디인지이다. 현재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서 우리는 진단이라는 것을 한다.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도 마찬가지이다. 조직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현재 모습을 알아야 한다. 조직진단이 건강검진과 다른 점은 스스로 원해서 하는 경우보다는 외부의 요구나 지시로 진단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나는 예전 회사에서 조직문화를 진단하는 부서의 실무자, 그리고 팀장으로 몇 해를 근무했다. 정기적으로 여러 조직을 진단하고 레포팅 하는 일을 담당했다. 최근에는 내가 속해 있는 회사가 조직진단을 받아야 하는 회사로 선정되어 그룹사의 조직진단을 받았다. 진단을 하는 입장과 받는 입장, 두 가지 상황을 모두 겪으면서 진단이라는 일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일반적인 조직진단은 특정한 프레임을 가지고 진행한다. 건강한 조직이 갖춰야 할 몇 가지 구성요소를 설정하고 진단을 진행한다. 비전 및 전략, 조직구조, 제도, 인력역량, 리더십 등이 그런 것이다. 구성원들에게 이런 내용의 설문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인터뷰로 보완한다. 필요에 따라 자료조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설문조사 결과는 각 항목별 점수와 항목 간 회귀분석을 통해 어떤 요인이 어떤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인과관계를 설명한다. 예를 들면 임원리더십 점수가 몇 점이고, 이 항목이 구성원 몰입도를 낮추는데 얼마간의 영향을 미쳤다는 등의 결과로 정리되는 것이다.


진단을 해보면 조직마다 나름의 이슈가 존재한다. '임원의 임파워링이 부족하다. 조직 간 R&R이 불명확하다. 팀장의 리더십이 부족하다. 비전이나 목표가 없고, 있더라도 구성원의 공감이 부족하다'와 같이 진단을 통해 조직마다 여러 가지 이슈가 정리된다.  




진단결과가 정말 우리 조직의 이슈인가?


조직진단은 구성원들에게 긴장감과 피로감을 준다. 그렇게 진행되는 진단의 결과가 정말 우리 조직의 이슈일까? 올바른 목적에서 진단이 시작되지만 그 결과가 항상 정확하다고 말할 수 없다. 진단에서는 여러 가지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작은 조직의 경우에는 한 사람의 응답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 있다.


사실보다는 인식의 문제


조직진단을 위해 실시한 설문에서 '보상 수준이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 조직 구성원들은 본인의 보상 수준이 낮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본인의 급여 외에 동료나 다른 회사의 급여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를 갖기 어렵기 때문에, 이 결과는 정확하지 않은 정보로 생긴 인식이 반영된 결과일 수 있다. '평가나 승진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내용도 마찬가지이다. 구성원들이 어떤 기준과 절차로 평가나 승진이 이뤄지는지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다면, 조직진단 결과는 불충분한 정보로 갖게 된 인식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


방향의 문제


조직진단 결과 구성원들의 '근속기간이 짧다'는 부분이 이슈로 정리되었다. 근속기간이 짧다는 것이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일까? '역량 있는 사람이 조직에 들어와서 필요한 만큼 기여하고, 본인 원한다면 다른 회사로 이동하는 것이 현재의 트렌드이다.' 만일 해당 조직의 경영자가 이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면 어떤가? 스타트업이나 플랫폼회사처럼 운영하기를 기대하면서 턴오버 비율이 낮은 기존 제조업 기준으로 조직을 평가해서는 안된다. 근속기간이 길다는 것이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어떤 조직에서는 'R&R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슈가 나왔다. R&R를 명확하게 하고 부서별 역할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은 새롭고 창의적인 일을 만들어내는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 점수가 낮다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방향의 문제를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다. 조직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따라 진단결과를 해석해야 한다.


이런 문제 외에도 진단 결과에서 오류가 발생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진단을 수행하는 사람의 편향이 들어가서 왜곡되기도 하고, 진단 활동 자체에 의미를 만들기 위해서 결과를 자극적으로 정리하기도 한다. 더욱 나쁜 것은 진단 결과를 특정 목적에 활용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내용을 정리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특정 조직장을 교체하기 위한 목적처럼 말이다.


조직진단의 목적은 무엇인가?


조직진단에서는 이런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진단의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노력보다는 조직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하도록 노력하는 것에 더 집중하는 것이 유용하다. 결국 진단 이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한다고 해서 몸이 자동으로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건강해지기 위한 변화로의 연결이 필요하다.


우리는 진단 결과를 정리해서 회장님과 경영진에게 보고하는데 에너지를 집중하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보고가 되었다고 조직진단의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할 수 없다.

변화의 주체가 누구인가. 진단을 실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해당 조직의 구성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단결과를 해당 구성원과 공유하고 논의하는 시간을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실질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구성원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통해서 인식의 문제와 방향의 문제를 논의하고, 우리 조직의 이슈를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조직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맞춰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진단결과가 나온 시점이 변화의 끝이 아니라 시작점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단을 정교하는 것 이상으로 이런 노력이 중요하다.  


매년 진행하는 조직진단만으로는 조직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없다. 결국 진단결과를 참고해서 어떻게 원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관련된 노력으로 연결해야 한다. 구성원들을 진단의 대상자가 아니라 변화의 주체자로 참여시켜야 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구체적은 노력을 할 수 있을 때 조직진단 의미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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