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결정을 변경할 때 필요한 것
나는 계획을 바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요즘 흔한 MBTI 검사를 해보면 항상 J가 나온다. 무언가를 할 때 빠르게 결정해 버리는 것을 선호한다. 결정을 못하는 상황이나 결정한 내용을 수시로 바꾸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조직에서 일하다 보면 그런 경우들이 많이 생긴다. 의사결정이 늦어지기도 하고, 오전에 결정되었던 내용이 오후에 바뀐다. 의사결정의 시작점에 있는 리더가 각도를 조금만 틀어도, 거리가 멀어질수록 변화의 폭이 넓어질 수밖에 없다. 직원들 명절 선물을 선정하는데 리더가 선물세트로 하자고 결정했다가 일부 직원들의 얘기를 듣고 현금으로 주자고 변경해 버리면 실무를 해야 하는 담당자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큰 조직일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왜 의사결정이 자주 바뀌는 것일까?
“사회의 상황이 바뀌면 과거에 아무리 탁월한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더라도 그 즉시 백지로 되돌리고 새롭게 가설을 세워 다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변화가 많은 시대일수록 유연한 경영 능력이 중요해진다. 즉 아침에 내린 지시를 저녁에 고칠 수 있는 조령모개(朝令暮改)식 경영도 필요하다.”
“변화를 시도하지 못하고 정체되면 오히려 기업을 궁지로 몰아놓게 될 수도 있다. 지도자에게는 작은 변화도 빨리 알아채고 그 즉시 최적의 계획으로 변경할 수 있는 능력이 더 많이 요구된다.”
경영자가 가져야 할 단 한 가지 습관, 스즈키 도시후미
이해할 수 있는 얘기이다. 비즈니스 상황이 변경되거나 경영자가 더 많은 정보를 얻었을 때 빠르게 더 나은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변경해야 한다. 사실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애초에 생각했던 것대로 일을 진행시켜서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문제는 변경된 방향으로 일을 해야 하는 것이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버튼을 바꾸는 식으로는 의도대로 변화를 만들 수 없다. 의사결정이 변경된 것에 대해 일을 추진해야 하는 담당자를 이해시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조직은 사람을 통해 일을 진행시켜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다.
조직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는 기안서를 쓰게 된다. 기안서를 쓸 때 그 일의 배경과 목적, 추진방향에 대해서 먼저 쓴다. 그 일의 Why에 대해서 쓰는 것이다. 그런데 기안서를 쓰는 사람이나 그것을 의사결정하는 사람이 Why를 관심 있게 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뭘 하겠다는 거야?’, ‘돈은 얼마나 들어가는 거야?’ 시간도 없고, 이미 서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what에 대해서만 관심 있게 보게 된다. Why에 대한 고민과 충분한 논의가 없는데 what이 제대로 결정될 수 있을까.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데 가족여행을 가는 것인지, 장례식장을 가는 것인지에 따라서 이동 수단을 결정해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면 수단을 결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의사결정을 변경할 때도 Why에서 시작해야 한다.
예전 회사에서는 구성원 중에 일부를 선발해서 대학원 과정을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었다. 회사의 미래를 이끌어갈 리더를 육성하고 그들을 리텐션 하기 위한 목적에서 오랫동안 유지해 왔던 제도였다. 지원해야 하는 기간도 길고 비용도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소수의 인원으로만 진행해 왔다. 그렇게 대학원 지원을 받은 직원 중에 일부가 임원으로 승진한 경우도 나왔다. 그런데 대학원 과정이 끝나고 일부 직원이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해 버린 경우가 생겼다. 이런 경우가 몇 차례 생기고 나니 의사결정을 하는 리더는 그 제도를 없애버렸고, 담당자에게 해당 업무는 사라져 버렸다.
사실 그 의사결정이 옳았는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담당자가 왜 그런 결정이 이뤄졌는지 설명을 듣지 못한 것은 아쉽다. 원래 그 제도를 왜 만들고 추진했는지에 비추어 어떤 이유에서 변경하고자 하는지가 담당자에게 설명되었어야 했다. 우리가 what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왜 그 일을 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목적은 사라지고 수단만 남는 것이다. Why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부족하기 때문에 what이 계속 바뀔 때마다 정작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납득이 안 되는 상황들이 생기는 것이다.
요즘 같은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무엇이든 빠르게 결정하고 수시로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기안서 가장 앞에 Why를 먼저 쓰는 이유는, 그것이 중요해서이다. 일을 시작할 때나 변경할 때는 Why부터 고민하고, 그 일을 추진해야 하는 담당자와 좀 더 소통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