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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롱 Mar 09. 2022

사실은 멋져 보이고 싶어서 사업을 시작했어

열등감과 편견이 쏘아 올린 공


회사가 싫어서 창업을 했다


1년 반 전, 회사에 사직서를 내며 "제 사업을 하려고요." 했다. 대표님은 "무슨 사업 할 건데?"라고 물었고, 나는 대충 어버버 둘러댔다. 딱히 계획은 없었지만 예전 직장이 자그마한 온라인 쇼핑 회사였다. 이 정도라면 나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던 기억이 나서 "쇼핑몰 할 거예요." 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꼬치꼬치 묻는 대표님과 동료들에게 뭐라도 있는 것처럼 꾸며내느라 바빴다. 그리고 퇴사 날을 기다리다 허둥지둥 인사를 하고 나왔다. 

당장은 돈이 없지만, 길이 있을 거야. 
해보다가 돈이 없으면 고액 알바라도 뛰지 뭐. 
어쨌든 여긴 아냐, 그리고 다신 어정쩡한 회사에 내 젊음을 바치지 않을래. 



생각보다 나를 책임져주는 조직이 없다는 사실은 가혹했다. 사업자 등록증을 내고 쇼핑몰을 개설했지만 나 한 사람의 월급을 다달이 손에 쥔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언제쯤 300만 원 정도를 이익금으로 챙길 수 있을까? 까마득했다. 한 달 지출과 수입을 계산하니 이익이 5만 6천 원, 이럴 때도 있었다. 실소가 나왔다. 



본가에 마련한 방구석 사무실


회사에서 80% 지원해 주던 월세가 끊겼으니, 양재동의 집에서 6개월 정도 버티다가 다시 본가가 있는 일산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1년의 독립 기간, 그리고 다시 컴백한 딸을 부모님은 그래도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월셋집에서 버티던 6개월 동안 내 통장 잔고는 바닥이 났다. 고정 급여의 소중함을 그제야 깨달았다. 펑펑 쓰던 버릇을 고쳐 먹기 위해 가계부를 쓰고 집 주변 저녁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지하에 위치한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서 커피를 내렸다. 아래에 수영장이 있어서 출근하면 나의 곱슬머리가 더욱 곱슬거려지는, 습기 가득한 곳이었다. 그리고 어두웠다. 

삶이 전혀 멋지지가 않았다. 팍팍하고 우울해했다. 대외적으로 나를 대표라고 소개할 수 있었지만 그럴 기회도 잘 없었을뿐더러, 현실은 택배를 부치다가 허겁지겁 커피를 만들러 나가는 고된 하루만 있었다. 






열등감과 편견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이런 시간들을 겪어내면서 내가 왜 사업을 선택했는지, 신중하게 생각한 결과가 맞는지, 나는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고민한다. 사업이 힘들다, 힘들다 하는데 도대체 무엇이 힘들 것인지 구체적으로 그려본 적이 없었다. 무작정 회사보다 나은 선택지라고 생각했을 뿐. 


어쩌면 나는 그냥 '남이 볼 때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창업을 했다고 하면 다들 대단하다고 한다. 아무리 규모가 작아도 나는 '사장님'이 될 수 있다. 그럭저럭 포장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았다. 


사실은, 변변치 않은 회사에 들어가 사원증 한 번 목에 걸어보지 못했다. 또각또각 구두를 신고 출근하기는커녕, 운동복에 민낯으로 헐레벌떡 사무실에 들어왔다.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들은 청소를 안 한다던데, 나는 출근하면 작은 사무실을 쓸고 닦아야 했다. 이런 차이들이 나에게 열등감을 불러일으켰다. 

사장님이 되면 그나마 내가 덜 작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만들어 낸 미운 편견이었다. 


당시의 태도들에 참 깊이 반성한다. 지금에야 들리는 성공한 사람들의 스토리 속에는, 환경이 어떻든 간에 자신의 선택에 긍정적인 태도로 임하는 이들이 있다. 그 안에서 길을 찾는다. 하지만 나는 '창업'이라는 방패로 나를 포장하며 그 속에서 도망쳤다. 그리고 더 초라한 삶으로 들어와, 도망에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벌어진 일, 이제는 도망칠 곳이 없어




현실을 알게 되고 반성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태도에 정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그만둠에는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때까지는 버틴다. 어렵고 싫은 일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이루고자 하는 것을 계속 그린다. 싫어지다가도 그리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어쨌든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결과물로 이어진다. 


지금은 내가 이런 태도로 회사를 다녔더라면, 어땠을까 생각도 많이 한다. 다시 입사하면 정말 잘할 자신이 있는데. 액수가 어떻든 꾸준히 들어오는 급여로 저축도 할 수 있고, 다양한 소비에 계획을 할 수 있는데. 이런 삶이 좋다는 걸 왜 그땐 몰랐을까 하기도 한다. 


동기야 어떻든, 나는 사업의 길을 선택했다. 안정적인 수익을 포기하고 휴일에도 일을 해야 하지만, 예전의 내가 만들어낸 어리석은 편견과 판단에 책임을 지기 위해 살아내고 있다. 어쩌면 5년 전 시작한 노력이었다면 지금은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되어 있었을 텐데... 생각하며, 멋진 사업가가 되어 있을 5년 뒤를 준비한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산다. 


그리고 버티던 시간이 흘러, 3월 말이면 어두컴컴한 카페 아르바이트를 끝낸다. 여유가 있어서 그만두는 것은 아니지만, 달릴 때라는 것을 직감하여 내린 결정이다. 이번엔 이 결정에 책임질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해 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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