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아니고요, 동사무소에서 인생을 배우고 있어요.
내 자리에서 할 일을 하고 있으면 젊은 나이에 왜 여기 앉아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꼭 제목처럼 물어보는 건 아니지만, 조심스럽게 "원랜 뭐 하시던 분이에요..?"라고 물어본다던가, "일은 따로 하는 게 있어요?" 라던가 질문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대체로 나의 '정체'가 그들은 궁금하다.
그들은 대한민국 OO동의 주민들이고, 나는 OO동 동사무소(이제는 '행정복지센터'라는 명칭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동사무소'가 친근해서 이 글에서는 그렇게 부르려고 한다.)에서 이제 막 5개월 째 일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다. 주민 센터 취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접수를 받는다거나 프로그램에 대해 안내를 하는 역할이다.
실은 이 자리는 6년 째 한 50대 아주머니께서 지키고 있었다. 고도의 업무 스킬이 필요한 것도 아니요, 더군다나 주민들과 친숙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자리를 지킬 인재로는 딱 아주머니들이 적당해 보인다. 그런데 어느새 부턴가 새파란 젊은 여자애가 앉아 있으니 주민들은 궁금했다.
젊은 아가씨가 여기서 뭐 해?
아.. 저는요.
온라인 사업을 2년 동안 했다가, 지금은 정리 중인 상태다. 사실 이 곳에 올 때만 해도 적당한 고정 수입을 벌며 사업을 더 안정적으로 유지해 보겠다는 마음이 컸다. 그러나 5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달라진 게 많았다. 마음을 먹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가 참 쉽지 않았다. 커리어에 대한 고민, 패배감, 현실이 모두 뒤엉켜 매일 매일 복잡한 마음을 뒤로 하고, 월 60만 원이라도 벌어야 했기에 나는 오전마다 이 곳으로 출근을 했다.
사실 아침마다 어딘가로 나서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2년간 집을 사무실 삼아 일했기에 출근할 곳이 없었는데, 남들은 다 좋겠다고 했지만 나와는 조금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아침 공기를 맞으며 나설 때면 즐거웠다. 무엇보다 한 달에 100만 원이라도 스스로 벌기가 얼마나 힘든 지를 사업 하면서 체감했기에, 이 모든 상황에 감사하며 다닐 수 있었다. 여태껏 해온 일들에 비하면 업무도 너무나 간단했고 '이 정도 쯤이야' 콧노래를 부르며 척척 해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곳 동사무소에서는 또래보다 아주머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를 더 많이 마주한다. 처음에는 어르신들을 상대하는 게 사실 귀찮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못된 마음이 티가 나는 편은 아니어서 어르신들은 나에게 다가오셨다. 나를 궁금해 했고, 안 보이면 찾으셨고, 먹을 것을 나누어주셨다. 어느새 나도 한 분 한 분 얼굴과 성함을 기억하기도 하고, 갑자기 안 보이시면 궁금하기도 하고 그랬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이 곳에서 하루에 한 번, 따뜻한 말과 마음을 꼭 나눴다. 어느 날은 마음이 너무 따뜻하고 몽글해져 기록을 꼭 해야겠다 싶은 날도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사랑스럽고 따뜻한 사람들이 이 곳에 오고 간다. 그리고 나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그 사랑을 나누어 준다.
어디 번듯한 직장이 아닌, 동사무소 오전 근무자로 다닌다는 사실을 숨기고만 싶었다. 그러나 이 곳이 나의 끝도 아니거니와 또래 어떤 젊은이도 하지 못할 값진 경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자랑스럽고 소중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이 곳에서의 추억을 하나씩 남기려고 한다. 사랑스러운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