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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Nov 19. 2023

가족을 결속시킨 것은 어머니의 음식이 아니었을까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아버지가 차남이기 때문이다. 명절이 되면 멀리 부산에 있는 큰집을 부모님과 함께 방문하곤 했다. 큰아버지는 집안의 어른이자 중심이었다. 그렇게 모여서 다 같이 제사를 지내면 요리 솜씨가 좋은 큰어머니와 어머니 숙모님들이 만드신 음식을 다 같이 맛있게 먹고 행복해했다. 그런데 몇 년 전 큰어머니가 갑작스레 췌장암에 걸리셨고 신호 없이 다가온 병으로 우리 모두는 큰어머니와 작별을 해야 했다. 큰어머니가 떠나시고 나니 제사와 음식을 함께 나누던 자리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각자 집안 중심으로 일이 진행되게 되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큰아버지를 중심으로 집안이 돌아가는 것도 맞지만, 우리를 하나로 결속시켜 준 것은 큰어머님을 중심으로 한 음식이 아니었을까 하고.


이번 주말 김장을 다녀왔다.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연례행사다. 올해도 부모님은 작은 텃밭을 빌려 배추를 심었고, 모자라는 것은 추가로 사셨다. 눈이 내린다고 하여 배추는 두 분이 일찍 밭에서 뽑아 집으로 옮겨 놓으셨다. 매년 새벽에 일어나 절여놓은 배추를 부모님과 함께 뒤집고 버무릴 때 필요한 것을 나르는 것이 나의 주된 역할. 김장으로 여동생까지 와서 많지도 않지만 식구가 다 모였다. 어머니가 김장의 모든 걸 추진하시고 계시고, 우리는 옆에서 거들고 먹을 뿐이다. 언젠가 어머니가 힘에 부쳐 김장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면 다들 바쁜 현대인이라는 핑계로 서로 얼굴을 보는 횟수가 일 년에 한 번 줄어들지 않을까 싶기도 한다. 김장은 마쳤고 떠나는 길에 돈을 조금 드렸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잘 도착했다고 카톡 메시지를 가족방에 남겼다. 그렇게 올해 김장이 끝이 났다. 감사하다. 이제 정성이 담긴 맛있는 김치를 일 년간 맛있게 먹으면 된다.



<사진 출처: 금동이네 김장 잔치/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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