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너희 집 앞으로 잠깐 나올래?
지난 금요일 저녁, 우리 가족만 탄 엘리베이터 안. 내가 아내를 보며 적재의 '별 보러 가자' 한 대목을 달달하게(?) 불렀더니, 아이는 벽면 큰 거울 방향으로 몸을 돌려 뜨악한 얼굴로 불편한 반응을 보이고, 아내는 노래가 느끼하다며 그만 부르라고 톤을 높여 질색했다. 모든 게 예상했던 반응이었지만, 알면서도 그냥 감행해 버렸다. 사실 이 노래를 떠올린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다음 날 우리 가족 처음으로 진짜 별을 보러 갈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가족 나들이로 별 구경하러 가는 건 아니었다. 아이 잡지 촬영 때문에 가게 되었다. 아이는 어린이잡지 <개똥이네 놀이터> 정기구독자이자, 필명 자몽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몇 주 전쯤, 잡지사 기자가 아내에게 연락을 했다. '개똥이가 만난 사람'이란 코너가 있는데, 이번에 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에서 천문학자와 함께 하는 코너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아이 참여 의향을 물어보는 내용이었다. 청주에서 아주 먼 곳도 아니고, 천문대는 이전에도 한 번 데려가고 싶었기에 참여하기로 했다.
사전조사로 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을 검색해 봤다. 위치가 국보인 중원고구려비 위쪽 산 정상에 있었다. 이 앞을 자주 지나다녔는데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역시 관심만큼 보인다. 무엇보다 별박사 이태형 관장님 프로필에 눈길이 갔다. 1989년에 출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별자리 안내서인 <재미있는 별자리여행>은 지금까지 무려 30만 부가 팔렸단다. 어마어마한 판매량이다. 1998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소행성 23880을 발견해 '통일'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2011년에는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의 그림 '월하정인'의 제작연대를 천문학적으로 고증하여 발표하신 유명한 분이었다.
저녁 6시 어둠이 내린 천문과학관 입구에서 <개똥이네 놀이터> 기자를 만나고, 시청각실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촬영에 참여하는 개똥이는 총 3명.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왔는데, 한 팀은 서울에서, 다른 한 팀은 단양에서 왔다. 주말 특강 프로그램인 "별박사와 떠나는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에 사전 신청한 두 가족까지 포함해 다섯 팀이 관장님의 강의에 참여했다. 이번 달 특강 주제는 블랙홀. 1시간 특강이 진행되었고, 개똥이들은 "천문학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외계인은 있나요?"와 같은 준비한 질문을 관장님에게 돌아가며 했다. 나는 스타의 어원 설명이 멋있게 느껴졌다. 스타는 '스스로 탄다'라는 뜻. 스스로를 태워서 주변에 빛과 열을 주는 존재가 별이다. 굵고 짧으나, 짧고 굵으나 별처럼 산다는 건 참으로 멋진 말이다.
1시간 강의를 듣고 우리는 천체투영실로 이동했다. 둥근 천장을 화면으로 천문학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었다. 버튼을 누르니 의자가 완전히 뒤로 젖혀졌고, 누워서 밤하늘을 보는 것 같았다. 잠시 뒤 전체 전원이 꺼지고 박사님의 설명과 함께 별자리가 하나씩 켜졌다. 밤하늘의 별자리 위치와 신화 이야기가 곁들여 설명되었다. 그리스 신화를 좋아하는 아이는 책으로 읽었던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 박사님의 이야기에 어떤 신화인지 척척 알아맞혔다.
30분 간 천체투영실에서 강의를 듣고 다음으로 천체 관측을 하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통로에는 저울이 있었다. 행성별 중력 차이로 몸무게가 달라짐을 알려주는 교육장이었다. 달의 중력은 지구 중력의 1/6이어서 달에서의 몸무게는 1/6로 줄어든다. 수성과 화성에서는 지구의 1/3, 금성에서는 0.9배, 토성에서는 지구의 1.15배 이므로 그나마 지구와 비슷. 목성은 지구의 약 2.6배 해당한다. 목성 저울에 올라가니 아이 몸무게는 84kg, 내 몸무게는 176kg이다. 오 마이 갓. ㅎㅎㅎ
다음으로 우리는 보조관측실로 이동했다. 관장님의 설명이 끝나고 천장이 열렸다. 아쉬운 점은 날씨가 흐렸다는 것. 맑은 하늘이었으면 천체망원경으로 슈퍼문을 세세하게 볼 수 있었을 텐데, 이 날은 토성도 제대로 안 보이고 달님도 구름 속에서 아주 잠시 얼굴을 보였다가 다시 숨었다. 아이가 어릴 적에 <달님 안녕>이란 책을 많이 읽어줬다. 책 중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구름 아저씨! 안 돼요. 나오면 안 돼요. 달님이 우니까요.'라고. 이 날은 달님이 아주 많이 우는 날이었다.
마지막으로 주관측실에 가서 주망원경 앞에서 가족 단위로 별박사님과 사진 촬영을 했다. 개똥이 멤버들은 박사님과 따로 모여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2시간 특강과 관측이 끝이 났다. 시청각실로 다시 내려가 박사님의 마무리 멘트를 듣고 기념 선물로 행성이 그려진 자와 스티커 등을 받았다. 그리고 현관으로 나와서 천문과학관 글자 아래에서 다 같이 사진 촬영을 하고 <개똥이네 놀이터>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시간대별로 저녁에 세 번 진행되는 프로그램인데, 신청자로 복도를 가득 메울 정도로 인기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다시 청주로 돌아가야 해서 서둘러 천문과학관을 나왔다. 아이에게 어땠는지 소감을 물으니 "좋았어요. 벅찼어요. 그런데 수학공식은 너무 머리 아플 거 같아요"라고 했다. 돌아가는 길 출출해서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과 라면, 치즈로 요기를 했다. 다 먹고 편의점을 나서는데 구름을 피해 환한 달님이 나왔다. 우리가 갔을 때 이랬어야 했다며 아내가 살짝 아쉬워했다.
군대 시절에 새벽녘 초소 근무를 서면서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본 적이 있다. 순간이었지만 참으로 신기하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12월 13일과 14일에는 최대 100개가 넘는 쌍둥이자리 유성우가 떨어진다고 한다. 여러분도 계신 곳 근처에서 잘 관측해 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