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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 일 하시네요 Aug 30. 2020

강철이와 북엇국

좋은 일 하시네요


세네갈은 나의 첫 파견지이자 첫 아프리카 대륙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무지했기에 그렇게 무모하게 훌훌 떠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세네갈은 불어를 쓰는 국가인데, 고등학교 때 제2 외국어로 불어를 배웠던 것 말고는 불어와 인연이 없던 나는 세네갈에 처음 도착해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도 불어인지 현지어인 월로프어(Wolof) 인지 구별하지 못했다. 그런 나였지만 수도가 아닌 Thies (띠에스)라는 영어가 더욱 통하지 않는 도시에 자리를 잡았고 집을 구해야 하는 큰 숙제를 앞두고 있었다. 


현지 직원과 함께 여러 곳을 보았지만, 상황은 열악했다. 새집처럼 보이지만, 돈이 없어서 짓다만 집은 아직 창문, 문도 제대로 마감되지 않아 불안했고, 부엌뿐만 아니라 온 집안에 바퀴벌레가 돌아다니는 집, 내가 자고 일어난 모양 그대로 침대 매트릭스 모양이 바뀌는 집, 특히 내가 파견 생활을 하던 2011년에는 하루에 3-4시간 정도만 전기 공급이 원활해서 물탱크가 없는 집에서는 대부분 화장실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이곳저곳으로 거처를 옮기며 내가 살 곳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을 안고 지내던 중, 구세주처럼 같은 지역에서 사역하시던 최선교사님 가족이 한국으로 안식년을 보내러 들어가신다는 소식을 접했다. 1년만 들어갔다 오시는 계획이라, 안 그래도 집을 맡아줄 사람을 간절히 찾고 계신다고 했다. 예스! 물탱크에, 냉장고에, 세탁기에, 한국에서 공수한 침대 매트릭스에, 사모님이 하신 김치까지! 나는 선교사님이 부탁하신 몇 개의 리스트와 함께 집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든든한 보디가드 강철이까지!


강철이는 몇몇 한국인 선교사님들의 손을 거쳐 최선교사님의 집에 정착한 절먼 쉐퍼드였다. 세네갈의 모래바람과 더운 날씨 때문에 항상 피부병을 달고 살았지만, 그래도 귀가 쫑긋 하고 한번 짖기 시작하면 우리 동네 개들이 근처에 꼼짝 못 할 만큼 늠름했다. 우리 집에는 작은 마당이 있었는데 마당에서 바람 빠진 축구공을 던지면 잡아 오는 놀이를 좋아했다. 출근했던 내가 돌아오면 마당 문을 열어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는 것도 아주 좋아했다. 그럴 때면 외국인 여자가 혼자 사는 집이라는 소문에 아주 무서운 개랑 함께 산다는 소문이 더해져 혼자 자는 밤에도 조금 덜 무서울 수 있었다. 우기가 되면 스콜처럼 비가 내렸다.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정전이 됐었는데, 그런 날에도 강철이가 마당에서 돌아다니는 소리를 들으면 잠이 들 수 있었다.     


평소에도 장이 좋지 않았던 나는 세네갈에서 지내는 동안 항상 배앓이를 했다. 평일에는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점심을 같이 먹었었는데, 보통 큰 접시에 양념한 밥을 깔고 그 위에 생선이나 닭, 채소를 올려 손으로 나누어 먹는 식이었다. 그렇게 먹는 날들이 계속되면서 계속 배가 아팠다. 물론 끼니를 잘 챙겨 먹지 않는 까닭도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한국 집에 부탁해 말린 북어를 받았다. 집에서도 배가 아플 때는 엄마가 늘 포슬포슬한 계란을 풀어 북엇국을 해주시곤 했다. 북엇국을 먹으면서 나의 배앓이도 조금씩 나아졌다. 



우기가 계속되던 어느 날, 강철의 피부병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피부병이 심해지면서 온갖 벌레들도 꼬이고, 기운이 없는지 밥도 잘 먹지 않았다. 마을의 수의사를 찾아가 약을 받아와 발라주기도 하고 영양제를 타서 주기도 했지만 강철이는 더 힘을 잃었다. 강철아... 죽으면 안 돼.... 선교사님이 맡기고 가신 강철이를 선교사님 가족이 없는 상황에서 잃게 되는 것도 겁이 났지만 강철이 없이 혼자서 지내게 될 날들도 겁이 났다. 강철아.. 힘을 내!! 죽으면 안 돼... 그러던 차에 언젠가 해외에서 강아지를 키우던 친구가 여러 가지 약을 먹여도 효과가 없던 강아지가 북엇국을 먹고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북엇국! 마른 북어와 멸치를 넣고 푹 끓인 뽀얀 국물에 계란을 술술 풀어 강철이에게 주었다. 힘없이 할짝거리던 강철이가 조금씩 북엇국을 먹었다. 강철아 힘을 내!




강철이는 나의 파견 생활이 끝날 때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선교사님이 돌아오신 후 6개월 정도 더 살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선교사님은 조그마한 무덤을 만들어 강철이를 묻어주고 나에게도 사진을 보내주셨다. 강철이를 잘 돌봐줘서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그 이후로 나는 어떤 출장길을 나서든 북엇국을 챙긴다. (요즘은 너무 잘 나와서 마른 북엇국 블록에 뜨거운 물만 부으면 어디서든 북엇국을 먹을 수 있다) 캐리어에 북엇국만 있으면 어떤 오지를 가던지 만병통치약을 챙긴 것처럼 든든하다. 어설펐던 나의 첫 파견 생활에 든든한 한 켠을 차지했던 강철이와 북엇국을 떠올리며.



     정지은 

    그림 이유연

    편집 좋은 일 하시네요(인스타그램 @suchagood_j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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