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은 누가 차려준 끼니로 이루어져 있나요
좋은 일 하시네요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봉사단원으로 생활하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고민은 끼니였습니다. '오늘은 뭘 해 먹을까', '어떤 재료를 사야 하나', '장은 어디서 봐야 하나' 한 끼의 식사에만 이렇게 질문이 쏟아지는데, 그 와중에 내 마음이 원하는 정답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귀찮다고 밥을 하지 않으면 결국 굶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 터라, 끼니에 대한 고민은 일상이었지만 동시에 치열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아온 저조차도 부엌에서 칼을 잡아야 했습니다.
처음 우간다 집 부엌에 들어간 제 모습을 누가 영화화했다면 분명 그 장르는 스릴러였을 겁니다. 칼질 하나하나가 아슬아슬했고, 성냥으로 가스불을 올리는 매순간이 조마조마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부엌에서 힘겹게 해내고 있는 제 모습이 퍽 좋았습니다. 우간다에서 생활이 썩 마음에 들었던 이유 역시, 드디어 내가 내 한 몸을 먹여 살리는 일을 해내고 있다는 느낌에 있었습니다. 또 과거부터 쌓여 있던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내 손'에 대한 부채의식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진다는 느낌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먹고 정리하고 또 먹고 정리하는 일이 나 혼자만을 위한 정도의 고됨이라면 퍽 어렵지 않고 즐겁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우간다 생활 이전까지 저는 제 인생을 통틀어 끼니를 고민하고 요리해 본 기억이 없습니다. 하루 세 끼를 태어나면서부터 먹어왔는데, 제가 차린 끼니를 먹은 기억이 없다는 건 제 인생의 에너지원이 모두 다른 사람에게서 왔다는 뜻입니다. 그 다른 사람은 99% 엄마고요. 엄마는 제가 집안일을 하게 두지 않았습니다. 밥 차리고 설거지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성인이 되어서도 애써 외면하다가 이제 더 이상 외면하기에 민망한 나이에 이르러서야 슬금슬금 설거지 그릇이라도 잡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마저도 불과 몇 년 되지 않았지만 말이죠. 하지만 엄마는 제가 그릇이라도 쳐다보면 화부터 내셨습니다. 거슬리니까 여기 있지 말라는 거죠. 그러고는 설거지를 다 끝내시고는 '앞으로 남자들도 집안일 잘해야 된다는데 너는 어떡하냐'고 걱정을 늘어놓으셨습니다.
이러한 걱정에 아빠까지 가세한다면 어김없이 과열되곤 했습니다. 세 명의 가족 구성원 중 두 명의 남자는 집안일에 무능하기 그지없는데 그 와중에 아빠가 낫니, 아들이 낫니로 경쟁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덜 어설픈지 경쟁이 지속되면, 엄마의 한 마디가 언제나 상황을 종식시켰습니다. "아빠는 그래도 지금 엄마 만나서 걱정 안 해도 되지만, 너는 집안일 하나도 못하는데 누가 너랑 같이 살겠어." 논쟁의 끝에서 저는 항상 패배자였습니다.
이처럼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는 삶을 살아왔으면서도 엄마를 다 이해한 척, 여성의 삶을 다 이해한 척, 의식 있는 척은 다하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엄마의 아들이고, 곧 아내의 남편이자 딸의 아빠가 될 사람으로서 당연히 여성의 삶을 이해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 아니냐면서, 이 대답에 혼자 퍽 만족스러워했던 겁니다. 하지만 정작 제 삶은 누군가가 차려준 음식으로만 이루어져 있었고, 그 누군가를 생각해보면 백에 구십구는 엄마, 할머니, 혹은 다른 여성들이 차려준 음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제 삶을 제가 차린 음식으로 채워 나가기 위해, 그날은 소고기 필렛을 사 와 찹스테이크를 해 먹었던 것 같습니다. 대단한 요리같아 보이지만, 팬 하나에 다 넣고 볶는 그런 쉬운 요리기에 할 수 있었습니다. 양파, 마늘, 파프리카를 먹기 좋게 썰고 소고기와 채소를 볶았습니다. 한참을 볶다 보니 땀이 쏟아졌습니다. 소고기 필렛이 너무 두꺼워서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한상 차려내고 한 입을 베어 물었습니다. 불현듯 가족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 가족은 매주 금요일 저녁에 함께 자연스럽게 맥주를 마시곤 했는데, 그때 주로 엄마가 만들었던 안주가 찹스테이크였습니다. 우간다에서 생각난 엄마의 메뉴가 서양식이라는 점이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말이죠. 찹스테이크를 만들며 땀을 흘리고 있으니, 그제야 가족들이 다 같이 맥주를 마실 때 엄마가 맥주를 마시지 못하고 부채질하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집안일을 시키지도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집안일을 못하는 아들을 걱정하는 엄마를 어렴풋이 이해하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글 김민성, 우간다에서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근무했습니다. 머리보단 가슴으로 이해하는 것을 더 잘합니다. 대체로 여유롭고 가끔 노력합니다.
그림 이유연
편집 좋은 일 하시네요(인스타그램 @suchagood_jo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