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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산타

BRCQ에서 14

by 지안

12월 25일. 서구권 국가에서 가장 큰 명절이지만, 외지인들에게는 유독 쓸쓸한 날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주에 Jin이 매장에서 직원들끼리 시크릿 산타를 하는 게 어떻냐는 제안을 했다. 시크릿 산타는 일종의 마니또 같은 것으로 제비뽑기로 다른 여러 직원들 중 한 명의 산타가 돼서, 몰래 선물을 사서 선물해 주는 것이었다. 매장에는 15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고, 우리는 뽑기를 해서 누군가의 시크릿 산타에 되었다.


매니저님이 매장 한편에 큰 쇼핑백을 놔두었고, 직원들은 각자 자신이 뽑은 사람을 위해 선물을 하나씩 준비해서 몰래 그 쇼핑백에 넣어두면, 크리스마스날 다 같이 모여서 시크릿 산타에게 받은 선물을 가져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다들 뭘 그런 걸 하냐고 부끄러워했지만, 결국 우리 모두 선물을 하나씩 주고받았다.


직원들은 각자 자기가 누굴 뽑았는지는 밝히지 않고, 일하면서 틈틈이 무얼 받고 싶은지 얘기했다. 나는 당시 매장에 출근하면 차를 굉장히 많이 마셨다. 교정 유지기를 끼고 일하던 시기라서, 매장에서 뭘 먹을 수가 없었고, 배가 고프거나, 특히 비가 와서 약간 추운 날 항상 차를 마셨다. 매장에는 매니저님이 사놓은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차가 꽤 있었는데, 거의 내가 다 마셨다(그렇게 맛있지는 않았고, 그냥 있는 차가 그것밖에 없어서 마셨다). 다른 직원이 나에게 어떤 선물을 갖고 싶냐고 물어봤었는데, 마침 차를 마시고 있었어서, 별생각 없이 좋은 차를 받고 싶다고 대답했다.


IMG_0711.jpg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진 어느 날, 스트라스필드(Strathfield)에서 찍은 큰 크리스마스 트리 ©Jian


크리스마스 전후로 나와 급격하게 친해진 직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Diana였다. Diana는 약간 괄괄한 성격에 여자 직원이었다. 그녀는 나보다 세 살 어렸고, 항상 장난기 많았고 시끄러웠다(참고로 나는 시끄럽고 말이 많아서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특히 일터에서는). 그녀는 나보다 몇 주 늦게 일을 시작했는데, 나와 시프트가 거의 겹치지 않아서 처음에는 거의 말도 못 하고 얼굴만 겨우 아는 사이였다가, 내가 저녁 마감 시프트로 옮겨지면서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학생 비자로 호주에 왔고, 어학당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크고 네모난 뿔테 안경을 항상 썼고, 메이크업은 거의 하지 않았다(정확히는 클럽에 가는 날만 하고 왔다). 자기 의견을 나타내는 데 스스럼이 없었고, 그만큼 남들에게 장난도 잘 치고, 잘 받아주는 성격이었다. 다만 일머리는 크게 없었는데, 일 시작할 때 Hannah누나한테 그렇게 혼났다고 자주 하소연했다.


Diana는 Katie 누나의 시크릿 산타였는데, 그녀는 어떤 선물을 사줘야 할지 한참 고민하다가 가볍게 핸드크림 세트로 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월드스퀘어(World Square, 시드니 시내에 있는 쇼핑 단지) 근처에 살았고, 쉬는 날, 나와 함께 선물을 사러 갔다. 월드스퀘어 안에 있는 록시땅 매장에서 핸드크림을 샀는데, 그때가 내가 처음으로 록시땅 매장에 방문해본 날이었다. 향수, 핸드크림 등을 판매하는 곳이었는데, 밝은 노란색과 청록색으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고, 좋은 향이 가득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핸드크림으로 꽤 유명한 브랜드 였다.


내가 뽑은 직원은 Alisa였는데(와플을 잘못 구워서 매니저님께 혼난 그 직원이다), Alisa는 현금을 갖고 싶다고 말했었다. 현금이라니, 조금 성의가 없어 보여서 현금에 더해 가벼운 향수 하나 넣어서 선물해 주었다. 물론 향수는 그 록시땅에서 구매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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