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CQ에서 15
시드니에서는 12월 31일 저녁에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릿지가 보이는 곳(바로 BRCQ 앞이다)에서 큰 행사가 열린다. 특히 하버브릿지와 오페라하우스에서 불꽃놀이가 펼쳐지는데, 그 광경을 보러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했다.
크리스마스 주 어느 날, 사장님이 새해 날 일 할 직원들이 있는지 의사를 물었다. 새해 날은 수많은 관광객들이 써큘러 키(Circular Quay)로 모여들고, 심지어 여름의 한가운데라서 굉장히 더운 날씨이다. 이는 곧 매우 매우 바쁜 하루가 될 것이라는 의미였다. 나는 별다른 약속이 없었고, 무엇보다 폭죽을 감상하기에는 결국 매장 앞이 가장 잘 보이는 장소였기 때문에, 일을 하겠다고 했다.
결전의 12월 31일 아침.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서(전날 마감을 했다) 점심을 먹고 아침에 출근했던 직원 한 명에게 많이 바쁘냐고 카톡으로 물어봤다. 일하느라 금방 답장을 못할 줄 았았는데, 의외로 금방 답장이 왔다. 일찍부터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경찰들이 미리 예약 티켓을 구매한 사람만 선착장 안쪽으로(오페라 하우스 쪽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해서, 정작 매장은 하나도 바쁘지 않았다고 답변이 왔다. 오전에 무려 직원들이 5명이나 대기하고 있었는데, 손님이 너무 없어서 중간에 사장님이 가게로 직접 와서 몇몇 직원들을 일찍 돌려보냈다나. 자신도 그냥 일찍 퇴근하고 친구들과 만나 놀기로 해서 약속 장소로 나가는 중이라고 했다. 세상에, 그러면 저녁에 사람들이 더 많이 몰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오후 3시가 되어 출근 준비를 했다. 지하철을 타고 써큘러 키 역에서 내리면 인파에 치어(정확히는 선착장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저녁에 무료입장이 열리는 시간대를 기다리는 사람들에 치어) 못 빠져나갈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마틴 플레이스(Martin Place) 역에서 내려서 매장 뒤쪽의 보타닉 가든(Botanic Garden) 쪽으로 걸어서 갔다(매장 뒤쪽 길을 이용한 것이었다). 다행히 보타닉 가든 쪽은 사람이 많지는 않았는데, 매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역시 경찰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나는 미리 발급받은 통행증(해당 지역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통행증을 미리 발급받았다)을 내고 매장으로 출근했다.
매장 앞은 그야말로 썰렁했다. 손님은 아무도 없었고, 사장님이 발을 동동 구르며 손님들을 못 들어오게 하는 경찰들을 욕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저녁이 되자 그때서야 경찰들은 선착장 안쪽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입장하기 시작했고, 금방 북적북적해졌다. 우리도 덩달아 바빠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점점 지나 12월 31일 밤 11시 59분이 되자 하버 브릿지 양쪽 기둥에 큰 화면이 보이면서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방문객들도 하버 브릿지와 불꽃놀이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어차피 불꽃놀이가 시작되면 불꽃이 터지는 순간에는 아무도 아이스크림을 사러 오지는 않으니, 사장님이, 일하고 있는 직원들도 나가서 함께 불꽃놀이를 보고 오라고 하셔서, 함께 일하던 직원들도 모두 나가 불꽃놀이를 볼 준비를 했다.
10초 전, 숫자 모양 불꽃들이 터지며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불꽃놀이는 정말 장관이었다. 영상을 쭉 찍었는데, 브런치에는 영상을 올리지 못하는 점이 참 아쉽다.
화려한 불꽃놀이가 끝나고, 지옥의 바쁨이 찾아왔다. 우리 직원들을 불꽃놀이가 끝나자마자 매장으로 다시 돌아와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서서히 방문객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가는 와중에 BRCQ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사 갔다. 우리는 쉴 새 없이 일했는데, 무엇보다 매니저님은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는 아이스크림을 계속 리필하느라 서빙을 제대로 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였다.
그날 근무는 1월 1일 새벽 1시 30분에 겨우 마무리되었다.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왔는데, 집이 텅 비어있었다. 다들 놀러 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