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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마(Kiama) 여행 1

시드니 근교 여행 1

by 지안

'여행을 가야겠다.' 2019년 3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BRCQ에서 일을 시작한 지 벌써 5개월, 매일매일 출퇴근을 반복하던 일상에 약간의 권태가 찾아왔다. 인간관계도, 영어실력도 크게 늘지 않기 시작했고, 그저 일어나서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밥 먹는 루틴이 어느새 완전히 자리 잡았다. 슬슬 호주 생활이 지루해지기 시작할 때였다.


호주까지 왔으니 여행은 꼭 가봐야겠다고 항상 다짐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정작 어디로 여행을 가야 할지, 어떻게 가야 할지는 생각하지 않은 채 방향 잃은 다짐만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행을 정말로 가야겠다'는 생각은, 그러던 어느 날 벼락처럼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냥 이렇게 흘려보내기에는 이 시간이 너무 아까웠고, 내 남은 인생에 또 언제 이 먼 호주땅을 다시 밟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짜내서라도 여행을 다녀와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문제는... 어디로 가야 하지?

시드니 근교에는 몇몇 유명한 여행지가 있다. 대표적으로 블루 마운틴(Blue Mountain), 팜비치(Palm Beach) 등이다. 그 외에도 BRCQ에서 함께 일하는 친구들에게 포트 스티븐스(Port Stephens, 나는 아직도 이 항구의 이름을 '스티븐스'로 발음하는지, '스테펀스'로 발음하는지 잘 모른다), 키아마(Kiama) 등을 추천받았다.


열심히 일하고 아껴 모아둔 돈도 있겠다, 네 군데를 모두 여행하기로 했다. 첫 여행지는 '키아마'로 결정했다. 키아마는 시드니에서 남쪽으로 차를 타고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시골 마을로, 아름다운 해안 경치와 항구, 등대, 그리고 블로우 홀(Blowhole)로 유명한 곳이다.


시드니에서는 키아마로 직통으로 가는 기차가 있긴 하지만, 나는 차를 렌트해서 다녀오는 방법을 선택했다. 넓은 대륙국가에서 여행은 역시 로드트립이 낭만 있는 법이니까. 게다가 시드니와 키아마 사이에는 울릉공(Wollongong)이라는 도시와, 피규어 8 풀(Figure 8 pool)이라는 독특한 관광지도 함께 있으니, 차로 다녀오면서 모두 훑어볼 계획을 짰다.


여행은 당일치기로 계획하였다. 당시 나는 BRCQ에서 주 6일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하루정도 휴가를 내는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지만, 문제는 1박 2일 여행을 계획할 경우 추가로 드는 렌트비와 숙박비가 꽤 컸다는 점이다. 게다가 내가 일주일에 내는 집세가 얼만데! 잠은 반드시 집에서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키아마까지 차로는 두 시간 거리이고, 왕복하면 무려 4시간을 빼야 하는 상황이라, 당일치기 일정에 맞추기 위해 아침 가장 이른 시간에 렌트를 예약했다. 렌터카 회사는 대부분 타겟이 여행객이라 공항 근처에 모여있었고, 나는 시드니 시내에 이미 살고 있지만 별 수 없이 렌트를 위해 공항으로 이동해야 했다.


새벽 5시, 잠자리에서 일어나 대충 씻고 지하철을 타고 출발하였다. 공항에 도착해서 지정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렌터카 직원이 픽업하러 와 주었다. 그는 나를 태우고, 다른 픽업장소에 도착해서 손님 두 팀을 더 태우고 나서야 사무실로 출발하였다. 나를 제외하고는 가족끼리, 친구끼리 모인 여행객이었고, 막 공항에서 나온 사람들 같았다. 차 안이 시끌벅적해 지자 비로소 피로가 서서히 풀리고 여행을 시작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공항에서 픽업을 기다리며 찍은 한 컷 ©Jian


아침 6시 15분쯤, 렌터카 사무실에 도착하였다. 이것저것 서류를 쓰고 차를 인수받았다. 차는 도요타 코롤라였는데, 크지는 않았지만 혼자 운전하기 적당한 사이즈였던 것 같다.


호주는 (영국, 일본처럼) 좌측통행 국가이기 때문에 차의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었다. 운전석에 맞춰 와이퍼, 방향지시등(+전조등) 조작 레버도 서로 반대였고, 기어는 왼손으로 조작했다. 다만 페달은 좌핸들 차량과 동일하게 브레이크가 가운데, 엑셀이 오른쪽에 있었다[자동기어 차량이어서 클러치는 따로 없었다. 듣기로는 기어 방향도 몸 쪽(오른쪽) 위가 1단, 바깥쪽(왼쪽) 아래가 후진으로 좌핸들 차량과 완전히 반대라고 한다].


나는 한국에서 국제운전면허를 따로 발급받아왔기 때문에, 법적으로 운전 자체는 가능했지만, 우핸들 차량은 처음 몰아보는 것이라 약간 생소하긴 했다. 하지만 이내 적응해서 큰 무리 없이 운전할 수 있었다. 오히려 운행을 하다 보니 좌핸들 차량보다 더 운전이 직관적이고 좋다고 느꼈는데, 아마 오른손잡이인 내 입장에서 더 자주 쓰는 방향지시등을 오른손으로 조작하고, 많이 건드리지 않는 기어나 와이퍼를 왼손으로 조작해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차량 운전법보다는 호주의 교통법규를 익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꼈는데, 특히 주차 규정이라던가, 회전교차로에서 진입 진출 방법을 전날 철저히 유튜브로 배웠고(호주에는 신호등 대신 회전교차로가 정말 많았다), 그래서인지 당일 운전은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다만 후진 주차는 감각이 반대라 약간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렌터카 사무실 주차장 앞 공터에서 약간 연습해 본 뒤, 곧바로 키아마로 출발했다. 아침 7시, 나름 일찍 출발했지만 시드니를 빠져나가는 도로에는 벌써 통행량이 꽤 있었다. 다행히 출근길 러시아워에는 걸리지 않고 시드니를 빠져나갈 수 있었다.


운전길은 내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호주는 큰 대륙이니 마치 미국 서부처럼 뻥 뚫린 벌판에 길이 가로질러 나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산악지형이 많아서 시야가 답답했다. 길은 일자로 쭉 뚫려있는 곳도 물론 있었지만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도 한참 이어졌고, 키아마로 가는 내내 주변에 수많은 화물차와 트럭이 함께 달렸다.


그렇게 운전하기를 두 시간 여. 키아마에 마침내 도착했다. 두 시간의 답답한 운전 경험을 싹 날려줄 만큼 아름다운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옥빛 해변과 주상절리, 푸른 잔디밭과 열대나무. 얼핏 보면 마치 제주도의 한 지역 같았다. ©Jian
바닷물을 가두어 만든 수영장이 시그니처 ©Jian
관광객을 위한 이정표 ©Jian
시드니 시내에서 기차를 타고 오기도 편하다. 키아마 역 ©Jian


본격적으로 마을을 둘러보기 전에, 허기를 채우기 위해 서브웨이에 들렀다. 주중 아침이라 그런가 마을은 전반적으로 한산했다. 따로 식당이 오픈한 곳은 없었고 기껏해야 기념품 샵 몇 개가 오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브웨이도 막 오픈을 했는지 직원 한 명이 이것저것 재료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BLT샌드위치를 포장 주문하고, 콜라도 하나 함께 구매하여, 블로우홀(Blowhole)을 보러 이동했다.


블로우홀은 키아마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블로우홀이란 해안가 암석 지형 중에, 바닷물이 암석의 아랫부분만 안쪽으로 깊게 침식시킨 상태에서, 암석 위쪽의 약한 부분이 동그랗게 무너지면서 생기는 일종의 구멍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구멍이 바닥의 모래사장까지 뚫려 있고, 모래사장 안쪽은 바다로 곧장 연결되어 있어서, 파도가 쳐서 바닷물이 세차게 밀려오면 구멍을 통해 물이 위로 솟구친다. 물이 솟구치는 모양이 마치 고래가 분수공으로 물을 뿜어내는 것과 비슷하여 '블로우홀(분수공)'이라고 부르나 보다.


블로우홀에서 물이 솟구치는 것을 보려면 사실 파도가 어느 정도 치고 바람이 부는 날씨가 되어야 했는데, 이 날 키아마는 타향의 동양인을 환영하기라도 하듯 오락가락하는 날씨를 보여주었다. 바람이 제법 불어서 파도가 쳤고 하늘은 흐렸다가 맑았다가를 반복했다. 기온이 제법 쌀쌀했는데, 산책하기에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블로우홀(Blowhole) ©Jian
블로우홀(Blowhole). 솟구치는 물이 퍼져 조그마한 무지개가 피었다. ©Jian


솟구치는 바닷물을 수차례 촬영하고, 나는 근처 산책을 시작했다. 블로우홀 뒤쪽에는 작은 등대가 하나 있었는데, 실제로 운영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관광객들의 사진 명소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키아마의 등대 ©Jian
키아마의 등대 ©Jian


키아마는 기본적으로 해변이 아름다운 곳이지만, 그와 동시에 항구이기도 했다. 마을 뒤편으로 돌아가니 낚싯배가 여럿 보였고, 문은 닫았지만 조그마한 피시 마켓(Fish Market)도 볼 수 있었다. 배가 지상으로 올라오는 길에는 펠리컨인지 왜가리인지 잘 모를 새 여럿이 쉬고 있기도 했다. 항구에서 풍겨오는 비릿한 바다내음은, 찬 공기와 평화로운 분위기에 얽혀 생각보다 기분 좋았다.


키아마 항구. 어부들이 배를 정비하고 있다. ©Jian
키아마 피시 마켓(Fish Market) ©Jian
눈매가 무섭다. ©Jian




산책을 어느 정도 마치고, 나는 차를 타고 키아마 이곳저곳을 더 돌아다녀 보기로 하였다. 아름다운 해안을 높은 곳에서 바라보고 싶어서 가까운 고지대 쪽으로 운전해 갔다. 꽤 높은 언덕 위로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비포장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고, 좌우로 넓은 목초지가 펼쳐졌다. 해안가와는 또 다른 풍경에, 차를 가지고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초지는 낮은 울타리로 경계 지어 있었고, 앉아서 쉬고 있는 젖소 무리와 말 한 쌍을 볼 수 있었다. 조용한 자연의 손길에 젖어 들어 나는 차를 세우고 한참이나 그것들을 바라보다가, 사진을 찍고, 시드니로 돌아오는 길에 올랐다.


목초지에 쉬고 있는 소들 ©Jian
풀을 뜯어먹는 말 한 쌍 ©Jian
언덕 위에서 바라본 키아마 해변 ©J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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