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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주 May 23. 2018

무엇이 무엇이 진짜일까?

앤디워홀과 시뮬라크르

진짜와 진짜



아이돌을 빼놓고 청소년 문화를 논할 수 없다. 이제 아이돌은 아이들 문화 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아이들은 동요 대신 최신 가요를 부르고 율동 대신 클럽 댄스를 춘다.

아이들의 눈과 귀는 온통 아이돌의 일거수일투족에 향해있다. 



유명 아이돌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로 올라온 다음 날에는 교실에 피바람이 몰아친다.

아이들은 무수히 쏟아지는 연예기사와 댓글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검사가 되었다가 변호사가 되기도 하고 때론 판사가 되기도 한다. 



최근 모 유명 아이돌 멤버의 인성 문제가 불거져 나왔을 때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한 프로그램에서 보였던 아이돌의 행동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그 사건에 열정적이었고 치열했다. 여기저기에서 카더라 통신들이 난발되고, 해당 아이돌의 유명세만큼이나 아이들의 재판 또한 격렬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점은 이 논란거리는 어느 시점 이후로 사실문제와 전혀 상관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각자 자신의 원하는 결론으로 마무리 짓는다.

그 누구보다도 격렬했지만, 결론은 이미 자신의 마음속에 정해져 있다. 



"그게 뭐가 중요해!"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논쟁 그 자체인 것처럼 보였다. 애당초 사실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지만, 더 중요한 점은 그것을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내 눈앞에 보이는 그것, 즉 이미지일 뿐이다.



결국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방송을 통해 보여지는 이미지뿐이다. 방탄소년단의 누군가가 원래는 일진이었는지 어쨌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어떻게 보여지는 가이다. 그리고 그것이 빗나갔을 때 진실이라고 보이는 또 다른 가짜가 밝혀졌을 때 우리는 분노한다.  마치 아이들처럼.



물론 우리는 진실을 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진실을 추구하는 순간조차도 깨지는 진실을 원할 뿐이다. 나는 의심을 했고 너는 그 의심의 결과를 확증시켜줄 무언가의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 오셀로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은 진실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실이기를 바라는 것을 원한다. 

여기에서 진실은 설 자리가 없다. 



어쩌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보다 이미지일 수 있다. 우리는 바로 그 이미지를 소비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이미지의 정치학을 누구보다 잘 써먹은 사람이 있다. 

바로 앤디 워홀이다. 


앤디 워홀,  마릴린 먼로 두 폭(Marilyn Diptych), 1962, 실크스크린에 유화와 아크릴릭과 에나멜



이 작품을 보라. 

사실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혹은 애매하다고 여겨지는 이 작품은 워홀의 이미지 마케팅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작품의 미학적 성과나 철학적 담론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잘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대중 스타 그중에서도 가장  '핫' 한 스타여야 했다. 이때의 핫함은 좋은 의미만을 말하지 않는다.  어쨌든 이야기,  즉 이미지를 생산해내는 스타여야 했다. 



이미지


그것이 바로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었으므로.

우리는 이미지 속에 산다. 

이 스펙터클한 이미지의 세계 속에서 우리는 갈팔 질 팡 마치 우리 반 아이들이 아이돌 뉴스 더미에서 길을 잃었던 것처럼 길을 잃는다. 이런 범람하는 이미지의 세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누구도 답을 말해줄 수는 없겠지만 그것을 가장 잘 이용했던 한 사람으로서 워홀은 말한다. 

기계화 자동화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그것은 기계가 되는 것이다.


“The  reason  I’m  painting  this  way  is  that  I  want  to  be  a  machine, 
 and  I  feel whatever I do and do machine-like is what I want to do. ”
                                                     
출처 : 'What Is Pop Art? Interviews with Eight Painters', Art News, November 1963.



워홀이 생각한 미래는 우리가 생각했던 미래와는 조금 다르다. 그는 우리가 세탁기 전자레인지, 냉장고를 도저히 사용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처럼 TV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TV라기보다는 TV로 인해 생산되는 이미지의 세계이다.



이런 세계에 어떻게 대항하겠는가.



우리가 아무리 빠르게 손빨래를 한다고 한들 세탁기를 당해낼 도리가 없는 것처럼, 진군하는 이 이미지들을 거부할 도리가 없다고 워홀은 생각했다. 우리가 자동화 기계화되는 사회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 워홀은 전혀 다른 전략을 취한다. 



그러므로 그는 공장을 지었다 이미지를 만드는 공장을.

유명해지고 싶어 유명 스타를, 아니 그의 이미지를 생산했다.

말 그대로 '생산'이다.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올라오는 캠벨 수프처럼 말이다. 


앤디 워홀, 32개의 캠벨 스프통조림 캔버스에 실크스크린 (32Campbell's Soup Cans), 1961-62
앤디 워홀, 푸른 코카콜라 병들 캔버스에 아크릴과 실크스크린Green CoCa-Cola Bottles), 1962


이렇게  "생산"되는 이미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147번 컨베이어 벨트를 차고 올라온 42번 캠벨 수프와 224번 컨베이어 벨트를 차고 올라온 156번 캠벨 수프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 캠벨 수프일까? 아니 좀 더 쉽게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는 돈을 좋아하니 돈을 가치 기준으로 잡자면 147번 컨베이어 벨트를 차고 올라온 42번 캠벨 수프와 224번 컨베이어 벨트를 차고 올라온  156번 캠벨 수프 중 어느 쪽이 더 비싼 캠벨 수프일까?



딱히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중요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딱히” 중요한 것이 없는 세계.

그것이 워홀의 시뮬라크르의 세계이다. 


 <참고> 여기에서 시뮬라크르란 플라톤이 처음 이야기한 개념이다. 플라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이데아'를 복제한 세계라고 생각했다. 곧 인간의 삶 자체가 이데아의 복제물이다. 시뮬라크르는 복제물을 다시 복제한 것을 말한다. 복제가 되면 될수록 '진짜'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진다. 그래서 플라톤은 시뮬라크르를 지금 여기에 실재(實在) 하지 않는 것이라 하여 전혀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들뢰즈는 시뮬라크르를 단순히 복제의 복제물이 아니다. 그는 시뮬라크르가 이전의 모델이나 모델을 복제한 복제물과는 전혀 다른 독립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즉, 들뢰즈의 시뮬라크르는 모델과 같아지려는 것이 아니라, 모델을 뛰어넘어 새로운 자신의 공간을 창조해 가는 역동성과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시뮬라크르를 단순한 흉내나 가짜(복제물)와는 확연히 구분했다.


첫 번째 나온 캔이든,

가장 마지막에 나온 캔이든

어쨌든 캠벨 수프이고, 어쨌든 맛있는 캠벨 수프이고, 어쨌든 1.2달러짜리 캠벨 수프이다.

진짜와 가짜,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이 없는 세상.


그것이 워홀의 시뮬라크르 세계이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나는 특별해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는 언제나 평범해지려고 합니다.




특별함이 없는 세상은 얼핏 가치 없는 세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은 완전히 민주적인 세상이다. 

특별함이 있기에 특별하지 않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특별함이 없는 세상은 특별하지 않는 것도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역설적이게도 모두가 특별하게 된다. 모든 대상이 고유성 그 자체로 긍정된다. 



나는 내 것을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내 대신 제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한 실크 스크린 판을 이용하여
누구도 그 그림이 정말 내 손에 의한 것인지 또는
다른 사람들에 의한 것인지를 잘 알 수 없게 끔 된다면 그것은 아주 멋진 일이다.



특별함이 없는 세상,

작품으로 보자면, 원본, 오리지널리티가 사라진 세상이다.



복제품 모두가 진짜가 된다. 말이 복제품이지, 그냥 완전히 다른 또 하나의 원본일 뿐이다. 

단순한 흉내나 가짜가 아닌 독자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워홀의 작품에는 에디션 번호가 없다. 2/20이건 19/20이건 상관이 없게 된다. 그저 모두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하나의 작품일 뿐이다.



원본과 정답이 없는 세상, 

이는 우리가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더 이상 진짜 아이돌의 모습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 

뮤직뱅크에서 보이는 이미지, 예능에서 보이는 이미지, 팬 미팅에서 보이는 이미지, 그 모두가 그 아이돌이다. 워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를 알고 싶으면 작품의 표면만 봐주세요. 뒷면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시뮬라크르를 소비하며 살아간다.

시뮬라크르의 세상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우리가 시뮬라크르가 되는 것이다.

모두가 시뮬라크르인 세상, 모두가 긍정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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