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홀랑 Oct 08. 2020

3. 한살한살 좁아지는 시야와 세상

내가 사는 불편한 세상





 대학시절 남 말하기 좋아하던 선배들이 세상의 진리인양 말하던 것들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더더욱 별 말 같지도 않은 것들인데, 그중 나에게 기억에 남는 2가지 말이 있다.



 첫 번째, “금속회사에선 여자 안 뽑아.” 나는 신소재공학을 전공했다. 신소재공학 전공 수업 중 반 이상이 금속 관련 수업이었던 당시 나는 저 말을 듣고, ‘뭐? 여자라고 안 뽑아? 그럼 안 배워’라고 생각하며 화학 복수전공을 통해 금속 수업을 피해 듣기 시작했었다. 공학계열 성차별이 나의 진로를 바꿔버린 것이다. 별 병신 같은. 퉤. 뭐, 결론적으로 보면 학문적으로 풍부한 학사를 보냈고, 여자 안 뽑는다던 금속 회사(뽑긴 하더라, 60:1 정도 비율로)가 아닌 반도체 분야로 입사해서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은 흐름을 맞았지만, 내 선택에 있어서 ‘못’한다는 말이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아주 거지같다. 고용 차별하는 사람들은 모두 코로나 걸리고, 지나가다 벼락 맞라.



 그리고 두 번째. “대학 때 친해봤자, 졸업하면 중소는 중소끼리, 중견은 중견끼리, 대기업은 대기업애들끼리 놀아. 지금 친해도 아무짝에 쓸모없어.” 이 말은 듣자마자 믿지도 않았을뿐더러 이 말이 틀린 말이란 걸 정확히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고 저 말에 반박했던 명제는 어쩌면 맞지 않았고, 이 개소리가 어떤 말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어렴풋이 알 거 같긴 하다.



 저 말을 처음 들었던 20대 초반 꿈과 의욕을 지금의 배로 갖고 있던 때에 나는 ‘우린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며 더 넓은 세상을 배워간다.’라는 명제가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스펙트럼이 점점 넓어진다.’라는 명제의 충분조건이라 생각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나는 이 사람 저 사람 모두를 담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당연히 직장이 뭐가 중요해, 우리 사이는 변하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보니, 그 조건은 맞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나는 지금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겁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제한된 시간 속에서 사람을 만나야 하기에 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나와 말이 잘 통하고,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자주 만나게 된다. 그렇다고 선배들이 말했던 이상한 개소리가 맞단 건 아니다. 그렇지만 대학교 동기들과 대화 중 각자의 공감대는 분명히 있었고, 이 공감대는 갈수록 세속적인 것도 포함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실제로 선배들이 말한 건 틀린 말이었단 건 극명한 사실임에도, 나는 계속 서로를 이해해줄 사람을 찾아간다. 결국 오래 만난 사람보단,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더 편해져 가는 건 사실이다.



 내 생각의 성장이 아닌 환경의 변화가 내게 더 큰 영향을 미친 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흠...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나를 힘들게 하던 것들 중 하나였는데, 써놓고 보니까 당연한 소리를 써 논거 같아서 이 글을 올릴까 말까 계속 고민중이다.



 세상이 변한다는 것이 이런 것인지 난 몰랐다. 세상이 변하는 건지 내가 변하는 건지. 더 배우고 싶은 나는 뭐가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모르는게 너무 많은 세상이다. 어떻게 흘러갈까.








매거진의 이전글 2. 삼성의 퇴직 문화, 이대로 괜찮지 않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