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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랑 Mar 20. 2020

1. 할머니와 죽지 않을 병

할머니와 죽지 않을 병




 한 달 만에 본 할머니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모든 걸 잃은 듯이 절망만 하고 있었다. 절대 죽지 않을 병이 가져온 우울이 그녀를 세상과 멀어지게 하고 있었다.

 

 한 달 전, 할머니에게 바이러스가 찾아왔다. 바이러스는 그녀를 조금 불편게는 해도 절대 죽이진 않을 병을 가지고 왔다. 그녀에게 바이러스가 찾아 온건 처음이 아니다. 이번이 두 번째다. 두 해 전 처음 이 바이러스가 왔을 땐 시골에서 읍내를 오가며 치료했고, 그때만 해도 할머니는 시골에서 다른 날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날들을 보냈다. 병은 아주 오랫동안 그녀를 괴롭혔다. 어느 병이나 그렇듯 젊은 사람은 몇 달도 안되어 완치되지만 나이가 많을수록 완치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완치되지 않는다. 그녀가 조금 더 젊었더라면 빨리 병을 이겨냈겠지만, 연세가 연세인지라 첫 번째 병이 났기까진 꽤 오래 걸렸다. 두 번째 병이 오기 전까지 그녀는 단지 자신이 병들었다는 사실 때문에 당신의 생일 같은 모두 모이는 행사를 꺼려하시긴 했어도,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언제나 항상 내가 아는 그 할머니였다.

 


 이 병은 바이러스성임에도 가족력이 아주 강하다. 30년 전에 다섯째 자식인 나의 엄마도 이 병을 잠시 앓았고, 두 해 전 그녀가 병에 걸린 후엔 그녀의 첫째, 둘째, 셋째 자식과 손녀까지 쪼르르르 이 병을 앓았다. 우리 가족은 언제나 한번 걸린 사람은 면역이 생겨 다신 걸리지 않는다 생각했지만, 그녀에게 병이 다시 찾아오면서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몇 해만에 없던 병이 한 번에 우르르 생기니, 그녀는 무언가 잘못됐다 느끼고, 용하다는 무당에게 찾아가기도 했다. 무당은 얼마 전 시골집의 창고를 헐어버린 게 문제라고 결론을 내렸고, 그녀와 그녀의 딸은 그 창고 자리에 술을 부었다. 사실 병이 모두에게 생기고 난 뒤에 창고를 헐었던 거지만… 술을 부었다.

 


 우리 가족들은 이제 이 병을 몇 번 겪다 보니, 병을 이겨내는 노하우도 좀 생기고 도시의 유명하다고 소문난 병원에 빠삭한 지경에 이르렀다. 자식들은 그녀가 지난번 병이 어느 정도 나을 때까지 오래 걸린 이유가 그저 그런 읍내 병원에서 치료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바이러스가 찾아왔을 때, 자식들은 지난번 병이 그렇게 오랫동안 났지 않은 건 시골에서 치료를 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자식들은 이번만큼은 읍내에서 치료하는 것보단 도시가 좋지 않겠냐며, 초기에 괜찮은 치료를 하자며 그녀를 도시로 데려왔다.

 


 딱 병이 나을 때까지만,


이라는 조건으로 그녀를 시골에서 데려올 수 있었다. 그녀는 도시로 오는 길에 나의 아버지에게 “어휴, 또 병에 걸리니까 화가 나는데… 생각해보니까... 그래도 죽을병이 아닌 게 어딘가 싶어. 남들은 무슨 별에 별 암에 뭐에… 다 죽을병인데 나는 괜찮지....”라고 하셨다.

 


 그렇게 도시에 나온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녀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매일 먹는 약이 몇 알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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