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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랑 Mar 27. 2020

2. 우울증이 찾아왔다

할머니와 죽지 않을 병



  그렇게 도시에 나온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녀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매일 먹는 약이 몇 알 더 늘게 됐다.



 보통 우리의 부모님 세대는 우울증 같은 정신병을 이해하는데 우리 세대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곤 한다. 한 아저씨는 과도한 수험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앓고 있던 자신의 딸에게 “모든 원인은 너의 마음가짐에 있어. 남들 다하는 그런 걸로 뭘 그렇게 힘들다고 유세야, 유세는.”이라고 표현하는걸 본 적 있다. 성선설을 믿었던 나는 당시 그 말을 듣고 ‘분명 이건 우울증에 대한 개념 자체를 다르게 학습한 상황에서 생겨버린 이해의 부재이자, 필연적인 아집일 거야. 좋은 사람일 거야.’라며 나 자신에게 그 상황을 이해시켰다. 그렇게 나는 부모님 세대 정신병을 쉽게 접하지 못하였고,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라 생각지 못하여 우울증에 대한 이해가 비교적 어렵다는 걸 봐왔다. 그래서 어른들이 할머니를 정신건강의학과에 데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 힘든 우울증에 대한 이해가 한 번에 될 정도로 그녀의 우울증이 심각하다는 걸 짐작했다.



 뒤늦게 우울증 소식을 듣고 급히 그녀를 찾아갔다. 만난 지 1분도 채 안돼서 나는 그녀의 우울증을 극명하게 알아차렸다. 한 달 만에 만난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의 무능함을 말했다.

 “내가 어떻게 혼자 걸을 수 있겠어…."

 "내가 어떻게 그런 걸 먹을 수 있겠어…."

 " 내가 어떻게 거길 갈 수 있겠어….”



손을 꼭 잡고 있는 나에게는

 “이렇게 인정스러워서 뭐 해, 나는 곧 죽을 텐데…”

라는 말을 했다. 내가 알던 그녀에게서 나왔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기적이고 절망적인 말들만 쏟아냈다.



 그녀는 한 달 사이 너무 많이 변해있었다. 그녀와 가장 친한 친구는 그녀의 변화된 모습에 속이 상해서 막걸리를 잔뜩 마시고 전화로 울음을 토해내기도 했다. 아주아주 오래 그녀를 본 사람들조차 그녀에게 이런 허망한 모습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평생 말을 아끼며 주변을 통제하며 살아왔다. 그 힘든 시골에서 성실하게 혼자서 여섯 자식들을 길러내면서도 언제나 자신의 약한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이지 않았으며, 모두가 독립한 후엔 자식들에게 절대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했다. 학문을 배운 적 없었고 한글조차 간신히 떼었지만, 어느 누구보다 본인의 철학이 뚜렷했다. 어떤 일에서도 감정을 보이며 흥분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강했던 그녀가 한없이 약해져 버렸다.



 

 그녀의 우울증을 알게 된 이후, 나는 그녀에게 더 자주 전화를 했다. 그녀는 어떤 날은 아주 기분 좋게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 뭐 하고 있었어?”

“누가 피자를 사 와서 그거 먹고 있는데, 맛이 참 좋네.”

 이런 웃음이 섞인 대답을 듣는 순간만큼은 그녀가 정말 많이 좋아졌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떤 날은 얘기조차 하기 싫다며 이모에게 대신 전화를 받아달라 부탁을 하기도 했다. 멋쩍게 전화를 받아 든 이모와 나는 이런저런 대화로 비극을 나누고 끊었다.



우울증은 그녀의 기분을 롤러코스터에 태워서, 보는 사람마저 조마조마한 코스로 빙빙 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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