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그 너머
무언가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더 알고 싶어집니다. 그 마음은 손을 뻗어 직접 만져보고 싶어지는 데까지 이르죠. 결코 살살 어루만지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해체하고 모든 요소를 직접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다시 조립합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요. 사랑했던 그것처럼 완벽한 형태를 만들 수 있을 때까지. 결국 나만의 요소를 찾아 나만의 것을 만들어낼 때까지 계속될 겁니다. 그러니 영화를 좋아하게 된 순간, 만드는 사람이 되었던 건 필연이었습니다.
영화는 각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최상의 퀄리티를 목표로 고군분투한 산물이자 약 두 시간의 완전한 몰입의 경험을 마법처럼 펼쳐냅니다. 몰입을 위해서 아주 견고한 구조를 쌓고 한 쇼트 한 쇼트 공들여 찍어낸 작품은 즐거움을 훌쩍 넘어서 미학적인 영감까지도 불러옵니다. 예술과 패션, 역사와 인간, 색채와 철학에 대해 풍부한 소양을 길러낸 원천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사랑했던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영화감독이 꿈이었던 저는 현재 프로듀서가 되어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영화 연출을 전공하던 학부시절에 저는 '프로듀서에 대해 지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산을 짜는 것과 같은 현실의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글을 쓰고 연출을 하고 싶었던 저와 방향성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드라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TV 드라마는 비즈니스적 목표와 형식에 있어 영화와는 판이하게 다른 영역이었습니다. 드라마를 비롯한 방송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방송국 PD가 되기 위해 신문방송학과를 지망하거나 일찍이 언론 고시를 준비했습니다.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던 분야에서 일하게 된 과정은 제가 일의 의미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시작은 영화였습니다. 저는 영화를 많이 사랑했고, 영화는 저를 데리고 멀리도 떠돌았습니다.
제게 있어 일은 최초엔 '돈'이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구해야 했는데 4년 내내 배워 익혔던 것들이 돈으로 교환할 수 있는 가치와 맞물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참 괴로웠습니다. 학교는 예술과 작품에 대해서는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쳤지만, 산업과 비즈니스란 측면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기왕 돈을 벌어야 한다면 좋아하는 것으로 돈을 벌고 싶었습니다. 이유는 대학을 선택한 이유와 같았죠.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돈을 벌면 즐거울 것 같아서요.
그래서 저는 운명에 맡겨버렸습니다. 전략을 세우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판단이었죠. 일단 어떤 곳이든 업계의 테두리 안에 있는 일을 시작해서 산업을 경험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날은 해외 영화 수입사, 어떤 날은 영화 마케팅사, 또 어떤 날은 방송국 드라마 기획 작가. 공고가 뜨는 데로 지원을 하고, 소개를 받아 두루 면접을 다녔습니다. 거절과 거절의 연속 끝에 처음 업계에 발을 디딘 분야는 '영화 기획'이었습니다.
영화 기획이라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영화 기획은 한 작품의 시작과 끝까지의 전 과정을 의미합니다. 시작과 끝은 경험이 많고 영향력이 큰 업계의 선봉장들이 하는 일이었으므로 이제 취업을 시작한 저로서는 발을 들일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기획 일이란 그런 분들이 있는 회사의 직원이 되어 회사가 준비하는 작품을 돕는 일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제가 일을 시작한 곳은 대기업의 기획팀이었고 팀에 소속된 피디님들은 각자 하나의 회사처럼 자신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기획 프로듀서'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던 기획일을 생각보다 잘 해냈습니다. 일을 잘하니 재미를 붙이고 한참을 경주마처럼 달렸습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던 5년 차 무렵, 저는 돌연 회사를 그만두게 됩니다. 일을 그만둔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끊임없이 소모당하며 의미를 잃어버린 것에 있었습니다. 그때 오래 묻어 두었던 꿈이 저를 향해 손짓했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창작자로서의 저를 파헤치자 여전히 팔딱 팔딱 숨이 붙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작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쓰고 또 썼습니다. 모아둔 돈이 뚝 떨어져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될 때까지요.
그 무렵 드라마 보조 작가 일을 제안받았습니다. 창작자의 여정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시작한 일에서 저는 생각지도 못한 것을 발견합니다. 저에겐 하나의 작품에 몰입하여 쓰는 것보다 더 잘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벗어던지고 나온 프로듀서에게 적합한 강점이었습니다. 문제 파악과 해결이 빠른 것, 사람을 모아서 한 방향을 보게 만드는 것, 전체를 기민하게 조망하는 현실 감각. 이를 깨닫고 저는 집필 중이었던 작품을 마무리하고 다시 기획 프로듀서의 일로 돌아가게 됩니다. 잘하는 일은 애쓰지 않아도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 일은 제가 가진 것 중에 가장 높은 가치로 교환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다시 일을 시작했을 때 일이란 직업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거리감을 유지하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공부하고 작품을 만들어왔던 배경이 있다 보니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은 물론 제시하는 의견과 아이디어가 함께 일하는 감독님과 작가님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제게 야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더 큰 것을 꿈꾼다면 분명 그것을 이뤄낼 수 있는 프로듀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함께 일한 사람들이 저를 계속 어딘가로 향하는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때 저는 잃어버린 일의 의미를 새롭게 쓰게 되었습니다.
일이란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삶은 모든 것이 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얄궂게도 좋아하는 것에서 시작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일을 마냥 좋아하진 않습니다. 엄마는 '돈 버는 구덩이가 죽을 구덩이'라고 종종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일이란 원래 고되다는 의미였죠. 해냈을 때 강렬한 짜릿함을 느끼는 만큼 회의도 큽니다. 내가 왜 이 짓거리를 하며 살고 있을까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은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기 싫어도 맡겨진 일, 즉 사명인 것입니다.
한때는 제가 쓰임새 좋은 도구에 불과할 뿐이라며 의미를 잃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국 일의 본질은 쓰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억울해 할 필요 없습니다. 해야만 하는 일은 다르게 말하면 유일하게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거든요. 지긋지긋하더라도 내가 필요한 자리,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해야 할 일을 할 때 세상이 조화롭게 굴러가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옵니다. 험난할지언정 길이 끊기지 않습니다. 좋은 기회가 나타나 계속 앞으로 이어져 갑니다. 이제 더 이상 영화감독을 꿈꾸거나 창작자가 되고 싶다는 미련은 없습니다. 제가 의미를 발견한 길 위에서 저는 이미 창작자였습니다. 작품 하나가 아닌 작품을 포함한 더 큰 세계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영원한 제국 같았던 영화 산업이 변화했습니다. OTT 플랫폼이 대세가 되었고 그 방식이 익숙해지다 보니 사람들은 이제 극장에서 감상하는 것보다 편한 곳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경험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극장은 터무니없이 비싸거나, 더럽거나, 어두컴컴해서 딴짓을 못하거나, 사람들 때문에 불편한 곳이 되었습니다. 영화적 경험의 핵심은 함께 보며 감정을 공유한다는 점이기도 했는데 사람들마다 경험하고 싶은 것들이 다양해져버리니 그마저도 의미를 잃게 되었습니다. 시대의 변화란 자연의 냉혹함과 닮아있습니다. 이미 흐르기 시작한 물길은 결코 역류시킬 수 없는 법입니다.
불황으로 비즈니스의 기회가 줄어들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TV 드라마와 OTT 플랫폼과 영화 산업의 인력들이 왕성하게 교류하기 시작했습니다. 발 빠르게 글로벌 플랫폼에 진입하는 사람들,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 새로운 기회를 받아들이는 사람들 가운데 저는 새로운 기회를 환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일의 의미가 해야만 하는 일이듯, 일은 만들어지는 곳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흥분되는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정해진 러닝타임 때문에 영화로는 만들지 못하는 다양한 이야기가 변화된 시장과 드라마에서는 가능했습니다. 사실 영화냐 드라마냐 선택의 문제는 아닙니다.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즐겁게 볼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가가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기획하는 프로듀서였던 저는 드라마를 기획하는 프로듀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영화는 어디로 갔을까요? 시대가 변화하고 일이 바뀌었지만 가긴 어딜 가겠어요. 영화는 여전히 제 곁에 있습니다. 여정을 이끄는 든든한 길잡이로요. 마치 영웅서사에서 영웅을 이끄는 작은 요정처럼요.
영화는 저에게 운명처럼 다가와 꿈을 꾸게 했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꿈을 꾸게 한다면 잘하는 것은 그 꿈을 현실로 만듭니다. 그 길에서 해야만 하는 일, 사명을 발견하게 되었죠. 영화는 저의 뿌리이자 앞으로 제가 만들어갈 모든 것의 가치판단 기준이기도 합니다. 제가 영화를 통해 배운 건 어떤 형식이든, 어떤 이야기이든, 어떤 사업이든 사람들에게 귀한 가치로 전해질 때까지 타협하지 않고 지켜가는 것입니다. 제가 만들어가는 가치가 세상을 위한 가치가 되어야 한다는 이상적인 형상으로 영화는 언제까지나 별처럼 반짝이고 있을 겁니다. 제가 만든 작품이 영사되는 극장 안에서 환하게 밝혀진 스크린을 바라보는 반짝이는 관객의 눈빛처럼요.
그렇게 저는 영화와 함께 성장하며 더 큰 세계를 기획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