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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터졌다 Jan 07. 2024

나는 어떤 부모일까

인생은 아름다워

"자! 아빠 눈을 똑바로 쳐다봐! 잘 들어! 정신 차려야 해. 이 안에 들어가서 절대 나오면 안 돼. 소리도 내면 안 되고 몰래 밖을 쳐다보려고 움직여서도 안돼. 그냥 가만히 있는 거야. 알겠지?"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는 아이를 향해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한다. 


"나오면 큰일 나. 죽는 거야. 똑바로 들어! 소리도 내지 말고 누가 다정한 목소리로 나오라고 해도 바로 나가면 안 돼. 주변에 다른 아이들 목소리가 혹시 들리거나 여자들 목소리가 들리면 그때 천천히 쳐다보고 나와도 되는 거야. 알겠지? 아빠 없다고 울지 말고 강해져야 해. 아빠도 꼭 다시 올 거니까 강하게 누구도 믿지 말고 스스로 지켜야 해"


이제는 굳은 표정의 아이의 머리를 급하게 쓰다듬고 한번 꼭 안아주고는 볼에 뽀뽀를 한 뒤 아이를 그 작은 문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이 휙 하니 멀어져 나왔다. 내 아이는 살아남을 것이다. 믿으면서. 







아주 오래전에 '인생은 아름다워'란 영화를 봤다. 감독이자 주연이었던 로베르토 베니니의 자전적 영화라고 알고 있다.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아버지가 실제로 나치수용소에서 살아남은 경험을 아들에게 들려준 것이다. 나치가 등장하는 영화는 분위기가 결코 명랑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인생은 아름다워'는 명랑하고 무겁지 않고 자못 깨방정스러운 장면이 많다. 아버지에게 나치수용소 이야기를 들었을 때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이  그것을 어떻게 수용했었을까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영화 속 장면에서도 아버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독일군의 눈을 피해 아들을 숨길 때 이건 게임이고 우리가 이기고 있다고 말해준다. 어린 아들이 겁먹지 않게 끈기 있게 게임을 안전히 마칠 수 있도록 익살스러운 연기를 한다.


글의 첫머리는 나라면 어떻게 이야기했을까를 상상하며 써본 것이다. 


나 스스로도 잔뜩 긴장하고 겁먹은 상태에서 아이를 강하게 다그치며 지시사항을 확실히 전달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지금 상황이 이런데 무슨 넋 빠진 장난질이야! 날카롭게 소리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 아니 우리 애가 사람 죽였어요?

- 고작 이 정도 일 가지고!

- 한 동네 살면서. 세상 무섭네. 

- 그래서 뭐 한몫 챙기시려고요? 돈 주면 되죠? 얼마 줄까요?

- 애들 크면서 이럴 수도 있는 거지

- 우리 애가 얼마나 착한 앤 줄 알아요? 

- 나는 더 좋은 학교 보내면 되고 제일 비싼 변호사 살 테니까


다른 친구와 웃고 이야기하는 우리 아이가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져서 화가 났다는 그 아이는 내 아이를 때렸다. 폭행은 다 나쁘지만 차라리 약한 강도였었기를 그 자리에 없었던 나는 기도했었다.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고 그저 아이가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무사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 그거면 충분했다. 


다시 전공 관련 재취업을 하고 출근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벌어진 일이었다. 사과와 재발방지약속. 병원비 정도만 부담하면 말끔하게 해결될 일이었다. 그러나 저쪽에서는 왜 자신의 아이가 이런 일로 기가 죽어야 하는지 분통이 터진다는 입장이었다. 내  아이는 치료를 위해 병원을 다녀야 했고 직장에는 자주 조퇴를 청해야 했다. 급기야 죄송한 나머지 퇴사를 말씀드렸으나 프리랜서처럼 시간을 다 맞춰줄 테니 계속 근무를 해달라고 하셨다. 조만간 해결이 될 일이지 않냐고 하셨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사람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새로운 업무를 배정받고 배우고 처리하는 과정에 걸려오는 전화들. 

나는 빚을 진 적이 없는데 악성 채권자처럼 나를 조정하고 내 감정을 모욕하며 내 피해를 예민한 여편네의 극성으로 몰고 가는 악착같음. 

그 와중에도 상대 아이는 여전히 내 아이의 주변을 맴돌며 불필요한 접촉을 계속했었다. 아침에 등교시키고 10시나 됐을까 갑자기 아이가 제발 날 좀 데려가달라고 연락을 했다. 그리고 난 퇴사했다. 



독일군이 오고 있다. 

나는 다시 아이를 쳐다본다. 

씩 웃어주고 꼭 안아줘야지. 하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말해야지. 

절대 여기서 나오면 안 돼. 위험할 수 있어. 하지만 이건 게임이고 언젠간 끝나. 중요한 건 우리가 스스로를 잘 돌보는 거야.  


아이가 상처에 매몰되지 않도록. 트라우마로 남은 자신의 상처를 끌어안고 무기력하고 재미없게 살지 않도록 설사 나는 죽음을 당하더라도  아이를 위해 적당한 연기가 필요했다. 아들에게 기억될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비참하고 슬프지 않게 연출한 로베르토 베니니의 깊은 뜻을 이제야 알게 됐다. 인생에 영원한 고통은 없으며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갈지 모르는 아들에게 자신의 고통이 짐이 되길 원치 않았을 것 같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고 많은 걸 깨달았고 악착같이 버텼다.

큰 상처는 입었지만 다시 회복할 것이다. 

전쟁의 승패는 인간이 아닌 신이 결정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오늘의 재미없는 소설은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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