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똥구리의 똥
올해 새해는 맥주 캔 하나를 앞에 두고 핸드폰 시계만 바라다봤다. 일 년에 고작 2,3번 맥주 한 캔을 마시는 게 전부인 나에게 새해를 맞이하는 작은 선물.
새해를 맞이하며 사람들과 시끌시끌하게 파티를 하는 장면을 많이 봤다. 나와는 무관하지만 올해는 축하하고 싶었다. 맥주 한 캔.
고심해서 골랐다. 일 년에 2, 3번. 그것도 무알콜이었지만 이번엔 맛있다더라 하는 맥주로 아주 차갑게 준비해 뒀다. 핸드폰 12월 31일 11시 59분. 가슴이 떨린다.
칙~ 딱!
맥주를 땄다. 1월 1일!
새해가 됨과 동시에 맥주를 들어 꿀꺽꿀꺽 마셨다. 두 모금쯤 마시면 목이 막혀 쉬어야 했는데 이번엔 달랐다.
아주 차가운 맥주가 목구멍과 가슴을 찌르르르 시원하게 내려간다. 꿀꺽꿀꺽. 쉼 없이 마신다.
지금 이 순간은 애주가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바로 이 맛이군요!
당신들의 뛰어난 안목과 선택에 찬사를!
극도로 절제하고 금욕적인 삶은 이제 12월 31일 11시 59분 59초와 함께 사라졌다.
나는 이제 방탕할 거야.
얼음같이 차가운 맥주가 그래 그래! 환영하듯 내 심장까지 내려가 서늘하게 식혀준다.
12월 31일까지의 나는
지나치게 어리숙했고 우울했고 슬퍼했다.
1월 1일부터의 나는
가끔은 생각을 멈추고 스스로 각성을 끊고 이기적으로 즐거움도 택할 것이다.
맥주 한 캔을 마시는 시간, 구질구질한 과거 따위는 안주도 되지 못했다.
억울하다고 뜨겁게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차가운 맥주가 말끔히 휘어잡고 내려간다.
술을 마시면 하소연이 늘까 걱정했지만 반대였다.
하소연하고 있는 시간에 차갑게 식힌 맥주 한 잔 탁 마시고 일어나는 거지.
칫. 별 그지 같은 일이 다 있었네. 이러면서.
나는 이제 어른이 되었다.
저마다의 술잔마다 저마다의 슬픔과 사연이 있음을 이제 알겠다.
기분 좋게 침대에 누워 자려는데 자꾸 웃음이 난다.
오... 나 중독되는 거 아냐? 킥킥.
새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