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아닙니다.
가끔 병원에 간다. 비용도 저렴하고 내 이야기를 아주 잘 들어주는 선생님이 계신 병원인데 직업상 겹치는 부분이 있어 하마터면 이 선생님에게 연수를 받을 뻔했다. 최대한 감추고는 있지만 내 전공을 어느 정도 눈치채신 듯한 선생님은 당분간 다른 쪽 일을 하세요.라고 말씀하신다.
너는 아직 자격이 없어.라는 소리 같아 서운함 반, 뜨끔함 반이었다. 물론 나는 지금 백수니까 거리낄 것이 없다. 아무튼 이 병원에 가면 내가 좋아하는 화분이 많다. 3,4천 원짜리 싸구려 포트 안에 담긴 식물이 길게 축 늘어져있다. 이파리가 너무 예뻐서 찾아보니 회양목의 일종 같았다. 병원에 갈 때마다 그 늘어진 줄기를 쓰다듬으면서 화분이 두 개니까 하나만 팔라고 할까 아니면 줄기 몇 개를 몰래 뜯어 가져갈까. 아 그건 절도겠지. 이 생각을 매번 했다.
화분의 흙이 바싹 말라있고 오동통해야 할 줄기가 쪼글거리는 선인장도 보인다. 물을 줘도 되냐고 허락을 구하고 정수기 옆 종이컵에 물을 받아 병원 전체를 살금 거리며 돌아다닌다. 바싹 메마른 화분의 흙이 촉촉해지도록 물을 주고 집에 돌아오면 이 녀석들이 다음엔 얼마나 더 통통해져 있을까 궁금해진다.
절실한 마음으로 울고불고했던 내 모습은 이제 없다. 진료시간보다 훨씬 먼저 가서 화분의 흙을 슬쩍 만져보고는 살금 거리며 물을 주는 내 모습이 보인다. 하루 이틀 물을 준다고 금방 달라질 리 없는 화분이지만
분명히 내가 준 물이 식물의 잎을 조금은 도톰하게 살찌웠을 것이다.
내 마음도 조금은 도톰하게, 더 질기게 자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조금 더 시간이 지나 화분 분갈이해 주듯 내 마음도 이 병원을 훌쩍 떠나 더 튼튼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