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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모어책방 Mar 08. 2022

계속 걷고 있다면, 괜찮아

영국 우리 동네에 그린 마더스 클럽이 없는 이유

그린 마더스 클럽이라는 드라마를 흥미롭게 보고 있다. 초딩판 스카이 캐슬이라는 설명과는 다르게 드라마  모든 부모가 상위 3% 들기 위해 노력하진 않는다는 점이  유치하게 다가왔던 까닭이다. 다만, 명문대 진학이 초등학교  영재원이라든지 어떤 스펙을 만드느냐에 따라 달린 거라던 어느 극중 엄마의 항변이 가볍진 않다. 지방에 위치한 모교에서 그래도 매년 10 안팎으로 서울대나 연고대를 보내던 우리 때와 달리, 1 보내는 것도 힘들어한다는 고등학교 선생 친구의 이야기가 문득 생각이 났다.


런던은 모르겠지만, 나름 교육열이 높고 환경이 괜찮다는 우리 동네엔 그린 마더스 클럽이 있을까. 학교들을 정기적으로 평가하는 Ofsted의 보고서에 의하면 최고 등급을 받은 초등학교만 3군데, Private school도 2군데가 우리 동네에 있다. 0학년에 해당하는 Reception부터 유명 사립학교를 보내야 한다고 우리를 설득하던 이웃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가족은 예외적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는 dual language를 하는 아이답게 언어 발달이 더디다. 한국 나이로 6살이 가까웠지만 영어나 한국어로 의사표현이 완벽하지 않고 아직 알파벳, 한글, 숫자 어느 것 하나 능숙한 것이 없다. 다행히 우리 스스로도 별로 압박이 없고, nursery 선생님들도 특별히 걱정하지 않는다. 같은 nursery에 다니는 친구들 부모들과 가끔 만나는데, 이런 부분들로 인한 거리낌이 없다. 그냥 친구들과 재미있게 잘 놀면 다행이고 좋은 일이다. 대학교수, 부동산 투자회사 임원인 아빠들과는 와인을 마시며 축구, 음식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한국 못지않게 계층적 사회이고, Oxbridge라는 명문대학 출신들이 정재계를 장악하고 있으며, 이를 연결하는 이튼스쿨 등 명문사학들이 존재하는 사회임에도 사교육에 대한 열정은 이처럼 한국에 비해 떨어진다.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Secondary school을 사립으로 보내는 지인들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공부를 더 많이, 잘 시키기 때문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위해서 보낸다는 것이다. 오후면 학교에서 나와 숙제를 하고 친구와 게임을 하며 논다는 사립학교의 학생들의 일과도 한국의 그것과는 분명 격차가 있다. 왜 그럴까.




대학 졸업장이 필수는 아니야


언제 KPMG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는 영국인 친구와 앞으로 아이들이 대학을 갈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이 친구는 영국에서 학사와 석사를 둘 다 했다. 덕분에 지금 직장에 취업해서 만족하며 다니고 있던 터라, 당연히 대학의 가치에 대해 꽤 긍정할 줄 알았다. 아니 차후 직장에서의 처우 등을 이유로 필요악 정도로는 말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나는 다시 돌아가면 대학을 안 갈 거 같아


그의 이유는 분명했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KPMG만 하더라도 apprenticeship (견습생) 제도가 있어서,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고등학교 (secondary school)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바로 취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초봉이 £21k (약 3360만원) 정도로 영국 대졸 초임의 연봉에 비해 좋지 않지만, 대학 졸업 후 통장에 쌓여있는 학자금 대출금과 apprentice들이 그 사이 가지는 연봉 인상률, 승진 등의 처우가 학부/석사학위를 가진 자신과 비교해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자신도 학부와 석사 때 했던 공부와 전혀 다른 일을 하며 skill들을 계속 쌓고 있다.


남자 학부 졸업자가 고등학교만 졸업한 남자보다 연봉이 8% 높다는 한 통계는 영국 사회가 대학 졸업장을 필수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를 잘 설명해 준다. 물론 반대로 영국 교육부는 대학 졸업장이 연봉을 £10k 더 높여준다고 한다. 서로 충돌하는 자료들 사이에서는 결국 통계적으로 무엇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결국 개인적인 경험의 차이일 텐데, 최소 우리 회사에서는 대학을 나오지 않은 동료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나랑 같이 시니어 롤인 동료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플로리스트 등으로 일하다, 약간 온라인 코스 같은 것을 듣고 디지털 마케터로 일하기 시작한 후 경력이 쌓인 케이스다. 다른 동료는 고등학교 졸업 후 직업군인이었다가 하드웨어 엔지니어로 굉장히 오랫동안 일한 후, 50살이 되어서야 온라인 코스 같은 것을 듣고 CRO 전문가로 일하기 시작했다. 정체된 것 같지만 이런 사회의 다이내믹을 담아내는 곳이 영국이다.


최저임금이 주는 보편적 삶


현재 영국에서 23세 이상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8.91, 원화로 14,250원 정도이다. 올해 4월부터는 £9.50, 원화로 15,200원으로 올리는 것으로 이미 발표가 됐다. 한국은 작년 8,720원에서 올해 9,160원으로 오른다. 올해 기준으로도 영국의 최저 시급에 비해 60% 정도인 셈이다.


그만큼 영국이 물가가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답은 Yes and No. 부동산, 외식비용, 대중교통은 영국이 비싸지만 식료품, 유아제품 등은 영국이 싸다. 실제 각국의 물가지수를 빅맥 가격으로 평가하는 빅맥지수에 있어, 2021년 영국은 4.44 한국은 4.10로 사실상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또 다른 물가지수로 떠오르는 스타벅스 지수에 있어서도, 2019년 영국은 £2.90, 한국은 £3.14로 심지어 한국의 커피값이 영국보다 비싼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최저임금 제도 때문에 영국은 사람 손을 타는 모든 것이 비싸다. 외식 비용도 비싸고, 리모델링 비용도 비싸고, 수리비, 인건비 등이 모두 비싸다. 한국에서는 너무 흔하게 점심시간에 동료들이랑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했는데, 영국에서는 (개인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냥 집에서 싸온 샌드위치다. 여기서 뭔가 햄과 치즈, 계란, 양상추를 넣은 고급 샌드위치를 상상하지 않으시길 바란다. 나와 직장 동료들의 샌드위치는 그냥 식빵에 딸기잼을 바른, 애들 간식용 수준이기 때문이다. 동료들과 점심을 식당에서 먹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하여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은 아니고 그냥 Pizza Express와 같은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인당 15,000원 수준의 피자를 먹는다. 물론 이것도 분기에 한번 꼴이다.


한국에서 기피 직종에 해당하는 배관공이나 블루 컬러 직능을 가진 사람들의 평균 연봉도 상당히 높다. 영국에서 종종 듣게 되는 이야기가 이웃집 배관공이 너보다 많이 번다는 이야기인데, 실제로 평균 연봉이 £31k (약 5천만 원)에 정도라니 대졸 디지털 마케터에 비해서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보편화되어있다.


반면에 사람들의 삶은 편차가 줄어든다. 돈이 많은 사람도 비싼 비용을 내어야 누군가의 손을 빌릴 수 있고, 학력에 관계없이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갖출 근거가 마련된다.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새벽 4시까지 배달을 해야 하거나 밤낮, 주말 없이 일해야 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의미이다. 더 나아가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학교가 끝난 뒤에도 학원을 연달아 다니며 10대 시절의 행복을 희생할 필요가 없다. 편차가 있을지언정 누구에게나 밥을 먹고 쉬고 여가를 즐기며 숨 쉴 공간이 마련된다. 이에 최저임금제 폐지를 누군가 이야기한다면, 영국 산업혁명 이전으로의 회귀를 말하는 것과 같다.


시선으로부터의 자유


한국에 갈 때마다 놀라는 것 중의 하나는 다들 너무 '멋지다'는 것이다. 건강검진을 위해 아침 8시 지하철을 탄 적이 있는데, 정말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다들 어떻게 그렇게 멋지게 세팅을 했는지. 남자분들 양복은 칼각이 잡혀있고, 여자분들은 머리에 컬이 제대로 말려 있었다. 판데믹을 지나며 아내와 나는 눈곱도 떼지 않고 집에서 회의를 2년 간 하다 보니 그 괴리감이 상당했다.


지인과의 식사를 위해 강남파이낸스센터 근처 한식당에 평일 점심시간에 간 날도 그랬다. 신세를 진 일이 있어 밥은 내가 사는 자리였는데, 그 자리에 나온 남자 셋 중 내가 가장 남루했다. 어디 브랜드도 아니었고 그냥 검은색 겨울 야상을 입은 나와 달리, 두 지인은 어깨가 딱 떨어지는 코트에 바지에. 누가 봐도 내가 얻어먹는 자리였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는 동안 지나치는 사람들은 참 세련되고 멋졌다. 가끔 우리 동네에서는 내가 패셔니스타라고 아내에게 농담을 했던 일이 심각하게 부끄러웠다. 나는 그냥 한국에서 시골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매일 후드 차림에, 남방에, 어디서 주워 입은 것 같은 외투만 입는 동료들이 생각났다. 물론 걔 중에는 옷차림에 신경을 쓰는 이들도 있었지만 강남 멋쟁이들 같지는 않다. 회사가 커지고 돈을 어떻게 벌어도 늘 그 모양인 동료들이 참 한결같다 생각이 들면서도 안심이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비단 옷차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돌아보면, 나의 이웃들은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배경일까. 자발적이지만 계약직 엔지니어로 살아가는 부부도 있고, 군인으로 세계 여기저기 다니다 은퇴하신 노부부도 있고, 악명 높은 건축업자도 있으며 NHS와 오랫동안 소송을 진행 중이며 거의 무직 상태인 이웃도 있었다. BBC 라디오의 저널리스트도 있고, 음악가도 있으며, 평범한 회사원들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각자의 배경과 학력에 관계없이 판데믹 동안 커뮤니티를 만들고 street의 소식을 공유하며 협력하고 서로를 지탱해줬다. 아이들 장난감이 남는다면 집 앞에 둬서 필요로 한 사람들이 가져갈 수 있게 했고, 식재료를 빌리고 빌려주고, 길 위에 태풍으로 나무가 쓰러져 있으면 자신의 집 앞으로 가져갔다. 여기에는 서로의 배경과 학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지 않았다.


꼭 그래야 하는 건 없어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반추하는 것은 아마 보편적인 경험일 것이다. 꽤 치열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나는, 종종 고1 여름방학 때는 사탐을 끝내야 하고 고1 겨울방학 때는 과탐을 끝내야 한다더라는 모친의 말씀을 생각하곤 한다. 덕분에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느낄 새 없이 학원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던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행복하지 않았다.


어른이 된다고 나에 대한 요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한가하게 책이나 보며 봉사활동이나 다니던 대학시절이 끝나자 나는 꽤 삼엄한 현실에 부딪혀야 했다. 어쩌면 지금 대학생들에게는 너무 당연해져 버린 인턴 생활 한번 하지 않고 졸업했고 실패했기에, 남들처럼 살지 않은 내 게으름을 심각히 탓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뒤에 커리어를 쌓으며 이렇게 스스로가 부여한, 사회가 부여하는 요구들이 쌓여갔다. 맥주잔 사이에 쌓인 선배들의 한숨에서 배우기도 했고, 가족들의 기대에 부담으로 쌓기도 했다. 지금쯤은 한 계단 올라가는 이직을 해야 한다는 커리어 컨설턴트의 조언에, 지금 내 경력에는 이 기술과 이런 경험이 필요하다는 지인의 조언에, 그리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결과에 퇴근길은 지난했다.


살고 일하던 나라를 바꾸는 일은 그런 집착에서 일부분 자유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어차피 새로운 곳에서는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고, 실패할 가능성이 더 많은 시도들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덕분에 참 많은 실패들을 이곳에 쌓았다. 그 결과는 역설적이었다. 시간이 지나 내가 채용된 이유를 내 매니저인 친구에게 물은 적이 있었는데, 그의 대답이 이러했다.

 

너가 네 제품 만들어봤던 경험 때문에 잘할 거라 생각했어


지금은 조금 다른 것 같지만, 내가 스타트업을 했던 시기는 실패에 대해 낙인이 찍히는 시기였다. 따지고 보면 나는 제품을 다 만들지도 못했고, 만들다가 공동창업자 이슈들에 휘말려 실패한 창업가였다. 만들 때는 자부심을 갖고 만들던 제품도, 투자자들을 만나며 '별 것이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아가며 나처럼 몰락한 듯했다. 그랬기에 내 실패의 경험이 이곳에서 편견과 벽을 넘어 채용의 이유가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은 인생에 대해 말해준다. 한 단계 커리어를 도약해야 하는 시점에 나라를 바꿨고, 스타트업을 했고 실패했지만 길은 이어지고 이어져, 연결된다. 꼭 인생에서 그때에 해야 하는 것을 하지 않아도, 어쩌면 괜찮다. 그 시간에 충실한 이유를 갖고 있다면 괜찮은 것이다. 조금 돌아가는 것 같아도, 실패를 해도. 세상에 버려지는 것은 없다.


한국에서의 삶은 이와 반대되는 정형화되고 보편화된 삶을 추천한다. 언제 과탐을 끝내야 하고 사탐을 끝내야 하고 수학을 끝내야 하고. 언제 동아리 활동을 해야 하고, 언제 연애를 해야 하고, 결혼을 해야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고. 그러나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없다, 내 삶이 그랬듯. 그래서 영국이 나와 조금 더 맞다고 여전히 꽤 자주 깨닫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언제 꼭 이래야 한다고 말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두 언어를 모두 습득하느라 언어발달이 느리지만, 때 되면 다 욕하고 나한테 말대꾸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아들은 우리에게 자꾸 이래라저래라 한다. 자기보다 앞에 가지 말라, 자기 슬리퍼를 엄마 슬리퍼 옆에 나란히 놓아달라, 눈곱을 닦을 때는 수건으로 닦아달라... 그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면 얼이 빠지긴 하지만, 언젠가 아들이 길을 헤매더라도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네가 계속 걷고 있는 이상, 그 길도 맞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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