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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사슴 Jun 16. 2019

책을 읽으며 생각한 것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오래전, 영화관에서 혼자 <아무도 모른다>를 보았다. 아무 정보도 없이 보았던 터라 충격이 상당했다. 거의 10년 전이라 영화의 내용은 기억이 명확하진 않다. 다만 영화를 보고 나와 터덜터덜 걷던 기억과 먹먹한 감정이 오래 남았다. 그 영화의 다큐멘터리와 같았던 영화 연출 방식이나, 주연인 아기라 유야가 상을 받았던 이유를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스스로 TV인으로 생각하며, TV는 생방송처럼 연출보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의 연출 방식은 꾸며내지 않는 것이 우선되며,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더불어 배우 자체의 에너지도 함께 담는다. 그의 이런 연출 방식은 특히 아이들을 담아내는 데 큰 장점이 있다. 배우가 자신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꾸며내기보다 스스로가 가진 모습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때, 보는 이들이 편안하고 더 몰입되지 않던가.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환상의 커플의 한예슬이나, 네 멋대로 해라의 이나영, 양동근은 아주 우연히 자신의 캐릭터와 잘 맞는 드라마를 만나 빛을 발한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처럼 배우 자체의 에너지를 잘 담아내는 우리나라 감독은 응답하라 시리즈를 찍은 신원호 PD와 하이킥 시리즈를 찍은 김병욱 PD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메이킹 필름처럼 영화가 만들어진 뒷이야기를 해주어 정말 좋았다. 책을 읽으며 꼽아보니 내가 이제까지 봤던 그의 영화는 모두 4편이었다. 물론 모든 영화가 다 좋지만은 않았다. (걸어도 걸어도, 바닷마을 다이어리) 하지만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생각보다 정말정말 좋았다. 이야기가 흘러가는 방식은 물론, 아이들의 연기가 인상 깊었는데 책에 나왔던 것처럼 마에다 형제가 가진 케미를 영화가 잘 담아냈다. 그 형제가 만담으로 유명했다고 하는 이야기에, 아이들이 영화의 대사 치는 방식이나 표현 방법이 이해가 갔다. 그가 찍은 다른 영화에 대해서도 읽다 보니 관심이 갔는데, <원더풀 데이즈> 다 읽어보고 보고 싶어 졌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영화를 보고 싶어서 영화 내용에 대한 설명 부분은 스킵해서 읽었다.

책을 읽으며 좋아진 것은 영화뿐만이 아니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가치관에 공감할 뿐 아니라 존경하게 되었다. 양론병기, 즉 어떤 반대되는 두 가지 의견을 반드시 똑같이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은 최근 성평등에 대해 고민하던 부분을 해소해주었다. 남혐여혐 똑같다는 말들이나, 이제는 폐지된 차별남녀 프로그램에서 반대되는 의견이랍시고 여혐 발언을 늘어놓는 패널을 동등하게 대해주는 등의 방식이 공정성에 대한 강박 때문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하게 됐다.

또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나눠서 보여주기 좋아하는 매체의 손쉬운 선택보다, 가해자의 갱생을 위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생각이 인상 깊었다. 요즘 들어 SNS에서 일어나는 가해자에 대한 과한 비난이 자신들은 세상 결백한 척하려는 행동으로 보여 불편하던 차였다. 특히 여중생 폭행사건(이 사건을 다른 이름으로 설명할 수 없음이 아쉽다)에서 아이들에 대한 처벌 수위를 더 올리자는 청와대 청원까지 하는 데에 솔직히 기겁했다. 그런데 그 지역에서 살았던 어떤 이의 글이 그 사건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 지역은 어른들이 아이를 방치하고 학대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런 어른들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고, 아이들이 잘못한 모습만 부각되는 것이 기가 차다. 아이들이 보호받고 제대로 교육받을 수 있도록 문화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가해자 갱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가장 좋았던 말은 삶에 의미를 두지 말자는 것이었다. 삶에서 의미를 따지게 되면 의미 있는 죽음과 의미 없는 죽음으로 나뉘게 된다는 것이다. 의미 있는 죽음에는 가치가 부여되므로 좋지만, 의미 없는 죽음은 한 사람의 존엄성이 아예 배제된 느낌이 든다. 그래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의미 있는 죽음보다는 의미는 없지만 풍성한 삶을 발견하고자 한다고 했다.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이들이 하는 일보다 가치가 없고, 사회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나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보람이 없는 일을 하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놀면서, 내가 즐겁고 행복한 것들을 즐기며 사는 것, 그리고 그 와중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아가고 있다. 그래서 풍성한 삶을 발견하고 싶다는 말에 큰 공감이 갔다.

처음에 이 책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는, 영화에 대해 많은 것이 담긴 이야기겠거니 했다. 하지만 읽다 보니 한 사람이 가진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을 담은 이야기였다. 책을 읽고 나니 그가 앞으로 만들 영화가 더 기대되었다. 또 이제까지 봤던 영화는 물론, 앞으로 볼 영화, 그가 찍어낼 영화에서 그가 가진 생각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아 즐거워졌다. 오래오래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부지런히 영화를 만들어주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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