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에는 건축/설계에 종사하는 지인들이 많다. 가족 중에는 아빠가 설계를 겸하는 시공일을 하시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무소들을 비교하며 알아본 후 미팅을 진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함께 할 건축사사무소를 선택하였다. 내가 무조건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가급적 가족 또는 지인과는 일하지 말라.
아는 사람이니까 최소한 뒤통수는 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인한 마음의 안정은 얻을 수 있겠지만.. 정작 문제가 생겼을 때 제대로 말을 못 하거나, 일을 풀어감에 있어서 당연히 행해야 할 일들이 서로에게 서운함을 줄 수도 있으며, 오히려 그 관계가 깨질 수 있는 등등... 지인과의 업무 진행은 정말 추천하지 않는다. (물론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다.)
그들은 내 옆에서 진심 어린 조언을 주는 조력가로서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나는 초반에 아빠와 진행을 아주 조금 했었는데.. 결론적으로 모든 것을 다 뒤엎고, 건축사사무소랑 계약을 하였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_-
설계의 가치, 가치의 비용
집을 짓는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알고 있는 지식과 풍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들 중 90% 이상은 집을 짓는 동안의 괴로움과 고통들, 그리고 일을 하는 사람들과의 불신과 욕이 대부분이었다.
모두가 나를 걱정하고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말인 것을 알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들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내 기준으로 열심히 필터링을 하고 있었다.
지인들의 이야기 중에 필터링을 통과하여 내 마음에 자리 잡은 조언은
설계하는데 들어가는 돈을 아까워하지 말라.
설계만 '제대로' 끝내면 집은 다 지은 거나 마찬가지다. 도면대로 만들기만 하면 되니까.
너의 생활과 삶을 반영하여 공간으로 구현해주는 일이 설계다.
나의 유일한 여자 사람 바이크 친구 NanA. 그녀의 직업은 설계사였다.(지금은 새로운 길을 그녀만의 방법으로 걷고 있다.) 그녀의 진심 어린 조언 덕분에, 나는 건축에 있어서 설계가 가지는 가치와 중요성을 출발점으로 잡을 수 있었다. 아빠와 진행하다 빠그라진 경험을 통해 그녀의 조언이 더욱 빛났다는 슬픈 사실...
아는 사람에게 평수에 맞추어 대충 설계를 하고, 승인만을 받기 위해서 일명 '허가방'이라는 곳에 가서 몇 백만 원을 주고 승인을 받아 시공에 착수하는 경우도 있다. 건축비용의 최소화를 위해서.
그것을 나쁘다/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집을 지으면서 정하는 우선순위가 다르니까.
나는 예산도 분명 중요하지만,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삶을 반영한 집에 살고 싶은 마음도 예산만큼 중요했다. 다른 곳에서 더 아끼더라도 집을 설계하는 부분만큼은 제대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얼마 있지도 않은 예산에서 "최소" 2,000만 원부터 시작하는 설계비에 거부감 없이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설계하는데만 몇 천만 원씩 투자한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들에게 설계는 집을 디자인하는 게 공간적인 개념보다 그냥 도면화하는 작업일 테니.
그러나 나는 그 금액을 아까워 말고 투자하라고 말하고 싶다.(부르는 대로 수용하고, 돈을 막 쓰라는 얘기가 아니라.. 가치를 인정하라는 이야기임) 그 비용의 가치는 설계를 하고 집을 짓는 과정에서 하나씩 빛을 내게 되어있다. 그 과정은 모두 기록될 것이다.
건축사 사무소 선택하기
어쨌든 여러 일들을 겪으며 멘탈이 파삭 부서지는 시간을 보낸 후... 집 짓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건축사무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수 없이 많은 건축사무소가 있었지만,
1. 서울 소재의 사무소 (원활한 미팅과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2. '주거 목적'의 협소 주택을 진행한 경험이 3회 이상 있어야 하며
3. 진행했던 프로젝트 집의 느낌이 나의 마음에 들어오는 곳
4. 큰 평수, 대형 건물, 근린시설 위주의 프로젝트가 더 부각되는 곳은 제외..
이 네 가지를 기준으로 추리고 추리다 보니, 그 많은 사무소 중에 남는 곳은 두 곳이었다.
A 건축사사무소 VS B 건축사사무소
업체명을 거론하는 게 좀 조심스러워서..
특히나 비교 대상으로 끝나는 사무소에 혹시나 안 좋은 이미지를 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일단 이니셜로..
수많은 업체 중에서 내 기준들을 거쳐 최종적으로 남은 건축사사무소는 두 군데였다. 바로 연락을 하고 미팅을 잡았다. 쓸데없이 간만 보고 끝나는 미팅이 되지 않기 위해, 첫 만남부터 많은 정보를 오픈하며 만났다.
내가 만난 두 업체는 많은 부분이 참 비슷했다.
규모/ 진행했던 프로젝트/진행 스타일/견적/시공기간 등등 내게 준 정보까지도 대부분이 비슷했다.(어느 회사를 만났어도 다 비슷했으려나. -_-;)
다른 것이 있다면 담당자들의 스타일/분위기가 달랐다.
한 곳은 차분하고 이성적인 냉정함이 살짝 묻어나는 스타일인 반면(나쁘다는 의미가 전혀 아니다. 스타일이 그렇다는 것) 다른 한 곳은 생동감이 느껴지고, 어떻게든 해결해보자! 같이 풀어가보자!라는 젊은 혈기가 느껴지는 스타일이랄까.
둘 중에 어떤 스타일이 '옳다'라는 개념은 절대 아니다. 내게 '더 잘 맞는/ 더 필요한' 스타일이 어떤 것이냐에 대한 고민을 해야 했던 것이지. :)
두 곳 모두, 건축주 입장에 서서 공감해주며 상담을 하였고, 매번 성의 있게 미팅에 임하는 모습이 너무나 감사했다. 좋은 분들을 자로 재듯 비교하며 고민하는 것 자체가 미안할 정도였다.
견적
설계를 완료하여 시공사를 만나기 전에는 사실 정확한 견적을 낼 수가 없다.
건축주의 희망사항 및 예산을 듣고, 기존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주 대략적인' 견적을 미리 잡는 것뿐이다.
결론적으로 견적은 두 업체 거의 같은 금액이었다.
계약 금액과 내용은 제삼자에게 알리지 않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었기 때문에 공개할 수는 없다.
그 이유가 아니어도 딱히 공개하고 싶지도 않지만. -_-
그리고 막상 일을 진행하다 보니 이 '견적'이라는 정보의 공유가 참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집을 짓는 방식, 실제 건축 면적, 구성 자재, 토지 상태 등등 건축주의 상황과 결정에 따라 건축비는 끝없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똑같아 보이는 외관이어도 실제 시공비는 몇 곱절로 다르게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집을 결정하고 읽었던 '1억 원대 집짓기'라는 책의 의미도 이제야 알겠다.
나도 1억 원 대로 지을 수는 있었다. 그로 인해 어떤 집이 만들어지느냐가 관건이겠지만 말이다.
어디까지 건축비에 포함하느냐에 따라서 1억 원 대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자재를 쓰느냐에 따라서도 1억 원 대 집을 지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말장난 같달까.
평당 단가의 함정
어느 정도 제대로 지어진 집에 살려면 평당 650만 원은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2018년 1월 기준)
■ 그렇다면 그 평당 단가에는 설계비가 포함된 걸까?
■ 내부 공사비용(벽재/마감/바닥/싱크대 등등)은 포함된 금액일까?
■ 집을 짓기 위한 각종 이관 비용은?(상하수도 연결, 도시가스/전기 연결 등)
각종 매체에 올려져 있는 1억 원 대 집 짓기라는 콘텐츠들이 말장난으로 보인다. 어떻게 어떤 기준으로 1억 원대라는 설명은 거의 없고 "이 집은 1억 원대로 지었다"라는 눈길 사로잡기 제목만 난무하다.
결론적으로 견적의 공유라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
이 부분은 앞으로 좀 더 깊게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나는 세 번의 미팅을 통해 A 건축사 사무소를 택했다.
이유는... 전문가들이 보면 어이없겠지만, 미팅을 하는 와중에도 '함께' 만들어 가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집을 짓는 과정에서 10년은 늙는다라는 얘기는 익히 들었기에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_-
죽을 운을 대신해서 짓는 게 집이라 하지 않았던가... 털썩..
그렇다고 집을 짓는 과정 내내 미간에 주름 잡혀가며 괴로워만 하고 싶지는 않다.
힘든 상황에서도 같이 고민하며 해결방안을 찾아갈 수 있는 업체라고 느껴졌다. 느낌으로만 선택한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사람과 함께 하는 과정에서 느낌만큼 중요한 것도 또 없지 않을까.
조건들이 비슷하다면, 이왕이면 집을 짓는 동안 즐거울 수 있는 업체랑 하고 싶었다.
어쨌든 집을 짓는 인연은 A 건축의 손을 잡게 되었다. 그들과 함께 집을 지으며 남길 스토리가 많을 것 같다. :-)
아참.. 계약할 때 주셨던 홍차자몽차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겨울이 가기 전에 꼭 다시 마셔보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