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시간_화요일 오후 세 시의 오븐_250715
언젠가부터 너는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다. 잊거나 잃지 않으려고 꼭 쥐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렸다. 주먹을 쥔 채로 태어난 것처럼, 손의 모양을 영영 잊어버리고 말 것만 같을 때쯤,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
“이제 그만해. 힘을 빼.”
“뭘? 뭘 그만하라는 거야? 넌 누구야? 어디서 말하는 거야?”
“그거 말이야. 이제 힘을 풀어.”
“그거? 그게 뭔데?”
“힘을 풀고 편하게 있는 법을 잊어버렸구나. 네 손 말이야. 손을 펴.”
그때 너는 보았어. 손가락 다섯 개를 동그랗게 말아 쥔 네 손을 말이야.
‘힘을 어떻게 푸는 거였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주먹을 다른 손으로 하나, 또 하나 천천히 떼어내기 시작했어.
엄지, 검지, 그다음에 중지, 약지, 소지.
다 떼어내니 드러난 건 쪼글쪼글한 파란색 풍선 하나였어.
너는 그걸 왜 쥐고 있었는지를 잊어버렸어. 그래서 그냥, 불었어. 생일이나 파티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눈앞에 있으니 후- 후- 하면서 불기 시작했어. 원하는 크기가 되었는지를 확인해 가며, 터뜨리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불었지. 어느새 얼굴을 가리고도 남을 만큼의 크기가 되었고, 네가 불어넣은 바람이 새어 나가지 않게 꽉 묶었어.
“손으로 가려질 만큼 작은 게 이렇게 커지다니.”
너는 새삼 신기해하며 풍선을 이리저리 흔들어보고 만져보았어.
“숨을 불어넣어 부풀린 풍선은 맞는데, 이렇게 오래 따뜻함을 유지할 수가 있는 걸까?”
푸른빛을 띠는 풍선은 말랑했고 따뜻했어. 그리고 가벼웠지.
“이제 놓아줘.”
“아니, 넌 누구야? 왜 자꾸 이 풍선을 내려놓으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 이제 내려놓을 수 있어.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 참!”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쥐고 있던 풍선을 바닥으로 내려놓은 너는,
그만 화들짝 놀라 풍선을 허둥지둥 끌어안았지.
“왜? 어려운 일 아니라고 했잖아.”
“아니…, 이게 왜…. 왜 이러는 거야? 내가 헬륨가스를 채운 것도 아닌데. 이거 내가 직접 분 거야. 그런데 왜 이렇게 가벼운 거야?”
너는 풍선을 바닥에 다시 내려놓았어. 몇 번을 반복했지만, 그때마다 풍선은 두둥실 떠 올랐어. 날아가 버리려는 풍선을, 너는 더욱더 끌어안게 되었어. 여전히 말랑하고 따뜻한 그 풍선을.
“이제 보내줘.”
“…왜? 왜 날 떠나려는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 주면 안 돼?”
“왜 보내지 못하는 거야?”
“몰라. 난 몰라. 보낼 수 없어.”
너는 풍선 매듭에 실을 묶었어. 줄을 단단히 쥐고, 손가락에 맨 자국이 붉게 남도록 매일 그 풍선을 들고 다녔어. 둥실둥실, 풍선은 너보다 높은 곳에서 조용히, 마치 멀찍이서 너를 바라보는 누군가처럼 따라다녔어.
손가락은 점점 아파졌어. 감은 줄이 피부를 눌러, 자국이 깊어졌지. 때로는 풍선을 놓치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너는 울먹이며 쫓아갔어. 뛰어가서 다시 잡고, 또 단단히 묶었지.
붙잡고 있다는 안도감은 시간이 지나며 묘한 불안으로 바뀌었어.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혹시 놓쳐버리면, 나는 또다시 무너져버리지 않을까?’
어쩌면 너도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
처음엔 그저 무언가를 붙잡고 싶은 마음이었을 지도 모른다고.
혹은 놓치지 않겠다고, 영영 곁에 두고 싶다고 하면서, 무엇인지도 몰라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정말 널 떠나는 거라고 생각하니? 놓지 않으면? 지킬 수 있어?”
“…”
“붙잡고 있는 동안 몇 번이나 바라봐주었니?”
그제야 고개를 들고 너는 풍선을 바라보았어. 푹 빠져들 것만 같았던 푸른 색은 어느샌가 바랬고, 불어넣었던 네 바람도 조금 빠져나간 모습이었지.
그렇게 아주 고요한 바람이 불었어. 네 마음속에.
그날 너는 풍선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줄을 풀었어. 속삭이듯 말했지.
“잘 가. 나는 여기서 기다릴게. 혹시라도, 네가 도착하면 하늘이 내게 속삭여줄지도 모르니까.”
풍선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흔들렸어. 네 손을 떠난 풍선은 점점 멀어졌어. 처음엔 파랗고 동그란 점이었다가, 곧 점보다 작은 먼지처럼 작아졌고, 마침내, 눈에도 마음에도 보이지 않게 되었지.
풍선을 놓고 나서야, 네 손도 비로소 가벼워졌어.
지금까지 붙잡고 있었던 건 네 마음의 무게였다는 걸 놓은 뒤에야 알게 되었지.
그리고 그제야, 너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어. 붙잡고 있을 땐 마음에 너무 팽팽해 울 수 없었으니까. 놓고 나니 마음속에 공간이 생겼고, 울음을 담아낼 수 있게 되었어.
시간이 흐르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네 눈빛이 조금 더 또렷해졌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어떤 아이가 풍선 하나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았지. 그 아이도 줄을 감았다 풀었다 하면서 망설이고 있었어. 하늘은 생각보다 많은 풍선으로 가득했고, 서로 부딪히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흘러가고 있었어.
“내 곁에 없어서 볼 수 없지만,
그건… 없어졌다기보단 다르게 존재하는 거 아닐까? 그렇지?” 너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물었어.
그 안에 담았던 내 바람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그건 이제 하늘의 일부가 되어,
언젠가 다시,
또 어떤 바람으로,
너에게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 가끔 그 하늘을 올려다보자.
우리 마음도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아도 저기 어딘가 흘러가고 있으니까.
그렇게 그저 기다릴 수 있기를.
당장은 닿지 않아도, 언젠가 도착할지도 모를 하늘에게
마음을 띄워 보내는 방법을 배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