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위 상자

자꾸만 뒤로 밀리는 것_화요일 오후 세 시의 오븐_250722

by beautiful wisdom

요즘 자주 정리를 한다.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고, 남아 있는 것들에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준다. 이 과정을 거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언젠간 필요할 거야’라며 남겨둔 것들은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허탈하면서도, 환기되는 기분이 든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은 얼마나 될까?

무엇 때문에 아등바등 전부 끌어안고 있는 걸까?


매번 손대지 못하고 남겨두는 게 있다. 책장 위에 놓인 상자. 먼지 덮인 채로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다. 거기 있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손이 가질 않는다.


사진 몇 장, 글씨가 희미해진 편지, 어느 여름날 공연 티켓, 바닷가에서 주운 조개껍데기,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쪽지들. 사소한 물건들이다. 하지만 그 물건마다, 그때의 내가, 그때의 감정이 가만히 눌러 담겨 있다.


자주 열어보았다.

상자 안의 기억들이 따뜻했을 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만큼 마음도 선명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상자를 열면 마음이 무거워졌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말, 끝내지 못한 마음, 받았지만 돌려주지 못한 온기,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존재들.


마치 그때의 나를 불러와야 할 것만 같았다. 상자를 닫으면 그때의 나를 덮어버리는 것 같았다. 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많이 달라졌으니까. 그러나 또, 버릴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지금의 나를 만든 부스러기 같은 시간이 있으니까.


“왜 계속 가지고 있는 거야?” 누군가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아마도 완전히 끝낼 수 없는 무언가. 아직도 모르게 쥐고 있는 나 자신의 일부, 아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순간에 대한 미련, 뭐라 단정할 수 없지만, 그 모든 것들이 이 작은 상자 속에 함께 눌려 있는 것 같았다.

책장 위 상자는 버릴 수 없는 것들을 넣어두는 곳이 아니라는 걸 안다. 여전히 품고 있는 나의 일부분을 조용히 쉬게 하는 장소다. 가끔은 상상하기도 한다. 그때의 나여서 만날 수 있었던 순간들, 그걸 마주하면 어떤 기분일지, 내게 뭐라고 말을 걸지, 그 말을 여전히 들을 수 있을지.

사실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그래서 책장 위 그 상자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쩐지 안심이 된다.

버리는 걸 미뤄도 된다는 것.

잊는 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지금 당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어떤 것은 그저, 조용히 자리를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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