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여행을 위해 필요한 건 다 갖췄다. 백반과 한정식, 오리탕, 육전, 떡갈비 등 지역의 맛, 비엔날레를 필두로 한 문화예술, 5·18민주화운동으로 만나는 격변의 현대사, 동명동과 양림동 등의 핫플도 있다. 그런데도 무언가 부족한 느낌인데, 바로 스토리다. 이 아쉬움을 ‘광주아트패스(artpass)’와 ‘아뜨랑 여행’이 채워준다. 광주 여행에 한방이 생긴 셈이다.
광주아트패스는 광주 예술여행을 즐기기 위한 필수품이다. 내년 상반기 앱 출시를 앞두고 있는 여행 플랫폼으로, 광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예술여행 및 관광 상품과 콘텐츠, 정보, 모빌리티 서비스(KTX & SRT 등)를 한 곳에 모았다. 게다가 광주아트패스와 협업하는 식당과 카페에서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앱 출시에 앞서 광주아트패스로 즐길 수 있는 여행을 미리 맛봤다. 단언하는데, 광주 여행의 신세계다. 광주 여행을 색다른 방향에서 만나고 싶은 이들이라면 꼭!
광주에서 주목할 만한 여행 테마는 골목이다. 저마다의 매력과 이야기가 듬뿍 담긴 공간들을 엮으면 근사한 코스가 된다. 아트패스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예술여행 골목’은 광주극장 골목(충장로), 양림 미술관 골목(양림동), 헌책방 골목(계림동), 동명카페 골목(동명동), 구시청 골목(서남동) 등 총 8가지인데, 첫 여정으로 ‘보리밥 골목(지산동)’을 선택했다.
보리밥 골목여행은 미식 여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법 무게감 있는 코스다. 도시에서 무등산 자락으로 이어지는 골목을 걸으면서 독재와 어두운 시대에 저항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정의로운 마음으로 광주, 그리고 시대를 지키려 했던 이들을 기억하는 여행이다.
주요 목적지는 시인 문병란의 집, 오지호 생가, 이한열 생가, 무등산 보리밥거리, 지산유원지다. 여행의 기점인 밤실로4번안길(지산동)은 아기자기한 동네다. 흔한 벽화가 아니라 다양한 문구와 앙증맞은 조각품으로 집들이 꾸며져 보는 맛이 있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문병란 시인의 집이 나온다. 문병란 시인은 ‘직녀’, ‘희망가’ 등의 대표 작품을 보유하고, 요산문학상, 박인환 시문학상 등을 수상한 광주 대표 시인이다. 시인 문병란 집(1980-2015 생활)에서 그의 작품과 유품, 서재 등을 만날 수 있다.
다음으로 근현대 서양화의 대가 오지호 화가의 생가와 198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이한열 열사의 생가를 방문한다. 단, 한 발자국 떨어져서. 오지호 생가의 경우 아직도 화가와 관련된 분이 거주하고 있으니 지나치게 가깝게 다가가지 말기를. 대신 도슨트 투어가 아쉬움을 달래준다. 도슨트 선생님의 스토리텔링으로 오지호 화가와 이한열 열사의 생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즉, 문병란 시인, 오지호 화가, 이한열 열사 3인과 광주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것이다.
점심 식사는 푸짐한 보리밥이다. 무등산을 오가는 지게꾼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보리밥이 이제는 광주의 맛으로 격상했다. 직접 경험하면 유명한 이유를 공감하게 된다.
단돈 1만 원이면 제육볶음과 각종 밑반찬, 보리밥, 싱싱한 열무쌈을 즐길 수 있다. 지금처럼 외식 물가가 치솟은 상황에서 이만한 밥상은 광주라서 가능한 것 같다. 취향에 맞는 나물을 넣고 비벼 열무에 싸 먹으면 된다. 이후 여행은 무등산으로 이어진다.
무등산은 광주의 랜드마크이자 광주를 품고 있는 산이다. 광주인에게는 애틋한 장소기도 하다. 날이 좋을 때는 소풍 장소로, 심적으로 힘들 때면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이 되니까. ‘무등’이라는 이름도 특별하다.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라는 뜻과 평등이 크게 이뤄져 평등 자체가 사라진 상태, 즉 차등이 없는 산이라는 의미다.
전국의 등산인들은 무등산의 주상절리를 보기 위해, 여행자들은 지산 유원지에서 출발하는 리프트와 무등산 모노레일을 즐기기 위해 이곳으로 모인다. 최근에 무등산을 찾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바로 ‘시간의 숲’ 프로그램이다. 광주 동구와 10년후그라운드가 합심해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무등산과 관련된 역사적인 인물 4명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이다.
성공한 예술가지만, 세속적 성공에 도취되지 않고 무등산에 은거, 삼애(천지인) 사상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일군 ‘의재 허백련(1891~1977)', 소외받은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은 '오방 최흥종(1880~1966)', 무등산의 자연 속에서 삶의 회복을 준비하면서도,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을 이끌어 간 ‘석아 최원순(1896~1936)', 광주 최초의 여의사이자 석아 최원순의 아내인 ‘현덕신(1896~1962)’이 주인공들이다.프로그램은 증심사주차장에서 시작된다. 도슨트와 함께 문빈정사, 증심교, 춘설헌(허백련이 세운 화실)을 걸으면서 무등산과 깃든 다채로운 이야기를 접한다. 또 의재 허백련의 작품과 현대의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의재미술관도 빠트릴 수 없다.
무등산과 관련된 인물들의 소개를 들었으니, 이제 그들을 실제로 만날 차례다. 시간의 숲의 하이라이트 격인 장소특정형 연극 덕분이다. 의재미술관을 나서면 스토리텔러인 현덕신이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를 따라 관풍대, 의재교, 증심교에서 의재 허백련, 오방 최흥종, 석아 최원순을 만난다. 무등산에서 연극까지 보니 도슨트로 들었던 당시 시대상을 좀 더 쉽고, 재밌게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열연과 수준급의 노래 실력이 더해져 몰입감이 상당했다. 무등산에서 꿈을 꾸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무등산을 또 다른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의 숲 프로그램은 내년 상반기에 광주아트패스 앱을 통해 예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겨울은 유독 공기가 차고, 춥다. 따뜻한 차와 함께라면 조금은 낭만적으로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광주에서는 한국제다가 운영하는 ‘차생원 본점’이 적합한 공간이다. 역사도 꽤 깊다. 한국제다는 1951년 창립해 70년 동안 다양한 차를 생산하고, 관련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게다가 농림축산식품부가 ‘전통식품명인’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광주에 있는 차생원 본점은 2014년에 문을 열었고, 차와 다기 등을 판매하고 있다. 또 말차와 홍차, 국화차, 감일차 등을 즐길 수 있는 카페도 겸하고 있다.
곧 광주아트패스 앱을 통해 이곳에서 다도(판매 예정)를 체험할 수 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다도를 배우고, 차를 음미하면서 일상을 풍요롭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만족도가 꽤 높으니 한 번 참여하기를 추천한다.
다도체험을 통해 경험한 말차와 다식은 수준급이었다. 차생원의 말차는 1988년부터 한국에서 생산했다. 맷돌로 갈아서 대량 생산이 힘들지만, 찻잎 특유의 색이 살아있고 맛도 깊다. 쌉싸름한 말차와 달콤한 다식의 궁합이 상당히 좋다.
마지막 여정은 맛있는 거리인 ‘아시아음식문화거리’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주변, 구 시청사거리에 광주와 한국 음식뿐 아니라 일본,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음식을 만날 수 있다. 멕시칸, 바(bar) 등 좀 더 이국적인 공간도 곳곳에 있다. 이곳에서 골목 미션 게임 ‘아시아문화거리 퀘스트’를 즐길 수 있다.
거리 속 퀘스트를 모두 깨면 미션의 시작점(문화전당로 35번길 2)으로 가보자. 추억의 뽑기 기계를 통해 소정의 상품을 얻을 수 있다. 이후 미션을 진행하며 눈여겨봤던 식당에서 광주아트패스와 함께 맛있는 식사를 즐기면 여행이 마무리된다.
글·사진 이성균 취재협조 광주아트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