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살춘기(春記)
"저 이제 좀 쉬어야겠어요."
- 응, 어떻게? 뭐? 일을?
"네, 3개월 정도 쉬려고요"
지난 3월, 월 매출이 크게 급증할 때가 있었다. 기획한 광고 콘텐츠 하나가 터져 다른 품목들을 모두 제치고 당당하게 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해버렸고, 매출은 2배 이상 상승했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아침에 눈을 뜨면 매출부터 확인했다. 일 매출이 갑자기 떨어지는 날은 비상이다. 어디에서 떨어졌으며, 왜 떨어졌는지에 대한 분석이 들어간다. 하지만 아무런 변동요인이 없어 원인을 찾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없던 이유를 만들어 낼 수도 없고, 답답할 노릇이다. 어떤 말을 해도 왠지 변명처럼 들릴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난 왜 '변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지.
매출은 내 책임이니까.
매출이 안 나오면 내 잘못.
나보다 직급이 높은 분들도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책임을 지려고 하는 걸까. 뛰어난 주인정신인가? 내 포지션에 대한 책임감인가? 사실 회사는 나에게 책임지라는 포지션을 준 적도 없다.
다시 저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윗사람은 문제 상황, 즉 결과에 대해서만 본다. 과정에는 내가 있고 문제 상황은 과정에 따른 결과물이다. 그러니까 내가 원인이 되는 거다. 참 희한하고 기가 찰 노릇이다.
다시 나의 생각을 곱씹어보자. 이 문제 상황에서 내가 원인인가? 아니다. 광고 예산 변동에 따른 감소 거나, 일시적 결제 오류가 있었거나, 페이스북 입찰경쟁강도가 상승했거나. 아니 그날따라 사람들이 안 샀나 보지 뭐!
그런데 나는 왜 여기서 '내'가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일에 있어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완벽주의는 번아웃을 불러온다. 번아웃은 사실 우울증을 듣기 좋게 부르는 말 같다. 병원에 가서 우울증 판정을 받지 않은 직전 상태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내가 병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2021년 3월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 750명 대상으로 번아웃 증후군을 조사한 결과, 직장인 3명 중 2명이 최근 1년간 번아웃을 경험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번아웃을 경험하게 된 많은 계기들이 있겠지만 우리는 다시 '완벽주의 성향'으로 돌아오자.
번아웃 환자들은 번아웃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운동을 하거나 취미 활동에 열심인 경우가 많다. 그 모든 일에 있어 이들의 문제는 스위치를 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무슨 일이든 그 일을 다 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늘 시달린다.
- 클라우스 베른하르트의 '어느 날 갑자기 무기력이 찾아왔다' 中
그렇다. 나는 주말에도 출근을 안 할 뿐이지 머릿속엔 일 생각이 가득했다. 스위치를 끄지 못하는 것이다. 친구들과 휴가를 가서도 노트북을 들고 가 중간중간 광고 영상 편집을 하거나, 인스타그램 리뷰를 공유하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슬랙(slack)에 공유해댔다. 일손이 턱없이 부족한 곳에서의 '연차'는 그리 큰 의미가 없었다.
"휴가 중입니다. 차주 월요일에 연락 주세요."라고 얘기해 본 적이 없다. 카톡과 전화로 각종 파트너사들, 대행사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모든 업무를 팔로 업하고는 뿌듯함을 느낀다. -나의 연차가 다른 이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이내 모든 일을 무사히 처리했다는 안도감이 들 때쯤 벌써 시계는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다. 연차지만 퇴근하는 일상이다.
완벽주의자는 대개 휴가 때조차 직장 상사, 고객, 동료, 친척, 지인들이 언제든 연락할 수 있게 해 둔다. 이 정도의 '의리'는 이들에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동안 '단 한 사람'이 외면받고 있음을, 즉 '자기 자신'이 등한시되고 있음은 스스로 알지 못한다.
- 클라우스 베른하르트의 '어느 날 갑자기 무기력이 찾아왔다' 中
이런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직장인들이여! 이제 그만 내려놓으소서. 당신에게는 책임질 사수와 업무를 팔로업 할 팀원이 있사옵니다. 이런 분들에게 특효약은 바로 '위임'이다. 당신에게 주어지지도 않은 책임은 윗분들에게 위임하자. 그리고 쉬어야 할 연차에는 팀원들에게 인수인계하길.
만약 사수도, 팀원도 없다면 어쩔 수 없다. 그곳은 A부터 Z까지 당신이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배우고, 도전하고, 경험하고 성취해서 팀원을 뽑아라. 나는 직전 회사에서 이러한 환경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절망하지 말고 그 순간이 기회임을 알고 즐겼으면 좋겠다. 비록 나의 완벽주의 성향은 여기에서 비롯되었지만. 나는 나의 완벽주의를 미워하지 않는다. 완벽주의는 내가 업무를 더 잘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제는 미완성도 사랑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내 자신이 되길.
이 글은 '어느 날 갑자기 무기력이 찾아왔다'는 글을 읽고 난 독후감입니다.
우울증과 번아웃 사이에서 허우적대는 당신에게 솔루션이 될 책이기도 하지요.
저를 비롯한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 선후배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