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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l 25. 2021

또 한 번 말해버렸다. 퇴사 고백.

서른살춘기(春記)


"저 이제 좀 쉬어야겠어요."


- 응, 어떻게? 뭐? 일을?


"네, 3개월 정도 쉬려고요"

지난 3월, 월 매출이 크게 급증할 때가 있었다. 기획한 광고 콘텐츠 하나가 터져 다른 품목들을 모두 제치고 당당하게 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해버렸고, 매출은 2배 이상 상승했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아침에 눈을 뜨면 매출부터 확인했다. 일 매출이 갑자기 떨어지는 날은 비상이다. 어디에서 떨어졌으며, 왜 떨어졌는지에 대한 분석이 들어간다. 하지만 아무런 변동요인이 없어 원인을 찾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없던 이유를 만들어 낼 수도 없고, 답답할 노릇이다. 어떤 말을 해도 왠지 변명처럼 들릴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난 왜 '변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지.


매출은 내 책임이니까.
매출이 안 나오면 내 잘못.


나보다 직급이 높은 분들도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책임을 지려고 하는 걸까. 뛰어난 주인정신인가? 내 포지션에 대한 책임감인가? 사실 회사는 나에게 책임지라는 포지션을 준 적도 없다.

다시 저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윗사람은 문제 상황, 즉 결과에 대해서만 본다. 과정에는 내가 있고 문제 상황은 과정에 따른 결과물이다. 그러니까 내가 원인이 되는 거다. 참 희한하고 기가 찰 노릇이다.


다시 나의 생각을 곱씹어보자. 이 문제 상황에서 내가 원인인가? 아니다. 광고 예산 변동에 따른 감소 거나, 일시적 결제 오류가 있었거나, 페이스북 입찰경쟁강도가 상승했거나. 아니 그날따라 사람들이 안 샀나 보지 뭐!


그런데 나는 왜 여기서 '내'가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일에 있어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완벽주의는 번아웃을 불러온다. 번아웃은 사실 우울증을 듣기 좋게 부르는 말 같다. 병원에 가서 우울증 판정을 받지 않은 직전 상태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내가 병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2021년 3월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 750명 대상으로 번아웃 증후군을 조사한 결과, 직장인 3명 중 2명이 최근 1년간 번아웃을 경험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번아웃을 경험하게 된 많은 계기들이 있겠지만 우리는 다시 '완벽주의 성향'으로 돌아오자.


번아웃 환자들은 번아웃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운동을 하거나 취미 활동에 열심인 경우가 많다. 그 모든 일에 있어 이들의 문제는 스위치를 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무슨 일이든 그 일을 다 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늘 시달린다.

- 클라우스 베른하르트의 '어느 날 갑자기 무기력이 찾아왔다' 中


그렇다. 나는 주말에도 출근을 안 할 뿐이지 머릿속엔 일 생각이 가득했다. 스위치를 끄지 못하는 것이다. 친구들과 휴가를 가서도 노트북을 들고 가 중간중간 광고 영상 편집을 하거나, 인스타그램 리뷰를 공유하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슬랙(slack)에 공유해댔다. 일손이 턱없이 부족한 곳에서의 '연차'는 그리 큰 의미가 없었다.

"휴가 중입니다. 차주 월요일에 연락 주세요."라고 얘기해 본 적이 없다. 카톡과 전화로 각종 파트너사들, 대행사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모든 업무를 팔로 업하고는 뿌듯함을 느낀다. -나의 연차가 다른 이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이내 모든 일을 무사히 처리했다는 안도감이 들 때쯤 벌써 시계는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다. 연차지만 퇴근하는 일상이다.


완벽주의자는 대개 휴가 때조차 직장 상사, 고객, 동료, 친척, 지인들이 언제든 연락할 수 있게 해 둔다. 이 정도의 '의리'는 이들에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동안 '단 한 사람'이 외면받고 있음을, 즉 '자기 자신'이 등한시되고 있음은 스스로 알지 못한다.

- 클라우스 베른하르트의 '어느 날 갑자기 무기력이 찾아왔다' 中


이런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직장인들이여! 이제 그만 내려놓으소서. 당신에게는 책임질 사수와 업무를 팔로업 할 팀원이 있사옵니다. 이런 분들에게 특효약은 바로 '위임'이다. 당신에게 주어지지도 않은 책임은 윗분들에게 위임하자. 그리고 쉬어야 할 연차에는 팀원들에게 인수인계하길.


만약 사수도, 원도 없다면 어쩔  없다. 그곳은 A부터 Z까지 당신이 많은 것을 경험할  있는 곳이다. 배우고, 도전하고, 경험하고 성취해서 팀원을 뽑아라. 나는 직전 회사에서 이러한 환경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절망하지 말고  순간이 기회임을 알고 즐겼으면 좋겠다. 비록 나의 완벽주의 성향은 여기에서 비롯되었지만. 나는 나의 완벽주의를 미워하지 않는다. 완벽주의는 내가 업무를   해낼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제는 미완성도 사랑하고 보듬어   있는  자신이 되길.


이 글은 '어느 날 갑자기 무기력이 찾아왔다'는 글을 읽고 난 독후감입니다.
우울증과 번아웃 사이에서 허우적대는 당신에게 솔루션이 될 책이기도 하지요.
저를 비롯한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 선후배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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