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살춘기(春期)
내게 허락된 유일한 마약.
그것은 자기 직전에 마시는 맥주다. 맥주는 내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 위를 적시고, 장을 타고 흘러 그다음 날 두둑한 뱃살을 선사하겠지. 나는 이 모든 걸 알면서도 오늘 밤에도 맥주를 마신다. 안 좋은 거 다 알면서 하니까. 그래서 마약이다.
맥주는 우리의 갈증을 해소하기도 하지만 갈등을 해소하기도 한다. 매일 저녁 마주 보고 맥주를 들이켤 때면 오늘은 별일 없었는지, 내일 약속은 없는지, 주말엔 뭐하는지 등의 물음표 섞인 말들이 절로 나온다. 갈등이 생기기도 전에 갈등을 해소한다.
예전엔 맥주를 양껏 마셨다. 소주병을 다 마시고 세워두듯 작은 맥주캔을 마시는 족족 찌그러뜨려서 늘어두는 걸 좋아했다. 로망이랄까. 수다를 떨며 밤이 가는 줄 모르고 마셨다. 요즘은 500ml짜리 큰 맥주캔을 사서 먹는다. 왜냐고? 세계맥주 4캔에 만원, 다 마케팅 때문이다. 아니 이젠 로망보단 현실감각에 더 예민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주변에 A4용지 한 장 반 분량의 글을 쓰는데 30분밖에 걸리지 않는 친구가 있다. 오늘 그 비결을 좀 알 것 같다. 맥주를 마시면 글이 잘 써진다. 지금 내가 그렇다. 사실 술을 마시면 더 잘되는 일이 참 많다. 고백도, 외국어도, 섹스도. 맥주를 마시고 쓰는 글은 뭐랄까 생각 없이 툭 내뱉는 글들 같다. 그래서 가끔 더 좋을 때가 있다.
만약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이 얘가 글을 잘 썼나 못 썼나를 보러 왔다면 꿈 깨시길. 난 지금 맥주 한잔에 글을 갈기고 있는 중이니까. 코로나가 다시 발작하는 바람에 수요일마다 모여 글 쓰던 동지들을 잃었고, 우리는 강제적인 글쓰기에 돌입했다. 1주일에 1편의 글을 발행하는 것. 그러지 못할 시엔 오천 원을 내야 한다. 설마 오천 원을 내는 사람이 있을까? 했는데 그게 내가 될까 봐 가장 두려웠다. 왜냐면 한 명은 이미 어제 글을 발행했기 때문이다. 묘한 경쟁심리 같은 게 생기기도 하고, 나만 돈을 내면 억울하기도 하고. 역시 사람은 경쟁하고 돈을 걸어야 한다. 이 몹쓸 자본주의사회! 사람들의 심리를 너무나 잘 이용한다.
냉장고를 열었는데 아쉽게도 맥주는 한 캔 밖에 없었다. 만약 두 캔이 있었다면 A4용지 두장의 분량을 썼을 텐데 말이다. 합리화라고? 아니. 나는 오늘부로 맥주를 마시며 글을 쓰기로 다짐했고, 지금 내겐 맥주가 딱 한 캔 모자랄 뿐이다. 이렇게 또 술 마실 좋은 핑계거리 하나를 찾았다.
오늘의 맥주 ‘제주 위트 에일’ - 쌉싸름한 과일향에 기분 좋은 목 넘김
누구에게나 짜증 나고 화나고 답답한 일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럴 땐 이 맥주를 마시며 기분 좋게 넘겨 버리기로 – 됐고, 우리 맥주나 마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