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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씨 Jul 05. 2022

우유 안 먹는 자의 항변

최초의 기억은 초등학생 때다. 학기 초가 되면 엄마 손을 잡고 담임 선생님 한 번, 행정실 선생님을 또 한 번 찾아뵀다. 엄마가 선생님께 우유 급식을 끊겠다고 말을 하는 순간, 옆에 있던 나는 심장이 콩닥거렸다. 선생님 반응에 따라 한 해의 운명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어떤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은 듯 알겠다고 했고 어떤 선생님은 한창 자라는 나이이니 편식을 고쳐주겠노라 했다. 후자인 선생님이 걸리면 그 해는 1년 내내 고통이었다. 친구들에게 대신 먹어달라고 하기, 화장실 변기에 버리기, 가방에 숨기기. 초등학생 머리로 할 수 있는 짓은 다 해봤다. 그러다 몰래 숨겨놨던 우유가 가방 안에서 터지기라도 하는 날엔 비릿한 우유 냄새에 토악질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우유를 못 먹는다. 우유뿐만 아니라 우유로 만든 것, 가령 스프, 생크림, 요거트, 치즈 같은 것들을 안 먹는다. 맛은 물론이고 냄새도 역겹다. 아주 어렸을 때는 먹긴 했다던데 언제부터 싫어진 건지 모르겠다. 우유를 먹지 못해 생기는 고통은 학창시절 내내 계속됐다. 어떤 사명감을 가진 선생님은 키 커야 되니 한 모금만 먹어보자고, 정 못 먹겠으면 초코 가루를 타 먹어보자고 회유했다. 우유 안 먹는 건 허용해도 스프는 먹어야 된다며 호되게 혼내는 선생님도 있었다. 그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나는 번번이 입에 넣은 것들을 토해냈다. 스무 살 되고 가장 좋았던 건 다름 아닌 우유 급식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더 이상 흰우유 300ml 때문에 하루 종일 골머리 썩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날아갈 듯 기뻤다.


“헐, 너는 그럼 세상에 존재하는 맛의 절반을 모르고 사는 거네?”


우유와 유제품을 못 먹는다고 말했을 때 가장 많이들은 말이다. 살다보니 나의 편식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여름에 우유 얼음으로 만든 빙수를 먹지 않고, 갓 구워 만든 치즈 케익을 봐도 별 감흥이 없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놀랄 일인 모양이다. 사실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맛의 절반’을 몰라도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 우유나 유제품 말고도 다른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제철 음식만 잘 챙겨먹어도 내 입과 위장은 충분히 즐겁다. 물론 그 말 속에 담긴 마음은 이해한다. 좋아하는 것을 함께 즐기고 싶은 마음. 본인들이 맛있다고 생각하는 맛을 향유하지 못하는 내가 안타까울 수 있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한 번만 먹어보라며 강요를 할 때다. 설마 삼십 평생 살면서 먹어보려고 노력을 안했을까. 언젠가 방송사에서 인턴을 했던 때다. 회의에서 아이템이 수십 번 뒤엎어진 날, 장시간 회의에 지친 기자님과 작가님이 기분 전환을 하자며 브런치 집에 나를 데리고 갔다. 맛있는 거 먹자고 시켜준 음식들은 하필 크림 파스타와 고르곤졸라 피자, 리코타 치즈 샐러드였다. 안 그래도 열 받아 있는 사람들의 신경을 건들고 싶지 않았기에 음식을 입에 넣었다. 역한 맛이 올라와서 물과 함께 알약 삼키듯 넘겼다. 노력해도 아닌 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진수성찬인 음식도 나에겐 그저 삼켜 넘겨야 할 덩어리일 뿐이었다. 다소 비약적이지만, 똥을 꼭 먹어봐야 똥인 줄 아는 건 아니니까. 강요 앞에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더 안 먹어봐도 된다.


뭐라 반응하기 애매할 때도 있다. 채식주의자냐는 질문을 받을 때다. 채소와 달걀까지만 먹는 채식, 다시 말해 고기뿐만 아니라 우유와 유제품을 안 먹는 오보 채식이란 게 있으니 채식주의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존중의 의미를 담아 묻는 거라면 고마운 질문이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 이 질문엔 ‘유난스럽다’는 뉘앙스가 내포된 경우가 많다. “우유 왜 안 먹어요? 혹시 채식주의자인 건 아니죠?” 혹시- 라는 말에 불쾌감 레이더가 작동된다. 이런 질문 앞에서 나는 말이 길어진다. 그냥 싫을 수도 있는 거고 어쩌면 내가 정말 오보 채식주의자일 수도 있는 건데. 무언가를 안 먹는 게 이렇게 해명하듯 대답해야할 일인가 싶다.


한때 ‘고기 없는 월요일’을 열심히 실천한 적이 있다. 고기 없는 월요일이란 말 그대로 일주일 중 하루라도 고기를 먹지 않는(채식을 하는) 캠페인이다.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가 환경 보호 차원에서 제안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비육식 식단을 지키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 말고는 깨달은 바가 대단치는 않았다.(고기는 피할 수 있어도, 다진 양념이나 육수에 들어간 고기까지 피하기는 쉽지 않았다.) 반면 주변 반응은 꽤 피곤했다. 유난스럽다는 말부터, 어차피 다른 요일에 고기 먹을 거면서 왜 하느냐는 무시까지 다양한 말을 들었다. 자연스럽게 자기검열이 뒤따랐고 그 생각들이 나를 더 흔들었다. “대단하다”며 추켜세우는 말도, “걱정 된다”며 속상해하는 말도 부담스러웠다. 차라리 무관심이 더 고마웠다. 완전한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무언가 먹거나 먹지 않는 자들의 피로감이 감히 이해가 됐다.


주변을 돌아보면 편식하는 사람은 많다. 오이를 안 먹는 사람도 있고 민트 초코를 안 먹는 사람도 있다. 한 때 페이스북에 ‘건포도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도 있지 않았나. 호불호 음식에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다면, 오이나 민트 초코, 건포도는 주류다. 많이들 싫어하니까, 왜 싫은지 부연할 필요가 없다. 고기나 우유, 유제품은 아무래도 비주류인 게 분명하다. 아니, 오히려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음식에 속한다. 그러니 ‘이 좋은 걸 왜 안 먹느냐’는 물음이 뒤따라오는 것일 테다. 우유의 경우 건강식품으로서의 지위도 한 몫 한다. 우유를 왜 안 먹는지, 우유의 어떤 점이 싫은지, 뼈 건강을 위해 대체식품으로 뭘 먹는지 말하다보면, 그저 먹는 일도 주류를 거스르기란 참으로 피곤한 일이구나- 싶다.


회사를 다니면서 입맛도 어느 정도 사회화가 됐다. 우유 냄새가 아주 짙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빵이라든가, 버터로 요리된 음식들은 곧잘 먹는다. 나름의 처세술도 생겼다. 소개팅이 아니고서야 식성이나 음식 취향에 대해 굳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다. 회사 간담회 오찬 메뉴가 크림 파스타라면 아무 말 없이 안 먹으면 그만이다. 구구절절 설명하고 안 먹느니 입맛 없는 척하는 게 훨씬 효율이 좋다. 그저 무던하게 조직에 스며드는 것이 사회생활이라면 어떤 취향, 특히 불호를 드러내지 않는 일 또한 그 연장선에 있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날 ‘싫존주의’의 등장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싫존주의란 ‘싫음 + 존중 + 주의’의 합성어로, 불호 역시 존중해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싫존주의가 무분별한 혐오를 정당화하는 말로 오용되지만 않는다면 불호를 존중해달라는 외침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싫은 걸 싫다고 말하지 못했던 편식쟁이들이여, 모두가 좋다고 말할 때 그 말에 공감할 수 없던 우리네 삶은 얼마나 외롭고 수고로웠나!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신나게 우유송 따라 부르며 우유 마실 때 나 홀로 세상 근심 다 짊어진 얼굴을 하던 어린 시절 나에게 이 노래를 바친다.


우~유 싫어~ 우~유~ 싫어~ 커~피~ 주세요~ (더~ 주세요~)

우~유 싫어~ 우~유~가 싫어~ 세상에서 제일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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