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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씨 Jan 11. 2019

'80년대 아이유'가 슬픔을 다루는 방식

"슬퍼지면 어때요, 울어버리면 되지"

90대생이 듣는 7080 음악 이야기


언젠가 방탈출 카페에서 잠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CCTV로 모니터하면서 손님들이 원하는 타이밍에 힌트를 주고, 게임이 끝나면 널브러져있는 힌트들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이었다. 게임 순서를 모른 채 힌트 주는 자리에 앉아있는 건 참 난감한 노릇이었다. 매니저에게 게임 순서나 힌트 위치가 적힌 매뉴얼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그런 건 없다는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스포 방지 및 보안 유지’가 방탈출 카페의 생명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대신 손님이 없는 시간에 게임을 직접 해보면서 머리로 순서를 익히라고 했다. 1인당 2만 원쯤 하는 게임을 무료로 해볼 수 있다는 게 이 알바의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급한 대로 혼자서 매뉴얼을 만들어가며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테마 하나를 익혔다. 방 안은 80년대를 떠올릴만한 소품들로 꾸며져 있었다. 80년대를 살아보지 않았으니 그것들이 얼마나 리얼하게 연출됐는지는 알 겨를이 없지만, 적어도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이 떠오를 만큼은 리얼했다. (자세한 묘사는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생략한다.) 배경음악으로도 80년대 댄스가요가 나왔다. 나미의 <빙글빙글>이나 이상은의 <담다디> 같은 노래들이었다. 하루에 대여섯 번 같은 방만 모니터하고 치우다보니 게임 순서는 물론, 어느새 배경음악의 순서와 가사까지 외워졌다.

방탈출 카페 아르바이트의 장점이자 단점은 탈출법과 단서 위치를 다 안다는 것
나 혼자면 어때요, 난 아직 어린 걸. 슬퍼지면 어때요, 울어버리면 되지.


어느 날, 방을 치우던 중 우연히 노래 한 소절이 귀에 꽂혔다. 플레이리스트 다섯 번째 곡, 장덕이 부른 <님 떠난 후>의 후렴이었다. 무의식에 몇 마디 흥얼거려보긴 했어도 집중해서 가사를 곱씹어본 건 처음이었다. 당시 나는 짝사랑을 하고 있었는데 태생이 회피형 인간인지라 맘속에 피어난 감정을 직면하지 못했다. 좋아도 좋아하지 않는 척을 했고 슬퍼도 슬프지 않은 척을 했다. 그런데 혼자여도 어려서 괜찮고, 슬프면 울어버리면 그만이라니? 솔직하고 당돌한 가사에 뒤통수를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누가 부른 노래고 누가 쓴 가사인지 궁금했다.

<님 떠난 후>는 한때 ‘천재소녀’로 불리던 싱어송라이터 장덕의 노래다. 장덕은 친오빠 장현과 함께 남매듀오인 ‘현이와 덕이’를 결성해 만 14살에 최연소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했다. 1년 뒤에는 최연소 작사·작곡가로서 서울가요제 무대에 올라 <소녀와 가로등>으로 상을 받았다. 과연 천재 소리를 들을 만 한 이력이다. 그의 세 번째 솔로 앨범인 《님 떠난 후》는 그가 오빠와 음악적 결별을 선언하고 발표한 첫 앨범이다. 타이틀곡인 <님 떠난 후>는 KBS 가요 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했고, 같은 앨범 수록곡인 <어른이 된 후에 사랑은 너무 어려워>도 큰 호응을 얻었다. 이로써 장덕은 ‘현이와 덕이’의 멤버가 아닌 제 이름 두 글자 장덕으로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천재라는 수식어에는 그의 성공뿐만 아니라 죽음까지 한데 담겼던 모양이다. ‘천재는 요절한다’는 말을 몸소 증명이라도 하듯, 장덕은 만 28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과거에 수차례 자살시도를 했던 점을 근거로 자살이라는 추측이 돌았으나, 쇼크사로 결론이 났다. 불면증과 감기증상으로 과다 복용한 약이 부작용을 일으켜 숨졌다는 결론이다. 장덕이 죽은 지 6개월이 지난 1990년 8월에는 오빠 장현이 암 투병 끝에 유명을 달리했다. 천재 남매 듀오의 이른 죽음은 많은 사람들을 슬픔에 빠뜨렸다.


창가에 소녀 혼자서 외로이 서있었지요. 밤하늘 바라보았죠. 별 하나 없는 하늘을. 그리곤 울어버렸죠. 아무도 모르게요. - 소녀와 가로등 中


그의 여러 재능 중에서 특히 눈길이 가는 건 작사 능력이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릴 적부터 빈 집에 홀로 남겨졌던 장덕은 사랑과 낭만보다 이별과 외로움을 먼저 배웠다. 고독의 괴로움을 일찍 알았기 때문에 만 15살 나이에 “창가에 소녀 혼자서 외로이 서있었지요. 밤하늘 바라보았죠, 별 하나 없는 하늘을. 그리곤 울어버렸죠 아무도 모르게요”(소녀와 가로등 中) 같은 가사를 쓸 수 있었을 테다. 외로움과 우울, 슬픔과 눈물은 그의 삶을 압도했고 장덕은 그것들을 음악으로 토해내며 생을 버텨냈다. 그게 그가 외로움과 슬픔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나는 지금 외롭고 슬프기 때문에 울어버릴 것"(슬퍼지면 어때요 울어버리면 되지)이라는, <님 떠난 후>의 솔직하고 당돌한 가사도 다시 보면 참 아프다. 노래 속 화자는 떠난 님을 아직 사랑하면서도 붙잡지 못해 이별을 수용하고(사랑했던 사람은 곁에 없지만 사랑했던 마음은 남아 있어요), 홀로 남은 채 상념에 빠졌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애써 위로한다(홀로 남아 이렇게 생각해봐도 어쩌면은 그것이 잘 된 일이야). 내가 꽂혔던 ‘당돌한’ 후렴은 화자의 솔직한 속내라기보다는 자기 암시에 가깝다. 어리니까 괜찮고, 슬프면 울면 된다는 건 일종의 회피다. 사랑하는 님을 다시 한 번 붙잡아보려 하기 보다는, 일찍이 체념하고 남은 감정을 혼자 앓는다는 점에서 이 노래는 당돌하다기보다는 애잔하다.

80년대 아이유와 21세기 장덕. 지은아 리메이크 한번만 해주세요ㅠㅠ

장덕은 최초의 여성 싱어송라이터이자 작사가, 작곡가, 프로듀서였다. 어느 신문에서 장덕을 ‘80년대 아이유’라고도 묘사했듯, 장덕을 알면 알수록 머릿속에 아이유가 오버랩 된다. 가창과 작사·작곡, 프로듀싱이 모두 가능한 여성 음악인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그렇다. 게다가 두 뮤지션이 음악을 통해 외로움과 슬픔을 다루는 방식도 비슷하다. 아이유가 쓴 가사에서도 종종 슬픔과 고독이 엿보인다. “나를 알아주지 않으셔도 돼요”(마음-아이유), “버거울 때면 언제든 나의 이름을 잊어요”(눈사람-정승환)같은 가사가 그런 느낌이다. 왠지 모를 체념의 정서가 묻어있다.


봄처럼 한 철 앓던 짝사랑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머잖아 끝이 났다. 정확히는 더 이상 못 하겠어서 선을 긋고 도망쳤다. 곡의 내막이야 어떻든 간에 <님 떠난 후>는 마음 접는 동안 꽤 의미 있는 ‘위로곡’이 됐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혼자여도 괜찮다고, 간혹 슬픔이 북받치면 울어버리면 그만이라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남은 감정을 식혔다. 언젠가 술에 취한 밤 “나는 옛날 노래 좋아해”라며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서 이 노래를 튼 적이 있다. 소심한 고백이었는데 아무도 몰랐겠지. 언젠가 아이유가 꽃갈피 후속 앨범으로 꼭 장덕의 음악을 리메이크 해줬으면 좋겠다. 같은 듯 다른 음악을 들으며, 같은 듯 다른(덜 찌질한 혹은 미화된) 기억을 꺼내볼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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