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사 템플스테이 (2) | 언젠가는 할 수 있겠지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났다. 집에서였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시각이었다. 잠자리에 든다면 모를까.
깨어있는 상태보다 잠들어 있는 상태를 좋아한다. 가장 큰 이유는 환상의 세계란 어찌 됐건 끝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쁘고 슬프고 떨어지고 날아다녀도 눈을 뜨면 끝이다.
그런 가짜 세계보다 현실 세계가 더 만족스럽다면 눈을 빨리 뜰 수 있다. 여행 중일 때가 그렇다. 비일상의 세계는 시간의 유한함과 순간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느끼게 한다.
아침 공양을 하고 8시, 스님과 차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차를 사이에 두고 천천히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주로 듣는 사람이었다.
절에서 차를 마신다고 하면 국화차나 감잎차 같은 것들이 떠오르지만, 스님과 함께 마신 차는 얼그레이였다. 얼그레이를 동양적 다기에 우려 마시니 왠지 더 중후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언제나 내가 고민이다. 스님은 '나'에 대해 몇가지 조언을 해주셨고, 그 말들은 아직까지도 뜨뜻하게 남아있다.
'나'는 몸과 마음의 합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몸과 마음, 그리고 그 둘을 움직이는 '나'가 있는 겁니다.
한 발짝 떨어져, 마음과 몸을 타자화시켜 보세요.
내가 나의 몸과 나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요.
몸과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도록 수행을 하는 거예요.
방 안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난날의 내 선택들을 되짚어 본 적이 있다.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달라졌을까, 하는 딱히 도움될 것 없는 돌아봄이었다.
과거의 일들을 돌아보고 난 후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림을 그려보았다.
그러나 항상 거기까지였다. 생각과 계획은 있었지만 좀처럼 몸을 움직일 줄 몰랐다. 그렇게 정체되고 앞뒤로 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날들 사이에 낀 채 꾸역꾸역 살아지고 있었다.
다른 바깥 요인들에 매몰되지 않고 생산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말이 이것이었을지도 몰랐다. 나는 나의 마음도 아니고 나의 몸도 아니고, 그 둘이 합쳐진 존재라는 것.
내가 원하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나'이다. 마음도 내가 움직일 수 있어야 하고, 몸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무언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매일의 작은 목표들을 설정하고, 그것들을 지켜나가면서 성공하는 습관이 배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일적인 목표, 자기계발의 목표 역시 기간을 설정하고(단기간) 끝까지 해냄으로써 성공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포인트는 선택과 집중, 계획과 달성이에요."
새해가 되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면 다이어리 첫 장에 늘 버킷리스트나 꼭 해야 할 일 10가지 같은 것을 적곤 했다. 연말에 돌아보면 이런 목표도 세웠었나 싶을 정도로 다시 돌아보지도 않은 목록이었다. 너무 거창해서 어디부터 시작할지 엄두도 나지 않을 목표들이었다.
목표달성의 경험을 언제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충동적이고 즉흥적으로 지내온 날들이었다. 내 직관을 너무 믿어온 탓이다. 얕게 깔린 지식과 경험 위에 세워진 내 직관이 단단할 리가 없건만.
몸은 본디 편한 것, 게으른 것을 추구한다. 이토록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몸을 끌고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방법은 운동이다. 이것 역시 단기적 목표와 성취로 점차적으로 훈련시킬 것. 아직은 몸을 끌고 다니는 정도이지만 이렇게 훈련시킴으로써 몸을 '타고 다닐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일기를 씀으로써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일기를 쓸 때는 감정이 아닌 객관적 일들을 서술하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차분히 되돌아보도록 한다. 흙탕물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정리함으로써 나를 괴롭게 하는 잡생각들을 가라앉히는 것이다. 일기를 쓸 때엔 남을 의식하지 않아야 한다. 누구도 보지 않는 글이라는 생각으로 써야 한다.
무엇보다도 환경을 바꾸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를 바꾸는 것,
내 마음가짐과 관점을 바꾸는 것이 중요해요.
짧은 며칠을 위해 일상을 ‘버티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여행'하는 마음으로 사는 겁니다.
일상을 여행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매일이 지루할 때마다 이 이야기를 상기시키고 노력해본다. 일상과 권태는 동격의 단어이다. 적어도 내게는 여전히 그렇다. 여행의 순간을 소중히 하듯, 일상의 순간들도 아끼다 보면 더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완만한 곡선 바깥에 있을 비일상의 세계가 그립다. 가보지 못한 세계가 그립고, 겪어보지 못한 시간들이 그립다. 내 가여운 일상에 언젠가는 빛이 들기를 바란다. 어쩌면 빛은 들어와 있지만 애써 외면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