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학교에서 하루에 두 번, 교사 공부모임을 했습니다.

- 퇴계 이황, 사토 마나부, 동료 교사와 만나다

by 글쓰는 민수샘

2020년 10월 29일, 학교에서 동료 선생님들과 두 번의 공부모임을 했습니다.


일과 중에는 국어과 선생님들과 전문적 학습공동체 모임을 했지요. 목요일 4교시 수업을 모두 비우고 정기적으로 만나서 배움을 이어가고 있는데, 아홉 분의 선생님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주제로 모임을 주최해서 재미있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수업 때 활용할 도구나 프로그램을 실습했고, 타로를 배웠고, 교정에서 고독연습을 하기도 했답니다. 먹거리와 선물도 잔뜩 준비해오셔서 눈과 입과 코도 즐거운 국어과 모임입니다.


29일에는 가장 선배이신 선생님께서 주최한 독서토론을 했는데, 정말 정말 좋았어요. 특히 책의 내용 중에서, 퇴계 이황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기 나흘 전에 제자들을 모아 놓고 유언처럼 하신 말씀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평소 그릇된 식견으로 제군들과 강론을 하였는데 이 또한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라는 말씀 속에는 어떤 뜻이 담겨있었을까요?


자신이 옳다고 믿고 가르쳤던 것들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될 때마다 퇴계는 '이런 내가 아이들을 지도해도 되는가?'하고 스승으로서 한계를 절감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당장 가르치는 일을 그만둘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제자들은 졸지에 배울 곳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스승으로서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가르침을 지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 이를 퇴계는 '이 또한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식견에 대한 오류 가능성을 염려하면서도 가르치는 현장에서 이를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승은 어찌해야 할까요? 우선은 자신이 지금 알고 있는 최선을 찾아 이에 대한 확신을 갖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지금 알고 있는 최선이 곧 참이 아니라 거짓일 수 있다는 오류 가능성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갖고 그 오류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입니다. 스승은 오직 “전에 내가 저렇게 말했는데 그것은 이런 점에서 잘못된 것이니 이렇게 이해하도록 하라"라며 끊임없이 성찰하고 연구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 한재훈, <서당공부, 오래된 인문학의 길>, 182쪽-183쪽


퇴계 선생님의 말씀 속에서 저는 겸허한 자세로 같은 책을 여러 읽고 진리를 탐구하는 진정한 학자, 스승의 모습을 새삼 발견했습니다.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40대에 <논어>를 가르칠 때와 60대에 <논어>를 가르칠 때, 가르치는 방법과 태도는 물론 내용에서도 잘못을 수정할 곳이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예를 들어서 김소월, 한용운, 백석의 시를 읽고 가르칠 때, 예전에 가르쳤던 자료나 기억을 우선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대신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여러 번 다시 읽고, 아이들이 좀 더 나은 방법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수업연구를 게을리하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부족한 점이 있으면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고백하면 되겠지요. 너희들이 대신 채워주면 좋겠다라고요...


%EC%82%AC%EB%B3%B8_-20201029_1317231.jpg?type=w1


29일 저녁에서는 학교의 교사 수업동아리 두 번째 모임을 했습니다. 사토 마나부 교수님의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를 읽고 패들렛을 이용해서 배우고 느낀 점을 나누었지요.


지금 기분을 다섯 글자로 표현하기, 책의 첫인상 나누기, 저자의 정보 찾아서 공유하기, 인상 깊은 구절과 이유 나누기, 수업 고민 토의하기 등으로 미리 게시판을 만들어놓고 선생님들이 오셔서 휴대폰으로 입력한 후 돌아가면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역시 전통에 따라 피자를 포장해와서 먼저 먹고 수다를 떨었지요.)


'배울 학(學)의 의미를 처음 알았다, 대박~'이라는 유쾌한 소감부터 '과연 나는 안심하고 몸을 맡길 수 있는 차분한 교실을 만들고 있을까'라는 성찰과, '이런 책을 읽으면 이상향과 현실 사이에서 어느 지점에 있는지. 어디에 있을지 고민돼요'라는 솔직한 고민도 모두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모임을 통해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성장하는 느낌'을 공유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퇴계 선생님께서도 깨어있는 동안'3분의 1은 공부에, 3분의 1은 노동에, 마지막 3분의 1은 교류'에 시간을 쓰셨다고 합니다. 대학자도 그러하셨는데, 가끔은 부끄러워서 거울 속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저 같은 평범한 교사는 이런 공부모임이 큰 자극이 됩니다. 그래야 책을 읽고, 새로운 공간에 가고, 대화를 통해 자신을 돌아봅니다.


 2020년 10월 29일 학교에서 퇴계 이황, 사토 마나부, 그리고 동료 선생님들을 만났습니다. 매일 이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가능하면 학교에 있는 동안 30분이라도 책을 읽고, 30분은 의자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이고, 30분은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워보고 싶어졌습니다. 선생님들도 계획을 세워보시면 어떨까요? ^^


%EC%BA%A1%EC%B2%98_%EB%8F%85%EC%84%9C%ED%86%A0%EB%A1%A0.JPG?type=w1
20201029_180701.jpg?type=w1




keyword
작가의 이전글쌍방향 수업은 교사-학생보다, 학생-학생의 연결짓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