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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Apr 29. 2024

'배움의 공동체'는 목적지이자 정류장인 걸...

  무인도에서 화산이 폭발하고 강도 9.0의 지진이 나도, 자연재해가 아니라 자연 현상이라고 한다. 거대한 자연의 꿈틀거림도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단순한 현상인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도 무인도에서 홀로 살아갈 때 무수한 일들을 겪었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지 않았다면 역시 단순한 자연 현상처럼 의미 없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배움의공동체연구회'라는 교사 모임에 10년 넘게 참여하고 있는 것도 학교에서 겪은 크고 작은 사건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 싶어서이다. 수업이 잘 안될 때, 나는 무인도에 혼자 버려진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기분이 되곤 했다. 그런 내가 발견한 또 다른 섬이 바로 '배움의공동체연구회'였다. 다른 교실, 다른 섬에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았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자신이 겪은 일들을 털어놓으니 우리는 함께 재해를 극복하는 소방대원이 된 것처럼 씩씩해지고 용감해졌다.


  4월 25일 저녁에 있었던 용인 배움의공동체연구회 첫 모임도 그런 자리였다. 3월 말에 수원연구회와 합동 연수를 한 후, 처음 하는 자체 모임이라 올해 회원들이 서로를 알아가면서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위주로 진행했다.

  첫 시간에는 간단한 자기소개와 모둠별로 서로를 알아가는 주사위 게임을 20분 정도 했고, 이어서 미리 전해드린 <이번 생은 교사로 행복하게>로 책 대화 시간을 가졌다. 돌아가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낭독하고 이유를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학교생활의 즐거움과 어려움을 나눌 수 있었다. 저자와의 만남 시간은 아니었지만, 올해 고3 교실에서 도전하고 있는 참여와 소통이 있는 수업 사례에 관해서도 말씀드릴 수 있었다. (모임 분위기는 선생님들의 표정만큼 진지하고 다채로운 '책상 샷'으로 대신 전한다.^^)




  두 번째 시간은 50분 수업처럼 진행했다. 배움의공동체 수업 디자인을 응용해서 '홉-스텝-점프' 3단계로 구성했는데, 도입 단계인 홉은 다큐멘터리 '아이들이 말하는 교실에서 잠자는 이유' 앞부분을 6분 정도 보고 소감을 나눴다.


https://youtu.be/qBv9iKR5oHc?si=6cI94sdX211rp7jz


  전개 단계인 스텝은 배움의공동체 수업 디자인의 원리인 '활동적, 협력적, 표현적 배움'에 관해서 정리해 놓은 글을 읽고 토의하는 시간이었다. '자신의 수업에서 적용하고 싶은 내용이 있는가? 적용할 때 예상되는 어려운 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하고 싶은가?'를 주제로 25분 정도 대화를 나눴다.

  배움의공동체연구회 참여 경험, 교육 경력, 교과 등을 고려해서 골고루 4명씩 모둠을 편성해서 그런지 1~2년 차 새내기 교사와 20년이 넘은 선배 교사가 어깨를 맞대고 평등하게 배움을 나눠갖는 모습이었다. 나도 경력 많은 수학 선생님, 새내기 지리, 국어과 선생님과 한 모둠이 되어 모둠활동의 필요성, 운영 방법,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교사의 철학 등에 관해 수다를 떨었다. 토의 후에는 모둠별로 한 두 명씩 '우리 모둠'이 아니라, '나의 배움'을 주어로 발표하면서 의미를 공유했다.




  마지막 점프 단계는 표현적 배움이 있는 시간으로 기획했다. <용기성장카드>를 모둠별로 한 세트를 나눠드리고, 한 장씩 카드를 선택해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 모임을 통해 '나는 이런 수업을 하고 싶다. 이런 교사가 되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카드를 선택하고, 선택한 이유를 전체에게 소개했다. 소소한 써프라이즈로, "선생님들이 고른 카드는 반납하지 않고 선물로 드립니다. 가져가셔서 교무실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자주 쳐다보세요."라고 했더니 역시나 좋아하셨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이며 모임을 마쳤다. "오늘 모임이 끝나면 수업 고민이 더 많아지실 것 같아요. 오늘 이 자리가 쉬운 해답을 찾는 시간이 아니라 짧게는 1년, 길게는 교직 생활 동안 안고 갈 질문을 얻는 시간이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또 오늘은 1년 모임의 홉 단계인 주제를 만나는 시간이니까 앞으로 함께 걷고 점프하면 좋겠어요. 5월에는 수업자를 초대해서 수업임상연구회를 하고, 6월에는 다른 글을 읽고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배움의공동체는 최종 목적지도 되고, 거쳐가는 정류장도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만든 모습처럼요."







  그렇다면 내가 고른 카드는 무엇일까? 퇴근 후 집으로 향하지 않고, 피곤한 몸과 마음을 이끌고 배움의 자리에 찾아오는 선생님들을 믿고 준비하는 '용기성장카드' 전체이다. 그래서 4월 모임을 마치니, 나의 용기가 거리에 서있는 이팝나무꽃들처럼 활짝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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