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유튜브에서 뉴스를 보다가,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의 채널을 구독하게 되었다. 오늘, 같은 채널에 있는 故정은임 아나운서 20주기 추모 영상이 알고리즘으로 올라와서 무심코 눌렀다가 추모 공개방송까지 보게 되었고, 그녀가 진행했던 'FM 영화음악'까지 듣는 중이다.
이렇게 2024년 광복절 하루를 故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추억담을 들으며 지내게 된 것은 MBC 노조에서 올린 영상의 오프닝 영상 때문이었다. 1994년 여름 지하철 노조 파업이 한창이던 어느 날, 정은임 아나운서는 이렇게 방송을 시작했다.
오늘 아침 아버지께서 식사를 하시다가 지하철 파업 뉴스를 보시고선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저런 녀석들은 다 잡아넣어야 돼.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저기 끼어든 대학생들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바로 그 집회에 아들인 저도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끼어 있었습니다. 그것도 사수대로, 각목을 들고.
안녕하세요. FM 영화 음악의 정은임입니다. 애청자 한 분이 하이텔로 올려주신 글인데요. 그 글을 읽고 새삼스럽게 슬퍼졌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으니까요. 게다가 복귀 순서에 따라서 승진, 배치, 표창을 달리하겠다는 그 지하철 공사의 발표를 듣고는 갑자기 군대 간 선배가 얘기해준 선착순이 떠오르더라고요. 저기 보이는 축구 골대 돌아서 선착순 열 명, 저기 서 있는 느티나무까지 선착순 스무 명, 이렇게 서로를 적으로 미워하게 만드는 선착순. 여러분은 슬퍼지지 않습니까?
정은임 아나운서는 1993년에서 1995년, 그리고 2003년에서 2004년까지 새벽 1시에 시작하는 <FM 영화음악>을 진행했다. 그러다 2004년 7월 22일, 출근길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나이는 35세, 남편과 아들 하나가 있었다.
유튜브란 녀석은 정말 애증이 왔다 갔다 하는 존재 같다. 핸드폰 중독과 시간 낭비를 걱정하다가도, 가끔씩 우연히 올라온 영상을 보며 추억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잊고 있던 소중한 가치를 되새겨 볼 기회를 갖게도 한다.
30년 만에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94년과 95년의 겨울밤으로 날아갔다.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나는 복학을 바로 하지 않았고 여러 가지 고민으로 새벽까지 자주 깨어있었다. 대학교 앞 서점에서 알바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심야버스에서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영화 음악을 듣던 기억도 떠올랐다. 시대의 혼란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 술기운으로 출렁이던 내게 잔잔한 위로의 말을 건네주던 시간이었다.
정은임 아나운서처럼 많은 사람이 자신의 말과 글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존재가 못 되더라도 내게 남아 있는 시간 동안 더 진실한 목소리를 내고, 더 가치 있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도 성적, 학벌, 연봉, 권력으로 사람들에게 선착순을 강요하는 2024년을 사는 우리에게 故정은임 아나운서도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까? "여러분은 슬퍼지지 않습니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