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수능 다음날, 운 없는 고3 아이들이 학교에 나왔다. 올해 국군의 날이 갑자기 공휴일이 된 탓이다. 오전에만 3개 교실에 들어갔다. 대부분의 시간을 교탁 옆 책상에 앉아 어색하게 책을 읽었던 나의 모습은 같았지만, 문을 열자 확 끼쳐오는 공기는 교실마다 달랐다.
첫 반 아이들에게 "어제 수능 무사히 마쳤니?" 하고 물어보자 여기저기서 한탄과 냉소, 안심과 만족의 언어가 튀어나왔다. "그렇구나, 어려웠어, 어쩌니." 혹은 "최저 맞췄다고, 잘됐네, 애썼다."와 같은 말로 일대다의 대화를 5분 정도 한 것 같다. 내가 책을 보는 척하는 순간에도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떠는 아이들이 많았다.
예상치 못한 뜨거운 반응에 고무된 나는 두 번째 반에 들어가서도 같은 질문을 옹골차게 던졌으나, 한 무리의 여학생들만 나에게 고개를 돌릴 뿐 다른 아이들은 각자의 화면에 충실했다. 그 무리에서도 한 명만 "무사히 못 마쳤어요, 선생님..." 하고 한숨을 쉬었다. 당황한 나는 "그래도 밀려 쓰지 않고, 갑자기 아프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야.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하면서 궁색한 대화를 마쳤다. 그리고 교실엔 몇몇 아이들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이따금 들렸다.
조금 낙담한 채로 세 번째 반에 들어간 나는 순간 멈칫했다. 어제 본 수능 고사실 같은 엄숙한 분위기로 아이들이 예쁘게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가 착석했다. 이 반 아이들은 수능 전이나 후나 한결같이 조용하고, 젠틀했다. 그렇게 숨 막힌 50분이 가고 4교시 종료령이 울렸다. 하나둘씩 자리에서 우아하게 일어나 급식실을 향해 나가려는 아이들에게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너희 반은 수능 전이나 수능 후나 어찌 이리 조용하냐? 수능 볼 때까지 고생했으니까 다음 시간에는 좀 떠들고 웃고 해도 돼." 아이들은 수줍게 웃으며 입 모양으로만 '네~' 하고 밖으로 나갔다.
아래는 수능 보기 전에 고3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받은 급식이다. 어떤 아이들에겐 10대의 마지막 급식이 될 수도 있겠다. 수능 등급에 따라 다른 급식을 먹지 않는 것이 당연하듯, 수능이 끝난 아이들이 모두 목소리를 키우고 더 활짝 웃고 더 용감하게 불평하면 좋겠다. '수능을 봤든 안 봤든, 성적이 어떻게 나오든 너희들은 모두 그럴 자격이 충분한 소중한 존재, 앞날이 새털구름처럼 많은 청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