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위 아 엑스’ 스토리
지난 강원도 산불재해민들에게 낯선 이름의 일본인이 1억원을 쾌척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요시키’라는 이름은 80년대 팝과 록의 시대를 보낸 4050세대에게는 신과 같았던 존재였다. X-Japan의 리더 요시키와 밴드 X-Japan의 한편의 드라마보다 더 감동적인 다큐멘터리를 소개한다.
‘위 아 엑스’는 엑스 재팬의 드러머이자 리더인 '요시키'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성장과정을 설명하며 그가 만드는 음악에 담긴 삶의 의미를 추적하는 한편, 멤버들의 관계부터 재결성의 이유, 미국 진출 과정에서의 갈등을 말하고 있다. 시종일관 흘러나오는 엑스 재팬의 명곡들이 가슴이 찌릿한 감동을 안겨주고, 요시키가 진실로 털어놓는 멤버들 간의 불화와 탈퇴, 그리고 죽음과 재결합하기까지 그들의 밝혀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다큐멘터리적인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다.
엑스 재팬(X Japan)의 시작
엑스 재팬의 시작은 드러머 요시키(하야시 요시키, 林 佳樹)와 보컬 토시(데야마 토시미츠, 出山利三)와의 인연에서 시작되었다. 유치원 친구였던 두 사람은 초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록 밴드를 구상하고 중학생 밴드 ‘다이너마이트(Dynamite)’와 고등학교 밴드 ‘노이즈(Noise)’를 거쳐, 1982년 밴드 ‘X’를 결성했다. 밴드 ‘X’는 도쿄의 라이브 하우스에서 공연을 하면서 1985년 6월 첫 번째 싱글 [I'LL KILL YOU]를 발매하였다. 또그 해 11월에 컴필레이션 앨범인 [Heavy Metal Force 3]에 참여하면서 밴드의 인지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요시키
밴드 ‘X’는 하드 록과 파워 메탈, 스피드 메탈 그리고 프로그레시브 메탈에 동양의 서정적 요소가 가미된 발라드 형식의 록 음악을 추구했다. 외모적으로는 글램 록과 비주얼 록 그리고 일본의 전통 가부키에서 가져 온 판타지한 느낌의 ‘비주얼계(Visual Kei, ビジュアル系)’라는 그들만의 스타일을 완성시켰다.
베이스에 타이지(Taiji), 리드 기타 히데(Hide) 그리고 리듬 기타에 파타(Pata)의 황금 라인업으로 이루어진 밴드 ‘X’(エックス, Ekkusu)의 첫 번째 데뷔 앨범 [Vanishing Vision]은 1988년 요시키의 엑스타시 레코드(Extaxy Records)에서 발매되었다. [Vanishing Vision]은 일 주 일만에 선판매한 만장이 모두매진되는 커다란 인기를 얻었다.
1989년 Sony 레코드에서 발매 된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자 첫 메이저 데뷔 앨범 [Blue Blood]는 70만장이 판매되었고, 오리콘 차트 6위에 올랐으며 무려 100주 동안 차트에 머물러 있었다. ‘Rolling Stone Japan’ 잡지는 [Blue Blood] 앨범을 ‘일본의 위대한 100대 앨범’에 선정했다. 대망의 성공을 거둔 밴드 ‘X’는 1990년 ‘Japan Gold Disc Awards’에서 ‘올해의 밴드’로 선정되었다.
1991년 발매 된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 [Jealousy]는 백 만 장이 판매되는 기염을 토하며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랐다. 하지만 [Jealousy]는 ‘X’라는 이름으로 발매한 마지막 앨범이자, 베이스 타이지가 함께 활동한 마지막 앨범이 되었다. 늘 요시키와 견해차이를 보이던 타이지가 밴드를 그만 두었기 때문이다. 그가 탈퇴한 자리는 히스(Heath)가 채웠다.
타이지
밴드 X Japan의 전성기와 해체
1992년 미국의 아틀란틱 레코드와 계약을 하게 된 밴드 ‘X’는 미국의 펑크 그룹 ‘X’와 혼동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밴드명을 ‘X Japan’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29분짜리 대곡으로 전곡 영문 녹음 된 오케스트라 앨범 [Art Of Life](1993)를 발표했다. 요시키가 곡을 쓰고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Art Of Life]는 60만장 이상 판매되었으며 오리콘 차트 정상을 차지한 첫 번째 ‘엑스 재팬(X Japan)’의 앨범이 되었다.
새 앨범 [Dahlia]의 준비는 1993년 헐리웃에 있던 요시키의 ‘One On One’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시작되었다. 그동안 화려한 비주얼을 자랑했던 앨범 커버와 달리 흑백의 소녀를 찍은 평범한 앨범 자켓과 비주얼계(Visual kei)의 현란한 의상과 화장을 벗어버리고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무대에 등장한 엑스 제팬은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요시키의 목디스크로 인하여 투어는 계속되지 못했고, 1996년 도쿄 돔에서 이루어진 공연을 마지막으로 엑스 재팬의 활동은 중단되었다.
1997년 9월 22일 엑스제팬의 보컬 토시는 밴드를 탈퇴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어서 팬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같은 해 12월 31일 엑스 재팬은 도쿄 돔에서 ‘New Year's Eve concerts’를 마지막으로 10년 동안의 불꽃같았던 밴드 활동을 마무리했다.
토시
엑스 재팬을 따라다니는 불행의 그림자
히데(마츠모토 히데토. 松本秀人. 1964년 12월 13일 ~ 1998년 5월 2일)는 중학생 때 처음 록 밴드 키스(KISS)의 앨범을 듣고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히데는 방에 로커들이 많이 입던 슬림한 가죽바지를 걸어두고 꼭 그 바지를 입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며 지독한 다이어트를 했다고한다. 미용실을 하고 있던 할머니로부터의 영향을 받은 미적감각이 그의 패션창조의 기반이 되었으며, 이는 밴드 엑스의 외향에도 영향을 미쳐 비주얼계의 시초가 되었다. 히데는 요시키에게 기타리스트로서 가입해 줄 것을 권유받고 1987년부터 1997년까지 밴드 ‘X’의 리드 기타, 작곡, 편곡, 백킹 보컬을 맡았다. 한편 솔로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기도 했다.
1998년 5월 2일 오전 8시 52분 히데는 자신의 집에서 향년 35세로 사망했다. 여러가지 논란을 일으켰던 그의 최종 사인은 ‘기도폐쇄로 인한 질식사’로 내려졌다. 만취 상태에서 고온의 목욕을 하다가 저혈압으로 인해 목 내부의 기도가 폐쇄되어 저산소증이 온 히데는 스스로 응급처치를 위하여 타월을 묶은 것으로 자살이 아닌 사고사였다라고 결론지어진 것이었다.
히데
엑스 재팬의 창단멤버였으며, 많은 골수팬들을 거느리고 있던 타이지 역시 불행한 죽음을 맞았다. 1966년 일본 지바현에서 태어난 사와다 타이지(沢田泰司)는 1982년 첫 번째 그룹 트래시(Trash)를 결성했다. 이후 디멘시아(Dementia), 프라울러(Prowler) 등의 그룹에서 활동했고 1986년 ‘X’에 가입했다. 밴드 ‘X’에서 활동하며 주옥같은 노래들을 히트시킨 타이지는 1992년 초 ‘X’에서 탈퇴하고 ‘라우드니스(Loudness)’에 가입했다.
다큐멘터리 촬영 당시 요시키는 타이지에 관하여 “그는 우리 밴드의 룰을 어겼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기 전에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라고 수수께끼같은 언급을 하여 1992년 타이지의 갑작스러운 밴드 탈퇴에 대한 의문을 오히려 증폭시켰다. 1993년 말 타이지는 라우드니스에서도 탈퇴하고 1994년 그룹 ‘디티알(D.T.R.)’을 결성했다. 2011년 7월 11일 타이지는 일본에서 사이판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소란을 피우다 체포되어, 사이판의 한 유치장에서 갇힌채 자살을 시도했다. 결국 그는 7월 17일에 사망했다.
엑스 재팬이 활동을 중단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 보컬 토시는 1997년 결혼한 전부인의 사주로 인해 2009년까지 사이비 종교에 세뇌되어 전 재산을 종교단체에 쏟아 부었다. 2010년 그는 사이비 종교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최후의 방법으로 미국에 있는 요시키를 찾아갔다. 그리고 2014년에 사이비 종교에 빠져 엑스 재팬을 탈퇴했던 자신의 사연을 담은 자서전 [세뇌 - 지옥의 12년으로부터 생환]을 2발간했다. 그는 그동안 빼앗긴 것은 돌아오지 않고, 아픔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후회하는 마음을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밝혔다.
엑스 재팬의 화려한 부활, 우리가 바로 엑스다!
엑스 재팬은 2007년 영화 ‘쏘우4’의 주제가 ‘I.V’를 통해 재결성을 알리게 되었다. 2008년 3월 28일부터 30일까지 도쿄 돔에서 열린 엑스 재팬의 콘서트에는 사망한 히데의 빈자리 대신 LUNA SEA의 기타리스트 스기조가 대신 연주를 하였다. 하지만 리더 요시키의 지병인 경추 척추간반 헤르니아가 악화되어 손떨림과 마비로 인해 엑스 재팬의 활동은 또다시 중단되었다.
엑스 재팬은 2010년 미국의 룰라팔루자 페스티발을 시작으로 2011년 10월 28일 서울 잠실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2011 X JAPAN Live in Seoul을 진행했다. 2014년 6월에는 전 세계 첫 베스트 앨범 [THE WORLD]가 발매되었으며, 10월 11일에는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성공리에 공연을 개최했다. 그리고 2017년 7월 대망의 ‘X Japan World Tour 2017 We Are X’의 공연을 시작했다.
엑스 재팬은 리더 요시키의 끝없는 투지와 불굴의 정신으로 마치 절대 가라앉지 않는 전함처럼 세월이 지날수록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화려한 정상의 시간들과 그에 반대되는 절망스러운 날들을 겪어 나왔지만, 팬들이 지켜보는 엑스 재팬은 언제나 당당하게 최고의 자리에 올라있다. 변하지 않는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우리는 이렇게 외친다. 위 아 엑스!
그렇다, 그들이 바로 위대한 엑스 재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