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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요나 Nov 09. 2019

관상(2013)

역모의 추억

‘세조반정' 또는 '세조찬위'라고도 부르는 '계유정난'은, 조선의 두번째 반정으로 단종3년(1455년)에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빼앗은 일이다.
이 난으로 우의정 '김종서', 영의정 '황보인', 이조판서 '조극관', '찬성', '이양'등 단종을 보위하던 중신들이 살해당했으며, 수양대군의 동생 '안평대군'도 김종서등과 통했다는 죄목으로 강화도에 귀양 보내진 후 사사당했다.

‘계유정난'의 가장 큰 공로자는 '한명회'로, 그는 개성의 경덕궁직을 지내던 한미한 관원이었으나, 수양대군이 전국에서 몰래 책략가와 한량들을 모집한다는 소문을 듣고 친구 권람을 통해 수양대군에게 인정받아 결국 대사를 도모하고 성공시킨 일등 공신이 되었다.
'한명회'는 네번의 공신에 책록되고, 우의정을 비롯해 영의정까지 최고의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세조와는 사돈간이면서 예종과 성종의 장인이었다.
네 명의 왕을 모시며 시대를 호령했던 그가 말년에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정자가 바로 지금의 '압구정'이다.
다른 기록물들처럼 영화 <관상>에서도 '한명회'를 사지와 외모가 온전치 않은 매우 불우한 인물로 기록하고 있지만, 그는 칠삭동이로 태어났으나 장성하면서 체구가 보통 사람의 갑절이나 되고 지모가 남달리 뛰어 났으며, 호랑이가 그를 호위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비범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수양대군'은 어린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고 수많은 충신들을 죽인 '피의 군주'이면서 부친인 '세종'의 위업을 계승해 나라를 일으키고 불교를 융성시킨 '치적군주'라는 양면성을 가진 인물이었는데, "대장부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번 죽는다면 사직에서 죽는 것이다. 만류하는 자가 있다면 먼저 그부터 목을 베겠다"라고 말한 잔인하면서도 용맹한 대장부였다고 한다.
만약 주변에 모여든 책사나 무사들의 조언 따위로만 그가 왕위에 올랐다면, 그 역시 '단종복위'같은 재역모로 왕권을 채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 이제 마지막 실존 인물 '김종서'의 이야기를 해 보자.
극 중 '백윤식'씨가 맡은 '김종서'는 고려 시대의 충청도 공주에서 태어나, '함길도병마도절제사', 충청.전라.경상 3도의 도순찰사를 맡고 조선 육군을 지휘했던 문인 출신의 명장이다.
그는 6진 개척을 통해, 확실하지 않았던 조선의 북방국경을 현재의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결정하는 공을 세웠다.
세종은 김종서를 특히 총애했고 아들 문종 역시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승하하면서 가장 믿음직한 김종서에게 어린 단종을 잘 보필 해 달라는 유고를 남긴다.
그는 '계유정난'의 첫번째 희생자로 수양대군의 부하의 철퇴에 맞아 죽은 후, 목이 잘려 저자거리에 걸리는 효시를 당하게 되나, 그의 충정이 인정받아 죽은지 293년 뒤 '영조'때 '충익'이라는 시호가 내려지고 복구되었다.

극중 악을 상징하는 검은 수양대군에 반대로 선을 상징하는 흰 도포차림의 김종서는 그의 별명인 '대호'라기 보다는 온화하면서 엄격한 문인의 이미지였다.
그렇다면 감독은 이 길고도 참혹한 역사의 대서사시에서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관상'이란, 상을 보아 운명재수를 판단하여 미래에 닥쳐 올 흉사를 예방하고 복을 부르려는 점법의 하나로, 크게 면상. 골상. 수상. 미상. 비상. 구상. 이상. 흉상. 족상으로 나뉘어 진다.
오늘날 통용되는 상법은 중국 '노나라'의 '내사'였던 '숙복'이 창시자로 여겨지며, 남북조시대에 '달마'가 쓴 <달마상법>과 '마의 도사'가 창안한 <마의상법>이 있다.
허구의 인물이지만 영화의 구심점인 관상쟁이 '김내경(송강호)'는 아들(이종석)과 처남(조정석)과 외딴 바닷가에서 동물털로 붓을 만들어 연명하는 몰락한 선비가문의 후손이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후덕한 몸매의 기생 '연홍'(김혜수)의 등장으로 그의 지리멸렬하지만 평온한 삶은 피바람 이는 시대의 혼란으로 빠져들게 된다.
내경의 아들은 과거에 급제하겠다며 혼자 길을 떠나고, 내경과 처남'팽헌'은 기생 '연홍'을 찾아가 그녀의 기방에서 사람들의 '관상'을 봐주며 의탁하는 처지가 되는데, 그의 신묘한 관상술은 결국 궐안까지 소문이 나서, 병상에 있던 문종은 자신의 뒤를 이을 어린 단종을 위해, 비밀리에 '내경'에게 역모를 꾸밀 관상을 가진 이를 미리 찾아내 달라는 부탁을 한다.
충직한 우의정 '김종서'대감은 올바른 인재 등용에 '내경'의 관상술을 이용하지만, 관상이 좋다하여 사람의 심상도 같지는 않은 법, 그의 인재등용술은 갖가지 폐단을 낳는다.
결국 과거에 급제하여 말단 관직에 있던 '내경'의 아들 '진형'은 이들의 갈등에 가장 큰 희생물이 되고, 이리처럼 음흉하며 굶주린 늑대처럼 잔인무도한 '수양대군'의 거사를 막지 못한 채 대호 '김종서'도 철퇴를 맞고 쓰러진다.


‘내경'은 역사의 가장 얹저리에 있었던 타자의 자리에서 사람과 시간을 꿰뚫어보는 신묘한 힘으로 화자의 중심에 서게 되지만, 결국 자신에게 닥쳐 올 비극은 피하지 못한 채 다시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지는 비운의 인물이다.
역사상 가장 비참하고 어두운 과거에 허구를 적당히 섞어 '관상'이라는 케케묵은 점술을 스마트한 이 시대에 다시금 흥미로운 관심거리로 떠올리기에 '송강호'만큼 적합한 배우는 없었으리라 본다.
게으르고 심각하며 가볍고도 비통한 그의 연기는, 시대극이라는 큰 스케일에 못미치는 편집상의 허술함도 감싸고 갈 만큼 능수능란했다.
함께 연기한 처남 '팽헌'역의 '조정석'의 분위기 메이커를 약간 오버한 듯한 연기를 그가 아니면 누가 받쳐줄 수 있었을까.
예쁘게 보이는 것에만 몰두하는 김혜수의 타고 난 여배우 본능은 그렇다쳐도, '수양대군'과는 심히 어울리지 않는 이정재의 사람 좋은 미소마저 '저것이 바로 역모의 얼굴이야'라고 믿게끔 만든 것에는, 이 시대의 '삐에로', 배우 '송강호'가 침을 흘리며 오열하는 아버지의 얼굴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관상>은 운명을 막으려 한 사람들과 그 운명을 거스르려 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안에 살고 있지만 한치앞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미래란 늘 궁금하고 알고 싶은 욕망에 빠지게 하는 판도라의 상자같은 것이다.
어리석은 욕망의 결과로 눈이 멀고 목숨을 잃어도 인간들은 이 헛됨을 반복하고 또 반복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미래에 남게 될 것이다.

'한재림'감독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 우수작 <연애의 목적>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감독답게 탄탄한 각본으로 무거운 시대의 역사를 '관상'이라는 주제로 흥미롭게 풀어갔다.
그로서는 처음 맡아본 시대극이라는 어려움을 재치있는 대사와 다소 늘어지지만 나름 감각적인 화면 전환으로 비교적 잘 완성시켰다고 말하고 싶다.
<연애의 목적>, <우아한 세계>, <관상>등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그의 관심과 작가적 역량이 다음번엔 어떠한 작품으로 탄생하게 될지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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