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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by 박요나

1988년은 서울 올림픽 개최와 더불어 각종 해외문화 개방과 함께 쏟아져 들어온 사물과 이념에 한 발 더해, 술과 쾌락만을 좇는 부유한 유학파 백수들을 일컫는 제1세대 오렌지족이 탄생한 해이기도 했다.

유명한 클럽들을 시작점으로 오렌지족들은 압구정동으로 강남으로 몰려들었다.

동틀 무렵이면 호텔 주변을 가득 메우던 각종 외제차와 스포츠카들의 물결은 지금의 레이스를 비롯한 강남클럽 불패 신화의 시조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이태원이 가세를 해서, 유명한 댄스클럽이었던 ‘문나이트’는 현진영과 구준엽 강원래를 비롯한 내노라하는 춤꾼들의 연습장으로 더 유명세를 탔다.


모든 것이 호황이었다. 방배동의 카페 골목과 신사동의 해장골목은 밤을 낮처럼 밝히고 성업을 했다. 먹고 자고 싸는 것까지 안 되는 것이 없었다.

영화와 음악계도 장르의 구분 없이 발매했다하면 대박을 쳤다. 에로와 작가주의와 발라드와 트로트가 공존했던 시대였다.

국민들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허용해주었던 자비로운 사회 분위기를 회상하는 많은 사람들이 8090년대를 순수의 시대라고 말하지만, 정권유지를 위해서라면 대량학살도 서슴지 않았던 군사독재 정부는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기 위해 시도 때도 없는 스포츠 중계와 마약과 매춘을 암암리에 권장했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아이들이 낮에는 압구정동 카페와 밤이면 강남의 클럽을 전전하며 술과 약물에 절어서 살았다. 쉽게 만나서 쉽게 섹스하는 것처럼 그들은 쉽게 자살을 했다. 넘쳐나는 쾌락 끝에 오는 허무함을 견디지 못한 채 천국보다 낯선 어느 곳을 선택했다. 그 누구에게도 내일은 없었다.

미친 아이들과 어른들의 시대 8090. 그래도 그때가 그립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 것을 보면 지금의 우리들은 도대체 얼마나 엉망진창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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