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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요나 Nov 08. 2018

남자의 자격

공부쯤이야 못해도 괜찮아

2010년 방영한 드라마 ‘추노’에서 발견해낸 놀라운 옛기억은, 손윗사람을 '언니'라고 부르는 호칭이었다. 어릴적 국민학교 교과서에도 남동생이 윗형제를 부를때 언니라고 했었던 어슴한 기억이 있는데, 내 기억엔 누나를 보고도 언니라고 하고 형을 부를때도 언니라고 했던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은 듣고 웃었겠지만, 그때 사내아이들이 계집애같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땐 오히려 종일 뛰고 구르고 산을 타넘고 다니던 '추노'들의 세상이었다.
사내애들은 치고받고 싸우다 어떨땐 박도 터지고, 야구하다 남의 집 유리창도 깨먹고, 담넘어 들어간 축구공을 돌려주지 않는 고바우영감네집 담벼락에 못된 낙서도 하던 그야말로 '자유'의 시대였다.

초등학교때부터 과외도 했지만, 그땐 지금처럼 입시를 위한 피튀기는 경쟁이 아니라, 먹고 살기 힘든시절 엄마아빠 모두 일하러 나가신집 아이들이 동네 대학다니는 형 누나네 방한칸에 옹기종기 모여 숙제도 하고 놀이도 하는 동네 공부방 수준이었다.
학교 숙제같은 건 대부분 전과를 통채로 베껴갔고 수업이 파하고 나면 오로지 해가 지도록 뛰어 놀았다.
고무줄 놀이, 술레잡기, 망까기, 얼음땡, 구슬치기, 딱지치기, 하다 못해 운동장에서 마냥 달리기... 놀거리는 무궁무진했고 아이들은 놀면서 친구가 되고 싸우면서 함께 자랐다.
풍족한 시설과 재료가 없다보니 없는 것에서 다들 머리를 짜내어 뭔가를 만들어냈고 야생의 세계같은 난폭함속에서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규칙과 규율을 배워나갔었다.

얼마전 아는 언니의 아드님께서 유명외고에 합격을 하셨다. 전화상으로도 어찌나 그 기쁨이 전해지는지 언니의 입이 양쪽 오센티쯤 찢어지지 않았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며칠 전 만나 간단한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언니는 참으로 자랑스럽게 자신이 어머니회장을 맡을 것 같다는 얘기와 합격생어머니모임을 가진 자리에서 “이제 우리들은 ‘하이 클래스'(정말 이렇게 말했다.)가 되었으니 공부잘한 아이들에게 감사하고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하이 클래스'? 그게 대체 뭔가. 고작 중삼 아이들이 수십개에 달하는 외고과학고영재고 몇만명중 한명이 되었다고 그들이 하이클래스? 무섭게도 그들은 하이클래스와 노블레스를 동일시 하고 있는 것이었다.


언니는 내게 요즘 엄마들의 자신감은 아이의 성적에서 나온다고 정성어린 충고까지 해주었다. 우리 아들은 자기가 보기에도 아주 영리하니 보통 아이들과 섞어놓지 말고 일찍부터 특별한 유치원을 보내서 영재 내지는 귀족 수업을 받게 하라는 것이었다.
아이가 평범해도 그저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내 목소리를 언니는 단호하게 잘랐다.
능력이 있어야 좋은 사람이 되는거야.


아들을 키우면서 대표적인 웃기는 소리가 있다. 아들 안키워본 엄마가 ‘우리딸은 아들보다 더해요.’하는 것과 ‘우리아들은 외동이지만 절대 유별나게 안 키웠어요. 막 키웠어요.’라는 말이다.
여자와 남자는 생물학적으로 완전히 다른 개체다. 그래서 함께 살아도 죽을때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늘 삐걱거리게 된다.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여자로 살아가는 엄마에게 고추달린 아들이라는 존재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떨어진 부시맨의 콜라병같은 미스터리덩어리이다.
얘는 오줌도 나와 다르게 누고 좋아하는 장난감도 다르고 옷차림 헤어스타일 운동성향까지 정말 같은게 하나도 없다. 얘는 왜 이렇게 힘이 센지(폭력적인지) 모르겠다. 왜 이렇게 산만한지 모르겠다. 왜 이렇게 공부를 안하려는지 모르겠다. 왜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니고 넘어지고 지랄쌩쑈를 하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나같지 않고 내 친구들같지 않은 아들이 걱정되고 낯설어서 자신처럼 만들려고 무의식중에 자꾸 시도를 하게 된다.
얌전히 있어라, 조용히 해라, 돌아다니지 말아라, 만지지 말아라, 집중해라, 공부해라, 씻어라, 작게말해라, 장난치지 말아라, 어지르지 말아라.
남자는, 남자아이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호기심덩어리들이다. 덜렁거리는 고추를 묶어둘 수 없는 것처럼, 결코 남자 아이들을 얌전히 책상앞에 앉아 있는 공부벌레로 만들어선 안된다.


지난 4년동안 세계 부자 1위는 빌 게이츠였다. 그가 전재산의 반을 뚝 떼어 기부를 하고 한창 나이인 50대 초반부터 자선사업가로서의 새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스스로를 '성공한' 사람보다는 '성장하고'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시험하고 새로운 시도를 했으며 어릴때부터 가장 아름다운 성공은 함께 나눔이라는 가장 큰 지혜를 깨달았다.
'남의 나라 얘기잖아아!!'라고 목청을 울릴 사람들도 많겠지만, 씁쓸하면서도 쓸쓸하게 비교되지 않는가.
같은 재벌로서 부의 대물림의 수단으로 갖은 편법과 비리를 동원하고도 보무가 당당한 우리나라 재벌들의 한심한 모습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상류층의 생색내기 허세를 위해 만들어진 단어가 아니다.
내가 가진만큼 반드시 부의 동력이 되어준 사회로 환원한다는 감사와 배려의 마음이다. 쉽게 말해 거지동냥이 아니라, 고마워요, 지금의 날 있게 해줘서.라는 고개숙인 인사라는 말이다.
고추를 동여매고 밤 열두시까지 학원에 앉아 누가 날 넘보지 않을까 일등만이 성공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매달 오백여만원씩 과외비를 쏟아부으며 공부한 아이들이 그 결과로 받게 되는 영재고 입학증 하나로 그들은 이제 '작은 노블레스'가 되는 걸까? 자신들을 노블레스로 분류하는 족속들은 진정한 노블레스의 의미를 알고 있는 걸까?


당신이 생각하는 사람의 가치가 부의 가치와 비례하지 않는다면, 성공이 아니라 성장하는 삶을 살게 해 주고 싶다면, 더 늦기전에 아들의 고추를 풀어줘라.
엄마가 원하는 삶이 아닌, 아들이 원하는 삶을 살게 해줘라. 지금부터라도 엄마, 나 오늘 긴 바지 입어, 반바지 입어?라는 질문이 아들의 입에서 나오지 않게 하라.
내복위에 팬티를 입고 나왔다하더라도 비웃거나 나무라지 말아라. 그 아이는 장차 슈퍼맨이 될 아이니까.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기전까지 밤새 홍대를 싸돌아다니며 춤추고 놀기만 하던 내가 만나게 된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은 좋은말로 하면 신세계, 솔직히 말하자면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몬도카네였다.
자연분만과 모우수유를 주장하고 애를 비위생적인 흙구덩이 놀이터에서 굴리고 교육시설 안보낸 돈으로 여기저기 여행다니고 조기 한글교육이나 영어교육을 반대하는 나는 언제나 철없는 이상주의자로 찍혀 주위 사람들로부터 철 좀 들라는 비난과 걱정을 한몸에 받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말로 막판쐐기를 박는다.
애 학교 가면 후회 할거다.”


혈기왕성한 남자들의 야성의 시대는 가고 어느새 관공서든 쇼핑몰이든 학교든 새침한 여성들로 가득찬 시대가 왔다.
유치원도 초등학교도 중고등학교까지 대부분 여선생님들에게 교육을 받고, 바쁜 아빠대신 늘 엄마의 보살핌을 받는 아들들이 이 시대에 한마리의 시베리안 야생 수컷으로 자라나긴 애당초 힘든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성공의 자격이 일등과 일류라고 해서 남자의 자격도 일등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몸튼튼하고 마음튼튼하면 된다.
스스로를 깊은 눈으로 보살펴라.
성공한 사람과 성공한 인생은 다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은 훌륭한 아버지가 된 사람이란다.
아들아, 멋진 인생을 살아라.
그래서 훗날 멋진 아버지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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