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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중해 홀릭 Mar 11. 2021

안개가 썩어가는 냄새

미세먼지의 경제학


오늘 신사동과 압구정동을 뒤덮은 초밀도 미세먼지의 두터움을 보고 집에 돌아와 황급히 한수산 소설집을 찾아 꺼내든 것은 바로 다음의 문장을 찾기 위함이었다.


"안개가 썩어가는 냄새에 잠을 깼다."


한수산 1978년 중편소설 <안개 시정거리>의 첫 문장이다. 1982년 소설 <선사(先史)의 꿈>에는 다음과 같은 묘사도 나온다.


"매연으로 뒤덮여서 거대한 우산을 펼친 것 같은 하늘이 도시 위에 천막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태양은 그 위에 우산꼭지마냥 떠 있고..."


영화 <블레이드 러더 2049>의 한 장면.

내가 본 오늘 서울 강남의 하늘이 바로 그랬다. 나는 작가 한수산이 천재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묵시록을 남기는 선지자, 예언자다. 


<선사의 꿈>에서 한강 변 아파트,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그 아파트들은 슬럼화로 황폐화된 곳으로 등장한다. 부자들은 조금이라도 맑은 공기와 맑은 하늘을 찾아 벌써 예전에 시골로 들어갔다. 한강은 복개되어 다 닫혀 있어서(예전의 청계천처럼), 다리는 오로지 한강철교만 남았는데, 그것을 남겨놓은 것은 자살 코스프레용으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무엇이든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철망으로 봉쇄한 한강철교를 들어서기 위해 미리 예약하고 올라가서 떨어지겠다고 소리를 질러댄다. 그러면 출동한 경찰들도 그 사람을 말리는 척 쇼를 한다. 물론 이런 '자살 쑈 놀이'를 위해 사용자는 시간당 사용료를 낸다. 

해 뜨는 한강철교. 한수산 소설 <선사의 꿈>에서 한강은 모조리 복개 돼서 다리는 한강철교만 남는다.


이런 내용들이 모두 1980년대에 쓰여진 것이라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소설가 김승옥의 탁월한 중편소설 <60년대식>에는 이런 장면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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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손님이 오면 고체를 내어 대접했다. 가령 떡이라든지, 과자라든지, 고구마라든지, 사과, 곶감.... 그러나 오늘날엔 주로 액체를 내놓는다. 코오피, 홍차, 인삼차, 오렌지 주우스, 코카콜라.... 


이제 손님들이 기체를 들이켜야 할 날도 멀지 않았나보다. 선견지명 있는 식료품 상인이라면 모름지기 아무리 들이마셔도 배부르지 않는, 먹을 수 있는 기체를 발명 생산 판매 보급하는 데 전력을 경주해야 하리라.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그에 비례하여 한 개인의 행동반경이 확대되고, 따라서 단위시간에 만나는 사람의 수효는 과거의 그것과 비교하여 엄청나게 많아진다. 쉽게 말하면 손님 노릇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잦아진다. 따라서 손님 접대용의 기호식품은 먹더라도 결코 배불러지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그래서 떡이 코오피로 바꿔치기 된 게 아니었던가?


식료품 상인들이여, 소비가 미덕이 될 우리의 70년대엔 그대들도 무언가 하나쯤은 자랑스럽게 내놓을 게 있어야 한다. 그것은, 그렇다, 바로  '먹는 가스'를 만드는 일이다. 아무리 들이마셔도 금방 똥구멍으로 새어나가 버리는 가스쯤이라면, 손님들은 얼마든지 자꾸자꾸 마실 것이고 그대들의 돈주머니는 자꾸자꾸 불룩해질 것이다.


한 젊은 남녀가 다방에 나란히 앉아 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다. 레지가 다가온다. "무엇을 드시겠어요?" 레지가 말한다. "코오피 가스 30!" "사내가 말한다. "난, 오렌지 가스 10!" 여자가 말한다. 다방을 나와서 그들은 걷는다. 사내의 엉덩이가 잠깐 움찔하더니 코오피향내 나는 가스를 배출한다. 여자의 엉덩이가 움찔하더니 오렌지향내 나는 가스가 배출된다. 거리는 많은 사람들이 배출한 가스의 향내로 자못 꽃이 피어 만발한 것 같다. 젊은이들의 사랑은 향내 짙은 가스 속에서 무르익어 간다. 


거리의 한 모퉁이에 사람들이 몰려서 무언가 구경하고 있다. 젊은 남녀는 다가가 본다. 한 노인이 정신을 잃고 길바닥에 쓰러져 있다. 


"연탄가스를 마셨습니다"라고 노인의 증세를 진찰하던 의사가 말한다. "누군가 그 노인에게 연탄가스를 마시게 했군요."하고 검진을 지켜보고 있던 형사가 말한다.


다음날 신문에 그 엽기적인 노인 살해사건에 대해 상세한 보도가 나와 있다. 그 노인에게 연탄가스를 마시게 하여 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바로 그 노인의 며느리였다. 며느리는 울면서 말하고 있다. "시골에서 모처럼 시아버님이 오셨어요. 그런대 대접할 게 아무 것도 없잖아요. 연탄가스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전 가스라면 뭐든지 먹을 수 있는 줄로만 알고... 에고... 에고..."


아아, 70년대! 풍성한 70년대에 그런 일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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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의 이 소설은 1960년대 중반(1964년?)에 발표되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60년 전이니, 참으로 놀라운 예견이다. 60여년이 지난 지금, 진짜 우리는 산소를 사서 마셔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스모그와 미세먼지로 가득한 미래 세상은 기념비적인 SF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에 잘 나타나 있다. 1982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싱그런 초목이 등장하거나 밝은 장면이 없다. 오로지 뿌옇고 탁한 도시의 어둡고 암울한 거리가 영상을 지배한다. 1997년에 나온 <블레이드 러너 2049>도 마찬가지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속 미래 시가지의 풍경.


오늘의 극심한 미세먼지와 매연도 지구 온난화의 부작용이다. 공기층이 안정되면, 즉 차가운 공기가 아래에, 더운 공기가 위에 있으면 기류가 이동하지 않고 머물러 있어서 미세먼지가 움직이지 못하고 그대로 공기 중에 떠다닌다. 원래 봄과 가을은 공기층이 불안정해야 하는데, 지구 온난화 때문에 안정되어서 오늘과 같은 현상이 더 지속된다. 지구온난화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오늘처럼 숨막히는 하늘을 더 오래 봐야 한다.


지금 서울은  가히 세기말적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맑은 하늘은 등장하지 않는다.

#미세먼지 #지구온난화

#한강 #강변아파트슬럼화

#블레이드러너 #Blade_R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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