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귀거래사
歸去來兮 (귀거래혜) 나는 이제 돌아가네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장무호불귀) 전원이 장차 황폐하리니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旣自以心爲形役 (기자이심위형역) 이제까지 마음을 형체의 부림으로 삼았노니
奚惆悵而獨悲 (해추창이독비) 어찌 슬퍼하며 홀로 서러워 할 것인가
悟已往之不諫 (오이왕지불간) 지난 날은 탓할 수 없으니
知來者之可追 (지래자지가추) 오는 날을 쫓으려네
實迷塗其未遠 (실미도기미원) 길을 잃음 사실이나 그리 멀리가진 않았고
覺今是而昨非 (각금시이작비) 오늘에야 깨달아서 어제 아님을 내 알았네
舟遙遙以輕颺 (주요요이경양)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風飄飄而吹衣 (풍표표이취의) 바람은 한들한들 옷깃을 스쳐가네
問征夫以前路 (문정부이전로) 관문 지킨 병사에게 고향길을 물어보며
恨晨光之熹微 (한신광지희미) 새벽빛이 희미함을 그저 한탄하게 되네
乃瞻衡宇 (내첨형우) 저기 멀리 집 처마가 가물가물 보이는데
載欣載奔 (재흔재분) 기쁜 마음 이리 싣고 급한걸음 재촉하니
僮僕歡迎 (동복환영) 머슴아이 길에 나와 나를 이리 반겨주고
稚子候門 (치자후문) 어린 아들 대문에서 나를 이리 맞아주네
三徑就荒 (삼경취황) 뜰 안의 세 갈래 길 잡초가 무성해도
松菊猶存 (송국유존)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남아있네
이하 생략
나이가 오십이 되어 중년이 되고 보니, 이런거 저런거 다 떠나 그저 자연이 좋아진다. 부자, 성공, 권력, 그런 것들이 다 그저 허망하게 느껴지고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속세를 떠나 자연에 묻혀 사는 자연들의 이야기가 중년의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며 롱런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젊은 시절, 성공하고 싶고 부자가 되고 싶고, 좋은 집, 좋은 차, 매력적인 이성, 소위 입신양명을 이루고 싶었다면, 이제 중년이 된 지금은 그런 저런거에서 다 벗어나 자연의 품에 안기고 싶은 것이다.
자 동양에서 이런 정서를 일찌감치 대표한 시인과 시가 있으니 바로 도연명이 쓴 전원시들이다. <귀거래사>는 1500년 이래 소위 속세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소위 전원시의 한 상징이 되었고, 이어지는 <귀원전거>, <도화원기> 등의 시도 마찬가지다. 과거 봉건시대 유교적 질서가 굳건하던 시절, 학문을 하여 크게 출세하여 자신과 집안의 이름을 빛내는 것이 인생 최고의 목표였을 것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상과 현실은 늘 괴리가 있는 법, 권력의 중앙에 다가갈수록 실망과 고뇌가 컸을 수 있다. 도연명도 젊은 시절 나아간 관직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하여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자연에 귀의하여 살았던 것이고, 그 감회와 생각을 시로 옮겼던 것이다.
물론 자연이 모든 것의 답이 될 수는 없다. 자칫하면 그저 현실 도피에 그칠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진정한 고수는 자연 속에서 보석을 캐내는 법이다. <귀거래사>의 진정한 의미도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