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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현 Jan 08. 2022

사주라는 저주


연초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분주함 사이에서 미래의 운명을 점친다. 적게는 5천원에서 5만원, 10만원, 20만원까지.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을 슬몃 엿보는 값치고는 저렴한 편인 걸까. 


중학교 시절에는 음모론에 빠져있었다. 음모론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흔히 보았을 책들을 대부분 섭렵했다. 그때는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책을 읽을 때여서 환단고기부터 그림자정부 같은 판타지물을 비롯해 그들이 연결고리를 만들고자 했던 용봉문화원류 같은 책들까지.


다음 카페를 만들었고 온라인에 올라와 있는 종교의 자료를 모았다. 단지 모았을 뿐이었는데 회원수가 늘었다. 조금씩 늘기 시작하더니 몇 천 명 수준에 이르렀고, 모두 탈퇴 시킨 뒤 폐쇠했다. 그들은 무엇을 찾아 흘러들었던 것일까.


믿고 싶은 것을 이야기해주면 굳건하게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일이더라도 현실로 간주한다. 현실을 자각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점을 회피하거나 망각하기 위한 도구로 책을 사용한다. 


인간은 조금 더 편한 방법을 찾는 존재이다. 불편한 방법. 번거롭지만 해야만 하는 방법으로 인류를 발전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과학자처럼 계속 연구하고 정답을 찾아가는 이들이 발전시킨 문명 위에서 더 게으른 방법을 찾으며 노닥거리는 우리 인류가 아직도 혈액형에 부여된 성질을 찾고, 16가지로 분류된 mbti에 빠져 인간을 단정짓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는 씁쓸하지만 안심이 되기도 한다. 그들 말처럼 너무 깊이 생각할 필요도, 심각할 필요도 없는 세상이었던 건 아닐까 해서다.


사주를 좋아하는 어른들이 나 사주를 몰래 보고 와서는 내개 말했다.

"너는 고향을 벗어나야 잘 된다고 했어."
"너는 평생 700억 정도를 번다고 했어."
"내 사주는 결혼을 아주 일찍 하거나 아주 늦게 한다고 했어."

"내 사주에는 어떤 성씨를 사진 사람이 안 좋다고 했어."

지금 와 생각해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들.


정해진 운명에 관하여 이야기는 사람들이나 적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양자역학을 거론하며 우리네 인생이 프로그램 하에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나 도대체 무엇을 찾아 헤매고 있는 걸까.


그렇게 믿어서 마음의 평화가 찾아진다면, 그렇게라도 해야 행복하다면 양희은 씨 목소리로 "그러라 그래 ~"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내 인생은 내 것이고,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삶이란 태초의 인류가 그랬듯이 생존을 위하여 움직이는 것에서 비롯한다. 그 행동 또한 '돌을 부딪히면 불이 일지 않을까?' 같은 의구심에서 나왔지만, 수염을 길게 기르고 한복 입고 산 여기저기를 걸인처럼 떠도는 사람들이 말할 것 같은 "돌을 함부로 쌓아 놓으면 안 됩니다."와는 전혀 다르지 않은가.


애초에 "A는 B일 수도 있는데 늦으면 C일 수도 있어."와 같은 가정에 가정에 가정에 가정으로 가정의 평화를 파괴하는 말에 돈을 쓰느니 그 돈으로 연희미식을 가서 멘보샤를 먹고 그 옆 가게에서 만두를 사먹은 뒤 천천히 걸어 나와 서울콜렉터에 가서 겨울에 한정으로 판매한다고 하는 아이스크림 샌드를 먹는 것이 정신을 피폐하지 않고 몸을 살찌는 길이지 않을까.


'얼굴 좋음이 몸 좋음만 못하고 몸 좋음이 마음 좋은 것보다 못하다.' 백범일지에서 처음 읽었던 이 말은 마의상서에서 나온 말이다. 몇 년 전 사다 읽은 미즈노 남보쿠의 <관상>에서도 비슷한 말을 발견할 수 있다. “상相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으며 길흉吉凶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다. 얼굴생김은 하늘로부터 받지만 절제節制의 미덕美德으로 운명은 바꿀 수 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되니 마음으로부터 몸을 일구고 몸으로부터 얼굴을 일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골상학이나 사례, 통계를 통해 인간의 유형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가 만든 얼굴을 보며 그 얼굴의 원류를 찾아가는 것이 더 이성적인 방향이 아닐까. 보기 좋게 고친다고 그릇에 담긴 마음이 쉽게 변하기는 어렵지 않나. 좋은 인상을 가진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그들은 대부분 친절했고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좋았다. 돈을 걷어내고, 치장한 것을 걷어내고 나면 무엇이 남아 있나. 인간은 그저 쉽게 오만해지려는 동물은 아닌가.


타인의 말이 나의 삶에 틀을 정할 때 그것은 저주가 된다. 그게 아니라고 수백번 이야기 하고 보여주어도 "아냐. 넌 캐릭터가 그래봬~" 같은 타짜 평경장의 대사가 되풀이 된다면 삶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 틀을 깨는 건 오늘 아침 설거지, 청소, 빨래에서 시작해 내게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 그리고 사람들에게 친절할 것. 또한 역사를 잊지 않고, 타인의 삶을 관망하듯이 바라보는 사람들에게서 멀어질 것. 


타인의 저주에서, 사주라는 저주에서 풀려나는 방법은 결국 가장 최선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 밖에 없다.


오늘은 출근하자마자 어떤출판연구회에서 보내주신 ⟨오늘의 예술출판에 관한 대화⟩ PDF를 읽었고, 환경부에서 제작한 <생태계교란야생동식물자료집>과 <서울시 한강수변 생태공원 조성에 따른 생태적 특성 변화 연구>라는 논문을 읽었다. 공모사업 정산보고서를 작성하고 제출하고, 또 다른 서류를 작성한다. 


일 하다가 일이 너무 질려서 아무 글이나 쓴다는 것이 길어졌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사주는 재미로 보시길.

'평생 700억 번다고 했는데 많이 남았다. 700억을 번다고 행복해질까. 가끔은 열심히 살아가려는 내 의지도 사주라는 저주 때문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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