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나서 - 황경신
황경신의 글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애잔해지기도 하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툭, 떨어지기도 한다. 어떨 때는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며 책을 접고 휙, 돌아눕게 되기도 한다. 장면 장면 짧게 쓰인 그의 글에는 장황한 글 못지않은 무게와 울림이 있다. 무심하고 가벼운 표정이지만 결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간절함이 책 곳곳에 담겨 있다.
서투른 것
원하는 것을 원한다고 말하는 것
그건 정말 나였나.
다시는 온전한 나를 보여주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안 되면 될 때까지 죽어라 부딪혀 본 때가 있었다. 시험이든, 사랑이든, 직업이든, 인생이든. 무엇이든지. 용기라 해도 좋고, 능력이라 해도 좋고, 끈기라 해도 좋은 것. 혹은 오기나 집착이나 무모함, 어리석음이라고 말해도 좋다. 아무튼 악착같이, 안 되는 일은 없다는 기치 아래, 그렇게 인생을 산 적이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은 성에 찰 때까지 마음껏, 있는 힘껏, 이미 바닥난 힘을 짜고 쥐어짜서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그렇게 해야 뭔가 한 것 같고 열심히 최선을 다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좋은 것은 좋다고 말하고 싫은 것은 팽, 하니 얼굴을 돌리면서도 아무 거리낌 없었던 때. 하고 싶은 일에는 미친 듯이 몰입하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는 단호하게 손을 떼는 게 편안했던 그때. 그런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교과서에 나오는 말대로,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라고 조언한다. 그렇게 살아야 건강하다고. 어른이 돼 가면서 체면을 차리느라 가면을 쓰니 정신이 병들어 가는 거라고,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 보라고, 다들 그렇게 이야기한다.
한 번이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솔직하게, 여과 없이 보여줘 본 거야?
모두들 그럴듯하게 정장을 쫙 빼 입고 엄숙하게 앉아 있는 자리에서 혼자만 발가벗고 돌아다니는 느낌. 한 시라도 빨리 벗어나 어디로든 숨어야 할 것만 같은 순간. 모든 체면과 예절과 규율과 관행을 훌훌 벗어버렸더니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이 수치스럽고 창피해졌다. 수치감 때문에 상처만 받았던 시간들. 지우고 싶은 장면들이 있다.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르는 것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때로는 가식적인 모습과 어느 정도의 불투명한 태도는 오히려 자신을 상처로부터 지킬 수 있는 방패요 우산이 된다.
마음껏 표현하는 것을 ‘미성숙’이라고 규정짓는 사람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힐난하는 사람들. 발가벗은 본연의 모습을 세련되지 못하고 미개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어린아이 같이 솔직한 표현을 비난하는 사람들. 짐짓 젠체하며 타인의 자유로운 표현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 틈에서 혼자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화끈거리는 일인지.
싫은 것도 참아야 하고 가식적인 웃음을 지어야 하고 마음에도 없는 아첨을 해야 하는 가면. 반면 발가벗은 자신을 함부로 비웃는 따가운 눈빛. 둘 중 어느 것이 더 힘든 일인지 가늠한다면, 소심한 나는 타인의 시선이 더 무섭다. 좋고 싫음이 얼굴에 다 드러나 감정을 숨기기 힘든 나는 가면의 무게도 감당하기 힘들지만, 모든 것을 감추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혼자만 나를 드러내는 것은 가면보다도 훨씬 견디기 힘들다. 다른 사람들의 비난의 눈초리도 감당이 안 될 뿐 아니라, 왠지 나만 모든 패를 보여줘 손해를 본 듯한 느낌도 들고. 내 패를 모두 알아챈 이들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적도 많다. 그래서 요즘 더욱 깊이 마음에 새겨둔 명구, 침묵은 금이다.
온전한 나를 다시는 보여주지 않겠다고, 나도 매일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