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 최영미
단단한 표정. 미간에 살짝 들어간 힘. 고집스러워 보이는 입매.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조금 드세 보이는 인상이다.
자신을 향한 '드세다'라는 세간의 평가를 그녀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쩌면 살면서 주변으로부터 많이 들어왔던 평가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평범하지 않다. 강하다,라고 표현하려고 했으나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속으로는 여린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에, 평범하지 않다, 라는 단어로 수정했다. 혹시나 상처가 될 수도 있을까 봐.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평범하지 않다는 말도 상처가 될 수 있겠다. 다른 사람과 비슷하지 않다는 이유로 우리는 한 개인을 얼마나 잔인하게 난도질하는지. 결국 다른 사람에 대해 함부로 내린 평가는 늘 누군가를 겨누는 칼이다. 미안하다.
그녀는 똑똑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만의 확실한 기준이 있다. 세파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꿋꿋하며, 재능도 있다. 말도 안 되는 비난을 내뱉는 사람들을 시원하게 비꼴 줄도 알고, 그런 말들에 기죽기는커녕, 오히려 또박또박 시시비비를 가릴 줄도 안다. 핸드폰에 종속되기는커녕, 핸드폰의 피곤함을 인지할 만큼 자유롭다. 남들이 보면 혼자라 심심하겠다지만, 자신만을 위한 오롯한 그 시간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짜릿함을 맛볼 줄 아는 사람이다. 멋지다.
그러나 이렇게 멋진 자신을 갖게 되기까지 그녀는 어쩌면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왔을 수도 있다. 인터뷰도 꺼리고 대중 앞에 나서지 않는다고 마음대로 그녀의 작품을 해석하는 사람들, 이에 대해 항변하니 오히려 작가가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으니 이런 오해가 생기는 게 아니냐며 오히려 뻔뻔하게 나오는 언론사들.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거대한 한국사회로부터 받았을 소외감과 열등감. 못 하나 박기에서부터 전등 갈기까지, 집안의 소소한 일들을 혼자서 모두 해 나가야 했을 억척스러움. 멋진 자신이 자랑스럽고 뿌듯하기도 했겠지만 한편으로는 가끔, 그런 자신이 힘겨웠을 수도 있겠다. 특히나 이렇게 멋진 그녀가, 다른 평범한 여자들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산다며(실제로는 뭐 그리 크게 다르지도 않지만) 여자가 너무 드세다는 평가를 받을 때면, 나는 왜 이리 혼자 모난가, 우울해질 때도 있었겠다.
그녀는 아니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나는 한 번도 힘에 부치지 않았다고, 당당하고 지적인 내 모습이 언제나 사랑스러웠다고,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렇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녀의 지난 시간들을 아무렇게나 유추하는 게 사실은 무례한 일이다. 그리고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위에 풀어놓은 이야기들은 그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 나의 이야기다.
그녀가 힘들었겠구나, 가 아니고
내가 힘들었었다, 는 하소연이다.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속은 여려서, 다른 사람들은 무심코 지나치는 일들을 몇 주고 몇 달이고 곰곰이 생각하는 건 그녀가 아니라 나다. 평범하지 않다는 말이 칼이 되어 자신을 난도질하는 것처럼 느끼는 주체도 그녀가 아니고 나다. 너무 대가 세다라는 주변의 평가에 나는 왜 다른 여자애들처럼 유순하지 못한가, 슬퍼지는 것도 바로 나다.
나는 생각보다 그렇게 당차지도 못하고, 생각보다 그렇게 줏대 있지도 않고, 생각만큼 그렇게 강하지도 않다. 그래서 그녀의 일기장을 계속 엿보면서 그녀가 반갑기도 하고 위안이 되기도 하고 그녀를 동경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녀를 닮으면 어쩌나, 아니, 이미 그녀와 많이 비슷한 내 모습에 더럭 겁이 나기도 했다. 그녀만큼 잘나지도, 그녀만큼 똑똑하지도 못한 나는 그녀처럼 나 보란 듯, 씩씩할 자신이 없어서.
이런 어정쩡한 내 모습을 다루는데 나도 애를 먹는다. 소신껏 주변 사람들의 난도질 따위는 쿨하게 씹어 버리든지, 아니면 그냥 남들처럼 대충 타협하고 넘어가든지. 그 둘 사이에서 괜히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공연히 돌을 맞고 혼자 쩔쩔맨다. 어떤 날은 내가 너무 까칠했나 후회하다가, 어떤 날은 나도 이제 나이를 먹어 상황에 안주하는 것에 익숙해졌나 보다 씁쓸해하기도 한다. 어쩌면 10년이 지나고 나서, 나는 왜 그녀처럼 끝까지 꿋꿋하지 못하고 주저앉았나 괴로워할지도 모른다.
평생을 나는, 고민하고 방황하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