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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슨금 Nov 05. 2023

런던 근교 당일치기 빅노우즈버디 서식스 사이더리 투어

Bignose Beardy Sussex Cidery

네이버에선 '사이다'를 검색하면 칠성사이다가 뜬다. 흔하게 마시는 유명한 탄산음료 이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사이다(Cider)'라고 얘기하면 맥주처럼 알코올이 있는 사과로 만든 술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는 7월에 빅노우즈버디 사이더리에 다녀온 그 순간부터 사이다에 반했다. 우리나라로는 수입도 몇 가지 브랜드 되지 않는 인지도가 없는 술이다. 이유를 뭐라 한 가지로 특정할 순 없지만 우리는 사이다에 매력을 느꼈고 영국에서 지내는 동안 마셔보고 만들어보고 공부해 보겠노라고.


그런데, 첫 시작 길부터 난관이다. 워낙 걸어 다니는 뚜벅이 여행을 좋아해서 역에서 40분 정도 걸어가는 건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게 화근이었다. 영국 시골 바닥엔 인도가 없다는 걸 몰랐다. 영국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뿐더러 런던에만 있었지 다른 소도시에 가본 건 이때가 거의 처음이었을 거다. 몰랐기 때문에 용감하게도 어크필드역에 내려서 차들이 쌩쌩 달리는 굽이굽이 길을 '고라니 신세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40분을 걸어 사이더리에 도착했다.



투어 시작 시간보다 조금 늦었다. 빨리빨리가 기본인 한국 문화와 달리 영국은 다들 조금씩 늦게 오는 편이라 정시에 투어를 시작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양조장 이름은 말 그대로 큰 코와 턱수염, 지금 사진 속의 창업자분이 아닌 다른 창업자분의 외모를 그대로 땄다. 친구와 함께 사과주 양조, 시골 생활에 대한 마음이 맞아서 사이더리를 과감히 창업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양조는 즐겁게 취미로 하기 위해 별도로 각자 본업은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품종의 사과나무 아래에서 닭들이 풀을 뜯고, 모래밭에서 돼지가 뒹구는 정말 찐 시골이다.



일렬로 같은 품종의 사과나무만 심는 건 재미없다. 배 나무와 그 외 다양한 나무들도 있고 정원도 가꾸고 채소도 자라고, 동물들도 뛰노는 그런 멋진 곳!



빅노우즈버디의 사과주는 마트에서 파는 대량생산 기업 제품과 결이 완전히 달랐다. 이스트 없이 오로지 사과만으로 만든 술이다. 사과 껍질에 붙어있었던 자연 효모가 작용하여 자연발효가 된 거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된 사과주의 맛은 매년 다를 수밖에 없다. 와인의 빈티지마다 맛이 다른 것과 같은 원리다. 맛은 탄산감이 없고 신맛과 탄닌감이 있어 도수는 낮지만 벌컥벌컥 마시는 술이 아니다. 와인처럼 음미하면서 마시게 된달까.



이곳에서 생산하는 사이다의 도수는 5~6.4%, 가격은 파인트 5파운드, 하프 파인트 3파운드다. 방문객에게는 매주 금요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만 오픈되니 시간 맞춰 가야 하며, 꼭 차를 끌고 가거나 택시를 타고 가시기를 추천한다.



생산된 사과주들은 통에 담겨 몇 달 이상 숙성되어 발효하는 과정을 거친다. 처음에는 맛이 별로였던 사과주도 시간이 지나면 마법처럼 맛있어진다고...! 인공적으로 사람이 주도적으로 맛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자연이 만들고 사람은 거들뿐이다. 자연과 시간의 매직.


여기서는 매년 9-10월에 정원이나 과수원에서 처치 곤란인 사과들을 가져오면 사과주로 바꿔주는 'Apple Appeal'이라는 행사를 한다. 심지어는 슈퍼마켓에서 오래되어 버려질 예정인 사과들도 저렴하게 구매해 와서 사과주로 만든다. 버려져 음식물 쓰레기가 될 운명의 사과들을 술로 탈바꿈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사과 소싱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이더리 근처에 있는 'Hare&Hound'라는 오래된 펍에서 점심을 먹었다. 영국은 펍의 이름들이 수십수백 년 전 초장기 이름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어서 비슷한 경우가 많다. 구글맵에 Hare&Hound를 검색하면 40곳이 넘는 펍들이 뜬다. 펍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면 꼭 어느 동네에 있는 펍인지를 확인하고 가야 한다.



국민 펍 메뉴 피시 앤 칩스와 동네의 로컬 맥주 두 잔을 주문했다. HARVEY'S Brewery 맥주가 입맛에 맞아서 다음번 맥주축제 GBBF(great british beer festival)에서도 또 사 마셨다.



이날은 특별히 저녁에 파티까지 있는 날이어서 지역 뮤지션의 음악을 들으며 사이다를 즐겼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주인분께서 우리의 기차 시간에 맞춰서 역에 차로 데려다주셨다. 다시 인도 없는 도로를 걸어가야 할 생각을 하니 아찔했는데, 정말 감사하다...!


다녀온 지 거의 4달이 흘렀는데, 게을러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있었다. 이제라도 정리하니 속이 시원하다. 돌이켜보면 이곳이 우리의 '사이더리' 여정에 기준점이 되어준 곳이다. 앞으로도 더 재미나고 술맛 나는 여정이 기다리고 있기를!


영상으로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으시다면 유튜브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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