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ol ila distillery
계획대로였다면 우리는 CAOL ILA 디스릴러리에 갈 수 없었다. 정오쯤 출발하는 페리를 타고 글래스고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출발 1시간 전 쯤이었나 선착장 근처에 마침 딱 도착했는데 '기술적 문제로 운행이 불가하니 몇 시간 뒤에 다른 항구로 가서 다른 배를 타라'고 메일이 왔다. 처음에는 당황해서 다른 항구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기다려야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히 남편이 다시 확인해서 동쪽에 있는 항구로 이동해야한다는 걸 알았다. 항구까지 변경할 줄이야? 당연히 같은 항구인 줄 알았지! 계획이 틀어지는 걸 극히 싫어하는 계획형 인간인 나는 순간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우연찮게 생긴 시간 여유로 쿨일라 디스틸러리에 도착하자마다 마음이 사르르 풀려버렸다. 이곳 아일라에서 풍광이 가장 아름다운 디스틸러리로 손꼽힌다는데, 직접 가보니 왜 그런 찬사를 듣는 공간인지 알 수 있었다.
쿨일라 디스틸러리에서는 다양한 투어도 운영하니 미리 예약하고 올 것을 추천한다. 숍의 캐스크에서 직접 보틀링을 해서 가져가는 옵션도 있다. 같은 재료와 레시피로 만든 위스키도 캐스크에 따라 미묘한 맛과 향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구매하면 내가 마시는 배치 번호를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쿨일라에서 위스키 한 잔 하며 만난 현지인들과 얘기해 보니 워낙 페리들이 오래돼서 고장이 잦다고 한다. 심지어 날씨도 변덕이 심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변경되거나 취소되는 일이 아주 흔하다고.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페리에 승선할 수 있었다.
선박 꼭대기층에 올라가서 바라본 물오라, 그리고 페리를 가득 채운 차량들. 꽤 페리가 큰 편인데도 꼭대기에서는 소음과 흔들림이 심해서 멀미가 났다. 멀미에 취약한 사람은 가급적 1층에 앉아있는 게 좋다.
Kennacraig 터미널에 도착했지만 아직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글래스고로 가려면 3시간 넘게 또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페리가 지연되었음에도 막차 버스시간 전에는 도착했다는 거다. 3시간 거리를 데려다 달라고 이 시골의 선착장까지 택시를 불러야 했으면 어마어마한 택시비 고지서을 받았을 테지.
좌측의 사진은 버스 내부로, 휠체어 이용자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좌석을 빼 비워둔 모습이다. 판매하는 좌석을 늘려 티켓 수입을 늘리기에만 집중하지 않고 거동이 불편한 사람의 이동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우측의 사진은 중간 휴식시간에 잠깐 정차한 마을에서 찍은 호수의 모습이다. 산과 호수, 하늘 그리고 나무. 외국인 관광객에겐 유명한 거 하나 없는 동네지만 평화로움에 반해 이곳에 잠시나마 지내다 가도 좋았을걸 생각했다.
The Clydeside Distillery
늦은 밤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해 쉬고 다음날은 글래스고에 위치한 클레이사이드 디스틸러리로 향했다. 아일라나 스페이사이드의 이름난 곳들보다 역사가 짧은 신생 디스틸러리지만 대도시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이곳은 투어를 위한 전시관을 갖추고 있는데, 열정적인 투어 담당 직원의 설명부터 시음까지 프로그램이 꽤나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아쉬웠던 건, 우리 투어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바로 다음 투어가 예정되어 있어, 여유 있게 전시관을 둘러보거나 시음을 하기는 어려웠다는 점이다.
디스틸러리 내부의 카페 겸 바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감자를 사랑하는 영국 답게 음식을 시키면 감자튀김이 아니면 감자칩이라도 함께 내어주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식사를 하면서 미처 다 마시지 못한 시음 위스키를 반주로 마셨다.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는 내내 참 날씨가 좋았는데, 여행 마지막 날은 우리의 아쉬운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는지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런던행 버스를 타기 전 글래스고에서 위스키 전문으로 유명한 펍 The Pot Still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내부는 그리 넓지 않았는데도 무려 800가지가 넘는 위스키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간단하게 맥주 한 잔씩하고 위스키 추천 전문인 바 직원에게 추천을 받아 평소에 마시기 어려운 색다른 스타일의 위스키 한 샷씩 마셔보았다.
우리가 더 팟 스틸에서 마셔본 위스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남편이 운영하는 블로그 게시글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나름대로 역할 분담을 해보았는데 나는 여행기 담당, 남편은 시음기 담당이다.
- 드램무어 스카치 위스키(DRAM MUR)
- 아비키 하이랜드 라이 위스키(Arbikie)
밤 10시 45분에 출발하는 버스에 올랐다. 심야버스로 런던 빅토리아역까지 무려 8시간 45분이 걸리는 여정이다. 우리는 교통비와 숙박비 좀 아껴보겠다고 기차나 비행기가 아닌 야간버스를 선택했는데 그닥 추천하지 않는다.(2인 편도 33.8파운드) 내가 상상했던 건 최소한 베트남에서 타보았던 슬리핑 버스였다. 좁더라도 등받이가 완전히 젖혀져서 누운 자세로 갈 수 있는 그런 슬리핑 버스말이다. 하지만 이건 그냥 화장실이 딸린 일반버스였다. 앉은 자세로 밤새 졸며 깨며 불편하게 선잠을 자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워낙 장거리 운행이다 보니 운전기사가 여럿 2-3명 타고 교대 운행을 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사고는 안 나겠지 스스로를 위안하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런던 빅토리아 스테이션에 도착한 건 아침 7시 30분, 정장을 차려입은 직장인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습을 보니 여기는 서울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버스에서 좀 고생했을지라도 지금은 마음껏 여행 다닐 수 있는 자유의 몸이니까, 직장인 신세인 것보다는 낫지 않냐며 사서 한 고생을 정당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