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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슨금 Mar 17. 2024

세계최초 제로웨이스트 레스토랑 사일로 런던

쓰레기는 상상력의 부재의 결과, 쓰레기통 없는 레스토랑

monocle shop을 구경하다가 우연히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silo, the zero waste blueprint  a food system for the future>

쓰레기 문제, 식품유통 시스템의 문제는 인지하고 있었지만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싶어 무기력한 상태였다. 그런데 폐기물을 만들지 않고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런던에 있다니? 그게 정녕 가능한 일인가 싶으면서도 '역시 안 되는 건 없구나' 하는 희망이 차올랐다. 그 기대감으로 단박에 완독하고 이 참에 레스토랑도 예약해서 다녀왔다.

위치는 동런던 헤크니 쪽이며 건물 아래쪽은 브루어리, 사일로는 2층에 위치해 있다.

여기는 2인이서 오는 손님들을 위한 바자리다. 오픈이 저녁 6시인데 딱 맞춰갔더니 사람이 별로 없어 여유 있게 둘러볼 수 있었다.

9가지로 정해진 메뉴가 코스로 나오는데 인당 75파운드, 6가지로 간소화된 짧은 코스는 45파운드다. (service charge 13% 별도) 우리는  이왕 온 김에 풀코스로 경험하면 좋을 것 같아 All In으로 주문했다. 인테리어에서도 폐기물을 재사용하고자 하는 노력이 보였다. 여기 바닥재는 재활용 코르크로 만들어졌다.

조명은 유리병으로 만들었고, 수저꽂이는 코르크다. 전 세계 사람들이 와인을 엄청나게 마셔대니 코르크 쓰레기도 어마어마한가 보다.

주방세제나 핸드워시 등 청소용품은 모두 벌크 리필통에 받아다 사용한다.

soft drink 메뉴에서 소다와 주스(5-5.5파운드)를 먼저 주문해 마셨다. 와인잔에 따라주니 음료도 느낌이 산다. 나는 왼쪽 분홍빛 바브 소다를 선택했는데 향도 좋고 색깔도 예쁘다.


첫 번째 코스 Siloaf, butter다.


빵은 밀을 직접 제분해서 자연발효로 사워도우를 만든다. 버터는 목장주로부터 직접 우유를 공급받아 그 우유로 만든 거다. 생산자와 직거래를 하니 폐기물 없이 재사용 통에 우유를 받을 수 있다.

Quaver, vegetable treacle, goat's cheese


염소치즈 특유의 풍미를 선호하지 않았는데 고소하니 맛있게 잘 먹었다.

Purple sprouting broccoli, dairy garum, yuzu koshu


적색 브로콜리를 삶아내니 색깔이 빠져 소스에서 보랏빛이 돈다. 여기 요리들의 핵심은 발효를 활용한 소스에 있다.(garum, miso, koji 등) 시간이 흘러 발효되면서  깊어진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

Pollock, wild horseradish, velvet crab garum


얼마 만에 먹어보는 회였는지! 홀스래디쉬 앞에 'wild'가 붙어있는 건, 재료 수급을 야생식물 채집(foraging) 전문가로부터도 받기 때문이다.

smoked pink fir, jalapeno masala, three cornered leek


흡사 명란젓 모양이지만 작고 길쭉한 핑크펄이라는 품종의 감자다.

wild rabbit, spent sourdough, vegetable XO


간혹 손님들이 사워도우 빵을 다 먹지 않고 남기는 경우가 있는데, 그 빵을 물에 적셔 만두피 반죽 만드는 데 섞어 쓴다. 야채소스는 야채를 손질하면서 나온 자투리들을 모아다가 진득하게 뭉근히 끓여낸 거다.

Maitake mushroom, miso, szechuan pepper


우리나라의 잎새버섯이다. 캐러멜라이즈해서 구워낸 버섯소스의 조화가 좋았다.

stichelton, apple, YQ grain, mutton garum


영국의 유명한 블루치즈 스틸텅을 드디어 먹어보았다. 이건 선택적으로 주문하는 추가코스로 이 한 접시에 4.5파운드다.

amazake, raspberry cheong


마지막 두 코스는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이다. 아마자케는 쌀을 발효시킨 일본 곡물 음료다. 그리고 위에 올라간 건 라즈베리청 소르베. 한국말을 볼 수 있어 기뻤다. 한국의 발효 청 문화는 다른 말로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식문화다.

siloaf icecream sandwich


사워도우 빵으로도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참 참신하다. 이렇게 장장 3시간 30분에 걸친 식사를 마쳤다. 조금씩 맛을 음미하며 먹다 보니 늦은 시간까지 먹어도 더부룩하지 않고 좋았다.


하나 아쉬운 점, 서빙하는 직원들이 와서 설명을 해주긴 하는데 영어 말이 빨라 100% 알아듣기 어려웠다. 사일로의 제로웨이스트 철학이 녹아든 요리 과정을 간략하게 요약한 원페이퍼 메뉴판이 제공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종이 쓰레기가 걱정된다면 링크로 접속할 수 있게 QR만 놔도 된다. 실제로 전체 코스 메뉴는 벽에 빔프로젝터로 쏘고, 음료메뉴의 경우는 QR로 제공되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디테일한 부분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는 푸드시스템을 만드는 데 있다. 쉬운 길은 아닐지라도 충분히 실현 가능한 길이며 올바른 길이라는 데 십분 공감이 되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쓰레기는 상상력 부재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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