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내내 쓸고 닦으며 어머님 불편하시지 않게 집순이의 의무를 다한뒤, 망설임없이에코백을 메고 집을 나섰다.3일만의 외출이다.구름을 잔뜩 이고 있는 하늘은, 금새 빗방울이 떨어질듯무거워 보인다. 3단 접이용 우산 하나를 챙기고, 혹시 몰라 장바구니를 대신하는 큰 비닐 봉지 하나도 챙겼다. 외출 한번 하려면 늘 꾸물 거린다 잔소리를 듣는 나지만, 오늘은나가고 싶은 간절함이 컸기에 선크림 하나만 콕콕찍어 펴바르고,집에서 입던 티셔츠에 헐랭이 바지를껴 입고 나섰다. 뚜벅뚜벅 걸어도 딱히덥지 않고 소매와 통 큰 바지사이로 간간이 바람도 스친다. 비 오기전 이런 선선함이 난 참 좋다.
마을 공원에 피어있는 금계국과달맞이꽃.이 사랑스런 아이들은 우연히 알게된 꽃이름 찾기를 이용해 이름을 알게 되었다.노란꽃 분홍꽃이아닌 각자의 이름을 불러주는게 왠지 뿌듯하고 친근하다.아이와 오며 가며자주 꽃이름을 불러줘야 겠다. 10분쯤 더 걸어 내려오니, 동네 어귀에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관공서 유치를 위한 경합중인 땅은 심사보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작물을밀어버리고 정리중이다. 채소와 이름모를 풀이 무질서하게 엉켜있던 넓은 밭에 푸른색 대신누런 푸대자루가 군데군데거름더미처럼누워 있다. 작년부터 들려오던 소문이 현실화 되면서 조용하던 우리 지역이 조금씩들썩인다.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데 이러다 경합에서 지게되면 어쩌나 싶어도, 혹시나 하는기대감이 가끔 썰물처럼 밀려왔다 간다.땅 한평 가지지 못한 나와 별 상관이 없는데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다.
요즘은 마트에 비닐봉지가 없다. 가끔 나간김에 장을 좀 볼라치면 장바구니를 준비못해 필요없는 쓰레기 봉투를 구입하게 된다. 몇 번 그런 경우를 겪은뒤부터, 비닐봉지한 개쯤은 늘 가방에 넣고 다닌다. 사실비닐봉지와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오염은어제 오늘일이 아니지만 모두들 모르는척 침묵하며 방관자 노릇을 했고 나 또한 그 중 한사람이다. 더이상 미루면 안 될 정도로 사태가 심각해진 시점에서 실시한 제도적 규제가 늦은감이 있지만, 열심히 동참해야 겠다. 나 하나쯤이 아닌 나 하나라도 라는 작은 마음들을 모을수 있게한사회적 약속의 열매가 결코 작지 않음을 알기에.다음 세대를 위한 작은 실천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마트에 잠깐 들러, 된장찌게에 넣을 단단한 두부한모랑 호박을 사고 주말에 아이들에게 특별식으로 만들어 줄김밥 속재료도 눈에 띄는대로 주섬주섬 챙겨 넣었다. 마트만 오면 왜
장 볼게 없다가도 생기는걸까. 단무지랑 햄, 오이, 깻잎, 두부,호박... 가지고간 비닐 봉지가 이내 꽉 차버렸지만, 막 눈에 들어온 큼직한 바나나 한 송이를 또 집어 들었다. 한 쪽으로 무게가 쏠리는것을 나름 분산시켜 에코백과 비닐봉지에 장 본 물건을 나눠 담았다.
-그래도, 우산은 들지않아 다행이네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아직 비가 뿌리지 않은 하늘에 감사하던중 왠 걸, 차가운 물방울이 콧 등과 이마위로 또로록 미끄러진다.
-비도 오는데 카페에 잠깐 들렀다 갈까?
비가 오는것으로 합리화된 나의 작은 일탈.
어머님께 일찍 가겠다고 말한게 약간 걸리긴 했지만, 내 몸은 이미 카페에 주저앉아 주문한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새 방앗간같은 나의 애정카페를 그냥 지나칠수 없는 명분이 오늘은 충분했다구...게다가 3일만의 외출인걸.
주문한 음료와 쿠키를 먹으며, 폰을 만지작 거리다보니 한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약한 빗줄기가 창 밖으로 떨어지는게 간간히 보였다.
-무겁게 구름을 안고 있느니, 차라리 쏟아버리면 하늘도 시원하겠지
가끔 이곳에 들르면, 쏟아버리고 가는게 있다.
혼자 노닥거리며 딱히 특별할것도 없이 차 마시고 책을 읽거나 바깥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는게 다인데, 찻잔이 다 비워져 갈 무렵 내 마음도 시원함을 느낀다.
야금야금 조금씩 아껴먹던 수제쿠키는다 먹지 못하고,집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 몫으로 하나를 남겨 가방에 챙겨 넣었다.